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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l 06. 2023

비 오는 날 스벅보다 좋은 이곳

비가 온다. 장마가 시작되긴 했나 보다. 부쩍 비 내리는 날이 많은 걸 보니. 언제부턴가 쨍하게 맑은 날보다 살짝 닭살이 돋을 정도의 서늘한 날이 좋아졌다. 서늘하면서 흐린 날, 흐리면서 비까지 내리는 날씨가 좋다. 찌푸린 하늘이 마음에 든다면 좀 이상하려나? 이런 나를 두고 남편은 내가 술꾼이라 그렇다는 둥, 기본적으로 우울이 깔려 있다는 둥 실없는 소리를 해대지만 깨발랄 초등 딸아이도 나와 비슷한 걸 보면 남편의 주장은 믿을만한 말이 못된다. 그래도 비가 오는 날 술이 당기는 건 맞으니 그건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올해 어느 날부터 조급증이 생겼다. 비가 오면 그래서 볕이 뜨겁지 않은 날이면 그곳에 가고 싶어 마음이 바쁘다. 밤새 내린 비가 아침까지 이어진다면, 그 덕에 공기가 축축하고 서늘하다면 내 마음은 더 야단이다. 이런 날은 평소 8시 10분 꽤나 일찍 등교하는 딸아이에게도 팔짱을 낀 채 소리 없는 재촉을 한다. 태연하고 빠르게 인사한 후 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서두르기 시작한다. 이러다 비 그칠라, 빗소리 놓칠라 후다닥 집안 정리를 하고 뒤따라 현관문을 나선다. 책 두 권과 자동차키를 주섬주섬 챙겨. 가는 길에 가까운 빽다방에 들러 아이스바닐라라테도 한 잔 사든다. 다시 시동을 걸고 도착한 그곳은? 두구두구두구~



(좌) 비 오는 날 도서관 주차장에서  (우) 비 오는 날 우리 집 뒷길에서



바로 내 차 안이다. (엥? 뭐라고?)


그렇다. 나는 커피를 사들고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빙~돌아 우리 집 뒤편 길가에 차를 세운다. 주차한 장소에서 아이 방 창문이 보일 정도. 그만큼 집이 코앞이라는 얘기다.


2년 전 이사 온 지방 소도시. 이제 막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는 신도시라 아직은 주위가 한산하다. 아파트 신축을 위해 도로 맞은편을 따라 방음벽이 쭉 세워져 있긴 하나 그 뒤로 산이 빼꼼히 보이니 뷰가 나쁘지 않다. 비는 오지만 습도가 높지 않고 선선한 날씨엔 이렇게 차 안에서 빗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책을 읽는다. 몹시 달콤한 시간이다.

예전에도 외출했다 돌아오면서 지하에 차를 대고 잡생각을 하느라 한참 있다 내린 적은 있었으나, 비 오는 날 온전히 차속에서 책만 읽었던 경험은 처음인지라 느낌이 강렬했다. 그날 그 기분이 몹시 좋았던 나는 책을 읽다 말고 집에 들어가 아침에 말아놓은 김밥 몇 개와 사과 반쪽을 락앤락에 정성스럽게 담아 나오기도 했다는. 차에서 혼자만의 소풍을 즐긴 셈이다. 지금 생각하니 우습지만 그 기분 좋음에 덜컥 중독된 나는 지금도 비가 내리면 집에 있다가도 자동차키를 들고 뛰쳐나간다.


화요일마다 지역 도서관에서 동시를 배운다. 이번주엔 비까지 내리니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부러 일찍 출발해 40분이나 여유 있게 도착. 어김없이 주차를 하고 책을 꺼낸다. 빗방울이 굵어지니 되려 신나는구나. 창문에 달라붙은 빗방울이 또르르 떨어지다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모자이크 처리 된 듯 흐릿해지는 앞 유리창도 이쁘다. 도서관 앞에 바다가 펼쳐지니 풍경은 말할 것도 없이.




비 오는 날 스벅 보다 내 차 안에서 마시는 커피와 책이 좋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첫째. 소심한 아니 세심한 I형 인간인 나. 카페에서는 도대체 몇 시간을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걸까? 한 시간? 두 시간은 너무 긴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둘째. 사람 관찰하는 게 재미있는 나. 책을 읽다가도 자꾸 주변에 시선을 뺏긴다. 음.. 저 커플은 아주 다정하군, 저 청년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 걸까? 옆 테이블 엄마들은 애들 학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눈이 바쁘고 귀도 점점 커진다.

셋째. 커피 맛을 잘 모르는 숙맥 같은 나. 아메리카노 아니면 바릴라라테만 먹는 나에겐 스벅의 다양한 메뉴가 어쩐지 어렵고 무섭다. 비싸기도 하고.(헤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다. 쏟아질 땐 제법 크게 탁탁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데 그 백색소음이 마음을 울린다. 오롯이 혼자 있는 공간에서 나 혼자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눈도 귀도 마음도 시원하다. 빗소리를 배경 삼아 듣고 싶은 음악을 틀고 보고 싶은 소설책을 읽으며 가성비까지 딱 맞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 말해 뭐 해? ♡


비 오는 날 스벅보다 내 차 안이 좋은 이유다. 장소는 중요치 않다. 내 마음이 중요하지.




타닥타닥 타다닥 툭툭툭툭 비가 쏟아진다. 마음이 나대기 시작한다.




덧.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이라는 소설을 읽다 발견한 문장. 어쩐지 끌리는 문장. 다음번 비 오는 날에는 허밍소리가 들릴 것 같다.



눈이 오면 아 입을 벌려 겨울을 맛보고,
비가 오면 명상에 잠긴 대지가 허밍하는 소리를 엿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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