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 그니까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항상 나는 작은 캐릭터 동전지갑에 동전과 천 원짜리 지폐를 꾸깃꾸깃 집어넣고 동네 슈퍼와 문방구를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또 매주 수요일마다 찾아오는 학교 앞 달고나 할아버지와 그 옆에 병아리를 파는 할아버지 옆에서 백 원짜리 뽑기를 해 먹는 것은 어렸을 적 나의 기억 속 생생한 추억거리다. 하지만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현금을 갖고 다녔던 것이 물론 나의 주전부리 쇼핑(?)의 목적이었지만 사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종종 지하철 기차 내에서 바가지를 들고 구슬픈 음악을 틀며 구걸하는 사람들, 길가다가 박스를 펴놓고 엎드려 구걸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 속에 담겨있는 찰랑거리는 동전들과 몇 개 안 되는 지폐들이 눈에 띄었다. 어릴 적 나는 왜 구걸하는 사람들은 저러고 있는지 궁금해했었다. 그래서 한 번 슬쩍 다가가 지갑 속 동전 하나를 툭 놓았다. 그때 그 어린 나에게 고개를 들어 이 빠진 얼굴로 싱긋 웃으며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굳이 돈을 구걸하지 않아도 부모님한테 받거나 아니면 일을 해서 벌면 되는 거 아닌가?', '다른 사람들 다 보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등의 생각을 하며 돌아갔다.
단순한 어린아이의 경제관념에 입각한 생각은 어쩌면 정말 명쾌한 돈을 갖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성인이 된 지금 모든 걸 떠나서 그 상황 자체에 주목하게 되었다. 길에 앉아 모르는 이에게 고개 숙여가며 구걸하는 것이 얼마나 인간으로서 다른 동일한 인간들에게 같음을 포기하는 행위일지, 따스한 눈길 한번 쉽게 주지 못하는 바쁘게 움직이는 인파들 속에서 홀로 느리게 흘러가는 삶을 사는 듯한 느낌일지, 그들은 더 이상 포기할 것이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뭔가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가족끼리 식사를 갈 때 종종 현금이 필요할 때 열리는 지갑은 나의 지갑의 몫이 되었지만. 종종 길을 가다 마주하는 구걸하는 사람들을 볼 때 카드만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불편한지. 사람대 사람으로서 그 자리에서 구걸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으로서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나의 커피 한잔 값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큰 휴머니즘의 실천인지를 떠올리며 지갑을 열어 지폐 한 장 두고 간다.
누군가는 그런 사람들을 동정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 인간을 인간으로 부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공감'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힘든 사람을 힘들 것이라 공감해주고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마음. 이게 연민이자 동정심이고 공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