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왜 하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불쑥불쑥 떠올라 꽤나 신경이 쓰인다. 화장실에서 뒤처리 안 하고 나온 사람처럼 찝찝한 기분이 하루종일 따라다닌다. 휴대폰 새 글 알람소리에 곧잘 뜨끔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지 2주 쯤 됐다. 심장이 안좋나? 신경이 예민해진거 보니 우울감이 또 고개를 드나? 그럼 화장실은 뭔데..장염이야? 치매야?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다.
2주 전이면 지지난주 금요일이고, 금요일이면 그 뭐냐..
브런치 작가 된 날이네?!
그렇다. 그날 난 야심차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발행한 글은 고작 한 편, 내 서랍은 여전히 텅텅 비어있다. 서랍만 빈게 아니라 뇌도 비워진 걸까? 다른 엄마들이 우스갯소리로 아이 낳으면서 뇌도 낳았다던데.
도무지 쓸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사연 많은 여자처럼 너무 뻥을 쳤나? 새삼 날 모셔간 브런치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드는 지경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어쩌자고 브런치 작가가 되어 모두 잠든 시커먼 밤에 귀신처럼 시커멓게 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까. 문장을 썼다 지웠다, 단어를 요렇게 저렇게 바꿔보고, 다른 사람 눈엔 티도 안날 조사를 넣었다 뺐다 이 난리를 치고 있는지. 글을 쓴다고 10원 한 닢 내 손에 쥐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쓰려는 걸까.
지난 2주 동안 마치 브런치의 피고용인이라도 된 마냥 기한 없는 마감에 혼자 시달리는 중이다.
남편이 봤다면 쌩쇼한다 했겠지.
진짜 작가와 가짜 작가의 정의는 모르겠으나 비슷한 시기에 작가가 된 이웃님들은 진짜 작가처럼 툭툭 잘도 써낸다. 난 왜 이렇게 못쓰지? 자괴감이 깊어가는 2주였다.
왜 글쓰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40년 넘게 질척댈까.
그러다 문득 거실 서랍장에 모셔둔 국민학교 통지표가 떠올랐다. 이사를 많이 다녀 전학이 잦았던 나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5학년의 흔적이다. 때마침 5학년인 딸아이에게 엄마는 12살 때 글짓기를 잘했다며 의기양양 자랑하던 징표이기도 하다.
맞아. 나 일기도 잘 쓰고 글짓기도 괜찮았었지? 성적도 우수했네. 나 못쓰는 사람 아니네. 힘차게 끄덕이며 잠시 5학년으로 돌아가 자뻑에 빠져본다.
아이들은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믿고 칭찬해 주는 그 말 한마디를 마음에 담고 자란다는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남아 있었던 건 5학년 담임선생님의 칭찬 때문이었을까?
고왔던 것만 기억나는 선생님의 얼굴은 이제 흐릿하지만 칭찬은 글로 남아 나도 모르게 간직되어 왔나보다.
이제는 글을 쓰며 더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느니, 마음을 치유하겠다느니 그럴싸한 말로 포장해 멋있게 쓰려 고민하지 않고, 그냥 나 원래 잘 쓰는 어린이였어, 그동안 안 써서 지금 괴로운거지 계속 쓰면 잘 쓸 수 있어라는 자뻑을 장착하고 일단 써보기로 했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의 저자 이주윤 작가님도 말하지 않았는가.
재능이 있을까 고민하며 괴로워할 시간에 그 괴로움에 대해서라도 쓰라고.
누구도 시키지 않은 숙제를 꾸역꾸역 하는 이유다.
[사진출처(제목)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