할머니의 마음

세월이 흐르면 알 수 있겠지.

by 세명

친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니까, 아마 할아버지가 75살 정도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를 가장 이뻐했던 할아버지가 곧 임종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화로 들었을 때 스승의 날 행사가 한참이고 또 중학교 친구들과 모교를 방문하기 위해 들떠있던 어린 나의 마음속에 큰 돌덩어리가 내려앉듯 두려운 일이었고 바로 병원으로 갔을 때 마주한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그런 할아버지를 안고 엉엉 울다 지쳐 쓰러진 나, 그리고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얇게 흘러내리는 눈물은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다.


그 이후 친할머니는 10년을 홀로 살았다. 할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할아버지의 빈자리가 할머니는 매우 힘들어하셨다. 시장을 갈 때나 산에 가서 나물을 뜯을 때나 밤을 주스러 시골에 내려갈 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운행했던 개인택시의 옆자리에 든든히 버티고 앉아 전국 구석구석을 누볐었는데, 이제 그런 친구가 사라지니 할머니의 마음은 늘 적적해 보였다.


많은 일들이 할머니에게 있었다. 키가 그 시절 어느 할머니들보다 크고 살집이 있던 할머니는 잦은 원인 모를 혈변으로 자주 병원을 갔고 급기야 우울증상이 심해져 병원 상담도 받았었다. 할머니의 인생에 가장 큰 부분이던 교회에서 반찬을 만드는 봉사활동도 허리골절 수술 이후 오래 서있거나 앉아있는 것을 힘들어하셨고 이틀에 한번 안부전화를 할 때면 누워있거나 거실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할머니의 일상은 손녀인 내가 기억하는 활발한 할머니의 모습과 거리가 있어 마음이 아팠다.


명절날 늘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며칠 전부터 시장에 다녀와 게장과 잡채, 동그랑땡 , 각종 전 , LA 갈비, 나물무침 등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라며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할머니는 여전히 혼자 그 많은 양의 음식을 위해 장을 보았지만 이제는 길쭉했던 할머니의 키도, 살집 있던 풍채도 이제는 온데간데없기에 당연히 음식을 하지 않으실 줄 알았다. '할머니 오늘 저녁에 삼촌도 불러서 가족끼리 고기 구워 먹을 거니까 뭐 준비하지 마요' ' 알겠어'라고 대답하지만 할머니 문을 활짝 열었을 때 부엌에 홀로 서서 많은 반찬거리를 만들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 이게 '부모의 마음'인가 싶었다.


온 가족은 할머니가 무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제는 편하게 자식들에게 기대서 맛있는 거 얻어먹어도 된다며, 쉬어도 된다며 말하지만 할머니는 부엌을 지키며 간장을 얼마나 넣는지, 얼마나 면을 끓이는지 등을 관리 감독하다 결국 엄마에게 이끌려 침대에 누워 쉬기로 했다. 그때 할머니의 다리에 보이는 커다란 화상 자국에 나와 엄마는 화들짝 놀랐다. 아무렇지 않아 하며 '어제 뜨거벘어'라는 할머니를 보며 엄마는 정성껏 상처를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주며 할머니에게 바지 대신 치마를 입자고 하셨고 갈아입은 할머니는 침대에 옆으로 누워 눈을 깜빡깜빡하셨다. 나도 옆에 누워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 왜 눈을 깜빡깜빡 해'


'그냥 그러는겨'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자 할머니는 손으로 닦았다.


'할머니 왜 울어'


'그냥 눈물이 나'


'할머니, 우울해하지 마. 허리 다 낳으면 할머니가 해준 맛있는 음식 다 같이 먹으면 되지'


'늙으면 다 쓸모가 없어지는겨.. 그냥 눈물이 나'


'그런 말 하지 마, 할머니만큼 똑순이 할머니가 어디 있는데. 일기도 쓰지 컴퓨터도 배우고 싶어서 배우러 가지. 할머니는 똑순이 할머니야. '


'그려?'


'당근이지. 할머니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냥 웃어'


할머니가 코로나에 감염되었을 때 집에서 격리생활을 하시다 후두염이 심해져 숨쉬기 힘드시다며 결국 요양병원에 가신적이 있었다. 그다음 날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었는데 전화를 건 이유는 빨리 나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다 나은 것 갇혀. 여기 있으니까 미칠 것 같아'


의식이 명료했던 할머니는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퇴원했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거기 다시는 가기 싫어. 내가 사라지는 것 같었어. 다시는 안가 거기'


우리 모두 늙어가고 나 또한 늙어간다. 하지만 아직 20대인 나는 아직까지 80 노인의 마음을 상상해보려 해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늙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두렵게 하는지는 알 것 같다. 내가 사라진다는 느낌, 이 세상에 발을 디디며 살아가지만 그 발 디디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까. 아직 20대인 나지만 나도 언젠가는 알 수 있겠지.


그렇다면 알 수 있다는 순간이 조금 더디게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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