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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Apr 05. 2023

행복하니?

고양이와 나

“엄마! 난 언제 내 집에서 혼자 살 수 있어?”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아이가 집을 떠나 혼자 산다는 생각을 미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 아이 나이는 고작 10살이었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강아지, 고양이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눈 맞춤을 하고 슬쩍 쓰다듬어 줬다. 동물원에서도 불시에 날아와 머리 위에 앉는 앵무새를 겁내하지 않았고, 말, 낙타처럼 덩치 큰 동물에게 먹이 주는 일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엄마 아빠 모두 기겁하는 뱀을 목에 걸고도 평온했던 아이. 장래희망이 수시로 바뀌기는 했으나 꾸준히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사육사일 정도다.(욕망 있는 엄마는 넌지시 수의사란 직업도 알려준다. 헤헤)


10살 아이가 TV프로그램 마냥 '나 혼자 산다'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고양이다. 아이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키워왔고,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틀림없이 성가신 내 일거리만 하나 추가될 거라는 생각에 반대입장을 고수해 왔다. 평소 이 일로 떼를 쓰거나 조르지 않았기에 집을 나가 자기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갑작스러운 고백은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아이의 간절함을 모른 체한 게 미안했고, 혼자 살겠다는 말이 서운했다.


아이가 3학년이던 그 해는 코로나가 매섭게 들이닥치던 시기였다. 일상생활 많은 것들이 멈췄고, 학교도 학원도 갈 수 없는 날이 늘었다. 지방에 있는 아빠와 출근하는 엄마 덕에 아이는 하루 종일 혼자 집을 지켰다. 평일에는 TV도 유튜브도 제한했고, 스마트폰도 없던 때라 종일 혼자 공부하고, 혼자 놀고, 혼자 밥 먹고. 참 심심하고 쓸쓸했겠다 싶은 시절이었다. 그때 한번 생각해 본 것 같다. 동생이 있었으면 나았으려나. 언니가 있었으면 좋았으려나. 허나 반려동물 생각은 결코, 부러 해보지 않았다.


그즈음  1학년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네가 복슬복슬 귀여운 포메라니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 엄마도 5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강아지를 들이지 않겠노라 선언했던 사람이었는데. 막상 강아지와 함께 사니 아들이 방울이(강아지 이름) 보러 집에도 일찍 들어오고, 방울이에게 수학 문제도 알려주고, 그 앞에서 바이올린 연습도 한단다. 역시 외동이었던 아이는 방울이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고 했다.


그때쯤 우리도 결심했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딸아이의 간절함과 코로나로 인한 고립과 외동의 쓸쓸함과 친구네 방울이에 힘입어.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던 가을날 그렇게 털뭉치 크림이를 새 식구로 맞았다.






아이는 눈높이에 맞춰 바짝 엎드리거나 누워서 크림이를 보는 날이 많았다. 깨물리고 발톱에 긁혀도 의젓하게 참고 아기 대하듯 크림이와 놀았다. 처음엔 구석으로 숨기 바빴던 크림이도 이제는 옆을 스칠라치면 먼저 쓰러지듯 넘어져 배를 까보인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현관 중문에 앞발을 올린 채 서있는 크림이 얼굴이 제일 먼저 보인다. 집고양이 3년 만에 크림이는 개냥이가 됐고, 집사 3년 만에 외동도 아닌 내가 크림이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강아지와는 달리 밖에서 산책하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라고 한다. 심심할까 염려하는 건 집사의 기우라고. 고양이에겐 창문이 텔레비전이고 그렇게 창 밖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단다. 다 알면서도 날씨 좋은 날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를 보면 집에 혼자 있을 크림이 생각이 났다.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비가 내리면 또 그런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자꾸 크림이 생각이 났다. 차가운 눈을 밟게 해주고 싶고, 생생한 빗소리와 함께 통통 튀는 빗방울을 보여주고 싶고, 바람냄새 맡으며 흩날리는 낙엽을 쫓아 실컷 뛰게 하고 싶었다. 자유롭게.


집안에 갇혀 지내지만 안락한 것이 좋을까, 고단해도 자유로운 거리의 삶이 부러울까. 크림이 마음이 궁금해 어느 날엔 실없이, 또 어느 날엔 진지하게 묻곤 했다.

행복하니? 






책을 읽다 이런 내 마음과 똑 닮은 이야기를 발견하고는 어찌나 반가운지 여러 번 곱씹었다.



“비를 맞고 밟고 피하면서 몸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 내가 아무리 예뻐하고 놀아주고 간식을 종류별로 사다 먹인다고 해도 그게 끝이잖아. 바람도 없고 계절도 없고 꽃도 낙엽도 비도 눈도 없는 방 한 칸에서 쿠키가 정말 행복한지 자신이 없었어. 나랑 사니까 좋아? 나랑 사는 거 좋지? 구차하게 묻고 또 물었어. 아프면 내가 가둬서 아픈 것 같고 자고 있으면 내가 가둬서 잠만 자는 것 같았어. 회사에 있다가 급식기에서 밥 나오는 시간이 되면 쿠키는 지금쯤 혼자 오독오독 사료를 씹고 있겠구나. 마음이 아팠어. 땅을 밟고 나무를 긁고 작은 동물이나 곤충을 잡으면서 볕이 잘 드는 곳에서 낮잠도 자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숨어드는 삶이 짧고 위험하더라도 차라리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어. 근데 테라스가 있다면, 비도 맞고 꽃잎도 뜯고 흙도 파헤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 조금은 덜 미안할 것 같아” 

조남주, 『공공연한 고양이(테라스가 있는 집)』, 자음과 모음, 2019, p.28




어떨 땐 크림이가 내게 묻는 것 같다. 

안락한 직장을 박차고 나온, 우물 밖 개구리가 된 집사양반. 

행복하십니까? 

이럴 땐 눈빛이 꼭 사람 같다.

대답은 둘 만의 비밀로 묻어두고, 언젠가는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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