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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n 28. 2023

우영우 팽나무는 아니지만...

'팽'이란 글자를 볼 때 처음 생각나는 단어는 '팽현숙'이다.(나이대가 나오지요? 헤헤) 그다음은 팽이버섯, 팽이, 팽(펭)귄, 팽당하다 정도. 결코 팽나무라는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우 to the 영 to the 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며 박은빈 배우의 연기에 감탄했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자폐 스펙트럼' 이야기에 처음 귀 기울이게 되었으며, 우영우 생각 속에 자주 떠다니던 돌고래, 줄 맞춰가며 매일 먹던 김밥 모두 인상 깊게 남았다. 그중 최고는 단연 팽나무. 작년 여름 팽나무에 마음을 뺏겼더랬다.


드라마에서는 한바다 변호사들이 도로 개통 문제로 시끌시끌하던 소덕동 마을에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마을전경을 살피기 위해 높은 지대로 이동하던 중 삐끗해서 넘어진 우영우. 찢어진 영우의 옷을 보고 청자켓을 벗어 다정하게 덮어주던 준호(꺅><). 그 오르막길 끝에 나타난 거대한 팽나무를 생각하면 영우와 준호를 보며 설레었던 감정이 되살아난다.


라이벌인 태산 변호사들과 함께 다시 찾은 소덕동. 팽나무 나뭇잎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던 햇빛,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며 불어오던 바람, 그 속에서 태수미(영우 친모)와 영우 둘 만 남아 나누던 대화, 애잔한 분위기와 함께 그림 같이 서있던 팽나무에 마음이 갔다.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이 팽나무... 정말 멋있습니다.

                                                                 우영우




영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영우 팽나무’ 보고 싶다, 저기 어디지? 드라마를 보며 감탄하던 나는 얼마 후 잊지 않고 검색해 보았다. 실제 500살로 추정된다는 드라마 속 팽나무가 경남 창원 동부마을에 있더라는. 안타깝게도 드라마가 방영된 직후여서인지 관광객들이 몰려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씁쓸한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사람들 참 빠르다 빨라, 나까지 가서 쓰레기를 보태면 안 되겠구나 포기하며 한국사람이 아닌 양 한국사람을 욕했던 기억도 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래서 안돼.. 쯧쯧'하고 말이다.(지금은 안정을 되찾고 관광명소가 된듯하다)


드라마가 끝나고 몇 계절이 지났지만 '팽' 하면 이제 ‘팽나무'가 먼저 생각날 만큼 나무 이름이 콕 박혔다. 언젠가는 웅장하고 너그러운 팽나무를 꼭 만나봐야지 이따금 다짐도 했다.





그런데! 이게 머선일이고?



집 앞에서 만난 팽나무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니?)


비 오는 날 저녁 설렁설렁 아파트 단지를 돌다가 눈에 띈 팻말. 거기엔 정확히 '팽나무'라고 적혀있었다. 고개를 들어 쭉 올려다보니 제법 큰 나무가 내려다보고 있더라는. 도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걸까?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팽나무가 우리 아파트 화단에 있었다니. 매일 오가던 그 길 옆에 뿌리를 내렸다니.


올봄이었나 작년 가을이었나 암튼 화단 군데군데 커다란 구덩이가 파이고 더 커다란 나무들이 심어지길 기다리며 누워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중 하나가 너였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도 수십일 아니 수백일을 눈길조차 주지 않고 모른 체 지나다녔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글쓰기를 하며 생긴 변화다. 대화를 유심히 듣는 것, 주변 사물이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 평소 눈에 띄지 않던 것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 그날도 굳이 고개를 숙여 팽나무라는 작은 팻말을 찾으면서 보고 싶던 나무를 바라보게 되었으니. 관심을 쏟는 만큼 보이는 진리다. 팽나무의 꽃말은 고귀함이라는데 고귀한 나무를 발견하게 해 준 글쓰기가 새삼 고귀하다.


곁에 있지만 모르고 지나친 것들이 또 없는지 다정하게 살펴봐야겠다. 책장 깊숙이 숨겨져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책 속에 만 원짜리 비상금은 없는지(헤헤), 옷장 속에 처박혀 빛을 잃어가는 옷이 있는지, 관심과 애정을 기다리는 아이와 남편의 눈빛을 지나치진 않았는지. 무탈한 일상을 고마운 줄 모르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은지.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 집에 돌아와 보니 자기 집 새장 속에 파랑새가 있었다는 동화가 생각난다. 멀리 경남 창원에만 있을 것 같던 팽나무를 코 앞 화단에서 만난 것처럼 파랑새도 행복도 가까이에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늘 관심을 두고 다정하게 바라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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