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존재는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말을 하면서 깨우치는 언어의 대상이자 나이 중년의 성공한 사업가가 본인의 어머니를 부르는 너무나도 편한 호칭이며 90넘은 노인에게 가장 보고 싶은 존재다.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저마다 다른 느낌이겠지만 나에게 엄마는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 존재다.
우리 엄마는 워킹맘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자연스럽게 친조부모님과 외할머니와 같이 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늘 바빴던 엄마는 하루 종일 힘들게 지내도 우리 형제들을 보면 활짝 웃으며 같이 밥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남은 일들을 하고 잠을 청했으며 또 아침이면 일어나 정신없이 출근했다. 그러다 외할머니의 말기암 판정과 동시에 직장 내 문제로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그 누구도 다시 일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엄마 스스로는 그게 많이 힘들었는지 일을 절대 놓지 않았다.
엄마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새벽에 출근하는 나를 위해 밥을 차려주고 시간차로 교육받으러 가는 막내딸 식사를, 그리고 아빠와 첫째와의 진짜 본인의 끼니를 챙겨 먹은 다음 어느새 채비를 하고 한 시간 반 운전을 해 본인의 직장으로 간다. 그리고 몇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다 다시 운전을 하고 돌아와 자식들 밥을 차려주어야 한다며 딸들이 도와주려는 손길을 매번 거절하고 할 거하라는 말과 함께 본인 머릿속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로 매번 싸우는 우리 형제들로 싸우지 말라며 당신이 하려고 한다. 그런 모습에 우리 형제들은 또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결국 답답함을 토로하지만 엄마는 묵묵히 할 일을 마저 하고 아빠를 기다린 후 잠을 청하는 것이 엄마의 일상이다.
가끔 엄마가 너무 답답할 때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엄한 아빠 밑에서 사랑으로 우리를 키워준 엄마에게 우리 형제들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다. 늘 엄마는 여전히 우리보다 더 많이 먹지 않고 더 많이 사지 않으며 더 많이 자지 않고 우리를 기다린다. 더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싶어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늘 나에게 돌아오는 말은 '형제들과 잘 지내'다. 우리 엄마에게는 가족 내에서 '엄마'가 아닌 '자신'이 있을까.
'부모 밑에 있을 때가 좋은 줄 알아'.
매번 독립하고 싶다고 말할 때 엄마가 늘 하는 말이다.
그놈의 부모, 그놈의 형제간의 우애, 그놈의 가족.
나는 이런 말들로 나를 옭메는 엄마가 가끔은 무척 미웠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형제간의 교류가 끊긴 엄마의 마음과 우리 자매들은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알면서도 그게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매번 퀭한 얼굴로 일어나 푹 잤다며 계란밥 해줄까?라고 묻는 엄마가 가끔은 너무 밉다. 그리고 내가 너무 밉다.
어느 날 엄마가 너무 답답해서 결국 참지 못한 말이 나와버렸다.
" 나는 나중에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 나중에 커서 절대 엄마처럼 살지마. "
엄마의 대답은 그 어떤 감정 없는 엄마의 진심이었다. 딸이 자신보다 더 행복해지길, 원하는 대로 살기를.
나는 그날 한참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