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비밀은 있을 것이다. 정말 창피했던 기억들이나 혹은 얼마의 비상금을 아내 몰래 숨겨놓았다던가, 혹은 남들에게 차였지만 본인이 찼다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해명하는 등. 나에게도 비밀이 있다. 나는 나의 '비밀'이라고 하고 싶은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는 습관이 있는데 그중 나의 비밀글 폴더 속에는 가끔씩 무척이나 화가 났을 때 있었던 일화나 입에 담지 못한 창피한 일들,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짧은 메모를 남긴 글들도 있지만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은 가장 최근에 수정한 나의 유언장이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씀으로써 비밀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처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TV에서 병실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와 주변의 가족들이 슬프게 우는 장면이었는데 나중에 죽은 환자의 편지가 남겨져 더 여운을 주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어린 나에게는 '죽음'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주제였고 너무나도 먼 이야기 었으며 심지어 한 번도 주변 사람의 장례식장에 가본 적도 없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었지만 '죽음'이란 것이 사람들에게 '슬픔'을 준다는 것과 멀쩡히 살아있는 내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살아있지 않는다는 것이 상상조차 가지 않아서 밤새 뒤척였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가장 소중했던 할아버지의 죽음과 외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내가 2년간 중환자실에서 일하며 죽음을 목 겸함으로 서 죽음이 그다지 나와 멀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행정고시를 공부하던 시절, 집에서 나와 1년 만에 합격하겠다며 혼자 신림동 고시촌에 원룸을 얻어 살았었다. 매일 잠을 5시간씩 자고 일어나 공부만 했던 시절 혼자서 픽픽 쓰러진 적도 있었고 스스로의 처지가 딱해서 눈물을 흘리며 잤고, 자고 일어나면 눈물자국이 얼굴에 남아있었을 때 문득 내가 여기서 쓸쓸하게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또한 특히 백신을 맞고 후유증으로 심장 두근거림과 열이 나서 힘들 때, 1차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공황발작이 와서 숨이 안 쉬어져 밖에 나가지도 못하며 방에서 울면서 공부할 때 나는 그때마다 유언장을 쓰고 또 고쳐 썼다. 당시에는 정말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과 후회 없이 하루를 살겠다는 마음으로 유언장을 썼던 것이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나의 기분이 좋든 슬프든 유언장을 고쳐 쓰고 싶을 때마다 고쳐보고 한 번씩 읽어보곤 한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삶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는데 사실 가끔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건지 열심히 살았음에도 찰나의 공허함이 느껴질 때 특히나 그랬다. 예전에 즐겨했던 인스타그램도 이제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의 자기 자랑, 심지어 나의 주변 친구들까지. 좋은 곳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잘 나온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마구잡이로 올려놓는 것을 무척이나 삶이 괴로울 때 보면 이 세상에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그 박탈감이란.
이제는 다시 본가로 돌아와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종종 마주하는 소위 '진상' 환자나 보호자를 만날 때, 혹은 다시금 나를 힘들게 하는 불청객들이 찾아올 때는 나는 고시 공부했을 시절, 유언장을 처음 썼을 때를 생각한다. 그러고 나면 다시금 힘들었던 시절을 이겨낸 나 자신이 고맙고 다시 나를 움직인다. 유언장의 순 기능이랄까.
처음 남자친구에게 유언장이 있다고 고백했을때 무척이나 놀란 부산에서 일하는 남자친구는 매주 올라와 나 나를 걱정했었다. 나는 그때마다 말했었다.
"오빠, 나 괜찮아. 그냥 말 그대로 유언장이지. 내가 죽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만약에 대비해서라구. 나 알잖아. 삶에 대해 진심인거."
이번 여름, 엄청난 집중 호우로 신림동 반지하 가족이 목숨을 잃은 사건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이제는 선진국이라 감히 말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직도 이런 비극이 있나 싶다. 물론 나도 신림동의 열악한 상황을 겪어보긴 했지만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이 얼마나 파리 목숨인지. 나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모른다. 그 일가족은 자신들이 굶어 죽을지언정 물에 잠겨 죽을지 예상이나 했겠나. 예측할 수 없는 죽음만큼, 준비되지 않은 죽은만큼 슬픈 죽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