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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n 23. 2023

왜 나의 김밥은 사진과 다른가?

괜찮아 맛은 같을 거야

작년 여름 6kg을 뺐다. 자다가도 일어나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옷장 문을 열고 바지를 꺼내 입어봤다. 헐렁해진 허리춤, 여유로워진 엉덩이 맵시를 확인하고는 배시시 웃으며 다시 잠들었다. 결혼 전 몸무게로 돌아가 뱃살 가볍게 사뿐사뿐 다녔다. 딱 맞아 이쁜 게 아니라 너무 딱~ 맞아 민망했던 베이지색 반바지에 좋아하던 하얀색 티셔츠를 야무지게 집어넣고 다녔다. 배에 힘을 주지 않아도 배꼽과 바지 단추 사이에서 느껴지던 기분좋은 넉넉함.


겨울을 지나며 빠졌던 살은 차곡차곡 차올랐다. 여름내 땀을 뚝뚝 흘리며 한 시간씩 홈트를 했었고, 애정하는 술을 3주간 입에 대지 않았으며 좋아하던 바닐라라테도 손절했었는데. 누군가 행복은 광고 같다고 했던가. 광고처럼 짧다고. 젠장! 빠진 만큼 그대로 차오르는 요술이다. 완전 밑지는 장사를 했구나. 이게 바로 이름만 귀엽지 전혀 귀엽지 않은 ‘요요’라는 것인가. 요요 요요 요요 발음을 해본다. 어쩐지 '용용 죽겠지'에 용용으로 들리는 것은 내 심보 탓인가.




뚝딱뚝딱 눈대중으로 하는 요리가 어려워 콩나물무침 하나도 레시피를 찾아보는 나는 종종 요리책을 빌려본다. 유튜브에 백종원 아저씨도 있고, 마카롱 여사님도 계시지만 이따금 요리책이 당길 때가 있다. 지난주는 도서관에서 다이어트 책을 쓰윽 둘러보다가 맘에 쏙 드는 녀석을 한 권 집어왔다. <맛있게 살 빼는 다이어트 레시피>. 부제가 끝내준다. 운동 없이 8kg  감량!  운동은 설렁설렁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쉽게 빠질까 응큼한 나의 속내와 딱 맞아떨어지는 부제다.


목차에 있는 음식이름을 눈으로 한 번 주욱 훑은 후 통째로 잡고 휘리릭 넘겨본다. 알록달록 정갈한 음식 사진들이 다이어트 식단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시선을 잡아끈다. 집에 있는 재료들을 머릿속으로 대충 그리다가 딱! 정한 메뉴. 시작은 너다. 두부묵은지 김밥.


[ 재료 ]
김밥김 2장, 두부 1모, 묵은지 100g(씻어서 물기 뺀 양), 참치 통조림 80g, 청양고추 2개, 파프리카 1/8개씩(노랑, 빨강), 알룰로스 1숟가락, 소금, 참기름 조금

[ 만드는 방법 ]
1. 물기 제거한 두부를 그릇에 담고 소금, 참기름 넣어 으깨면서 비빈다.
2. 물에 씻어낸 김치를 꽉 짠 후 알룰로스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3. 김밥김 2장을 이어 붙인 다음 김치, 두부 펼쳐 깔고 그 위에 참치, 청양고추, 파프리카 올려 만다.
4. 참기름 바르고 한 입 크기로 자른다.


와우! 볶고 데치고 할 것도 없으니 세상 간단하다. 마침 재료가 거의 있었고, 없는 파프리카는 집에 있는 오이로 대체했다. 소금, 참기름 조금이라는 설명이 살짝 거슬리긴 했지만 이 정도는 넘어가야지.(눈대중으로 하는 계량이 어렵다. 조금, 적당히, 수북이, 한 줌 그런 불친절한 설명이 싫다. 헤헤)


시키는 대로 묵은지 100g까지 저울에 올려 재고, 책에서 말하는 두부 1모는 몇 그램인지 꼼꼼히 살핀 후 레시피대로 정성스럽게 말았다. 예쁘게 말고 사진 찍어야지, 브런치에서 김밥 글을 좋아하던데 글도 써야지 콧노래를 부르며 드디어 완성! 이제 참기름 쓱쓱 바르고 잘라본다.



앜! 이게 뭐야!


두부묵은지 김밥ㅠ



어쩐지 김밥이 통통하다 했다. 잘 썰릴까 작은 물음표가 떠다니긴 했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두부들은 김밥 속에서 튀어나오겠다 아우성이다. 참치 녀석까지 덩달아. 청양고추, 김치는 생각만큼 썰리지 않는다. 두부의 수분 때문인지 참기름의 촉촉함 때문인지 김이 눅눅하다. 그나마 속재료들을 온전히 김 속에 가둬두려면 거짓말 조금 보태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두께로 썰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이 요리책 작가는 어찌 저리도 예쁘고 깔끔하게 완성품을 내놓았을까.


조금 억울한 생각도 든다. 똑같은 재료에 똑같은 레시피. 양까지 재가며 하란 대로 했는데 말이다. 심지어 나는 두부 양도 레시피보다 살짝 적게 했는데 왜 다 튀어나오고 난리람. 뭐가 문제일까. 참 맘대로 안 되는구나.




어디 인생에서 맘대로 안 되는 게 김밥뿐이랴. TV 속 누구 머리 스타일이 멋져 보여 똑같이 해보려 해도 그 멋이 안 나는 것을. 교육 유튜버들의 자식 자랑(괜히 자랑처럼 느껴지는 나의 심보)을 샘내 하면서 내 아이에게도 똑같은 책을 읽게 하지만 영상 속 그 아이를 똑 닮은 똘똘함은 나오지 않는 것을. 글쓰기 책을 잔뜩 읽고 단문으로 써라, 부사를 줄여라, 접속사를 빼라 아무리 따라 해도 그 수준에 가닿지 못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 해도 똑같아질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달까. 나만의 고유성을 찾아야 한달까. 좋은 점을 받아들이되 나의 색깔을 입혀야 한달까. 실패의 원인을 찾고 보완해야 한달까. 김밥 한 줄 엉망으로 말아놓고 이리저리 의미부여가 심하다. 하하


김밥 맛은 나쁘지 않았다. 김밥은 무엇을 넣고 말아도 맛있다 하지 않았는가. 입맛을 떨어트리는 비주얼이 최대 약점이기는 하나, 다이어트 식단이라는 장점으로 극복해 건강해지는 마음으로 눈감고 먹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원인을 찾아야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김밥도 인생도 칼이 문제로구나.

칼을 갈아야겠다. 종이도 베어버릴 만한 나만의 칼을. 나의 고유한 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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