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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Dec 03. 2022

그 어려운걸 해냈지 말입니다

7급 공무원 의원면직

“그래, 그만 두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렇게 하자”     



드디어 남편 입에서 기다리던 말이 나왔다.

"내가 너랑 지우하나 못 먹여 살리겠냐" 라는 옛날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오글거리는 대사도 함께.

사실 사기업에 다니는 남편은 공무원인 내 비위를 잘 맞추었다. 가끔씩 떠보듯 일 관둘까? 라는 말에도 "그만 두려면 내가 그만 둬야지, 공무원인 니가 왜 그만 두니, 난 진짜 너를 우리 집 갑이라고 생각해“라며 속이 빤히 보이는 말만 늘어놓을 뿐 그만 두라는 말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던 사람이다.     

이 말이 나오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렇다. 아주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한 공무원이 정년을 채우지 않고 그만 둔다는 것은 가족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해까지는 바라지 않고 설득시키는 것을 목적에 둬야하는 작업.

더군다나 공무원 생활 1~2년차 신입도 아닌, 곧 팀장승진을 눈앞에 둔 17년차 7급 공무원의 의원면직 계획은 이상하리 만치 의심스러운 일이다. 로또에 당첨됐나? 암에 걸렸나?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나? 소문이 흉흉하다.

공무원이 뭐가 힘들다고, 코로나 시대에 멀쩡히 다니던 직장도 잘리는 판에 배가 불렀다는 눈초리와 쯧쯧쯧 혀가 끊어질 듯 한 소리를 견뎌야하는 일이다.

스스로는 어떤가? 전 세계에 경기침체가 들이닥쳐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떠올라 수시로 내적갈등을 겪으며 머리를 잡아 뜯고 고민해야 하는 고된 일이다.    



 

상사에게 의원면직 의사를 밝히고 인사팀에 서류를 제출하러 갔다. 왜 그만두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담당자 앞에서 한숨이 나왔다. 내가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곳이 모두에게 지상낙원 일리는 없건만. 그만두고 싶을 뿐인데. 오지랖인지 호기심인지 모를 표정의 그가 들을 새라 입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는 다음날 아침에도 재차 확인전화를 했다. 정말 관둘꺼냐, 밤새 마음이 바뀌지 않았느냐. 불편한 배려다. 






의원면직 신청사건(이 조직에서는 사건이라 불릴 만하다)이 스멀스멀 알려지면서 제일 많이들은 질문은 왜? 이다. 아니 왜? 도대체 왜? 굳이 지금 와서 왜? 여기도 왜? 저기도 왜? 왜왜왜? 그 질문 속엔 궁금함 보다 내 선택을 질타하는 뉘앙스가 더 많다. 아니 내가 심심해서 관두겠냐구요. 그만들 궁금해 하시라고요. 또 입속으로만 중얼거린다. 지나치면 독이 되는 오지랖이다.

어떤 이들은 질병휴직이나 시간선택제 근무신청을 권한다. 퇴직은 그들 선택지에 없다. 난 애초에 보기에도 없는 선택을 한 희한한 사람이 되기 쉽다.      

그 중에서도 응원과 부러움을 보내는 이들도 당연히 있다. 그들 대부분은 내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 직원들이었다. 일찌감치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사는데 각각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직장생활을 이어간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부러워하며, 하교 후 다정한 엄마를 맞이할 내 아이를 생각하며, 집에 혼자 있을 자기 아이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직원과 한참을 같이 훌쩍거렸다.



내가 먼저 옆구리를 쿡쿡 찔렀든, 남편이 스스로 용기를 냈든 간에 그날 남편의 오글거리는 대사에 힘입어 결심을 확고히 했고, 2021년 뜨거운 여름 그렇게 나는 의원면직을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요단강을 건넜다며 남편 회사 동료들이 더 아쉬워했단다. 용기 내준 남편에게 감사를 표한다.      





 

살면서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아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일들이 많다. 물을 무서워해서 수영은 배울 수 없어, 화려한 옷은 안 어울려서 못 입어, 영어도 못하는 내가 혼자 해외여행을 어떻게 가, 겁이 많아서 혼자 하는 캠핑은 꿈도 못 꿔.

공무원 이란 직업도 내겐 그랬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해야 하는 일, 하늘이 두 쪽 나도 절대 그만 둘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평생직장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샀고, 시부모님께 일하는 며느리로 대접받으며 살았다. 공무원이란 명함을 버리면 나는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아 양손 가득 사탕을 쥔 꼬마아이처럼 주먹을 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그만 두니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고 나도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에 도전하는 마음이 생겼고 글을 쓰고 싶다는 나의 마음에 불도 지펴주었다. 이제는 소속도 수입도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마냥 아쉽지만은 않다. 



매일이 새날 같은 요즘, 그러다가 문득 생각해본다.

익숙한 곳만 가고, 새로운 것은 안 먹고, 만나던 사람만 만나는 내가 왜 안락한 우물을 벗어나고 싶은 개구리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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