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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n 05. 2023

해물파전은 거들 뿐

막걸리를 주시오

남편과 안 맞는 구석이 제법 많다. 처음부터 맞지 않았는데 살면서 알아챈 건지, 애초엔 맞았으나 살다 보니 변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화장실 변기 뚜껑을 올려놓니 내려놓니, 치약을 중간부터 짜니 마니, 사용한 물컵을 제자리에 두어라 마라 하찮은 것부터 시작해 아이 학습습관을 위해 TV시청을 줄이자, 아빠도 함께 책 읽는 시간을 갖자, 내 입장에서 보면 꽤나 중요한 문제까지 의견충돌로 삐걱거렸다.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 한가인이 남편 연정훈과의 MBTI가 최악의 궁합이라며, 어쩐지 안 맞는다고 말해 웃음을 터트린 적이 있다. 아마 우리 둘도 MBTI를 비교해 보면 만만치 않을 듯하다.  


그런 우리가 변함없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딱 맞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술'



"점심으로 초밥에 맥주 한잔 마실까?"
- 콜

"선술집 새로 생겼던데 가서 사케 마시자"
- 콜

"케이크 쿠폰 있는데 와인도 사갈까?"
- 콜

"저녁에 집에서 하이볼 만들어 먹자"
- 콜

곱창전골에 소주?  콜
피자에 맥주?  콜
깐풍기에 고량주?  콜



대충 이런 식이다. 대학 때부터 만나 부지런히도 마셨다. 한때는 지독하게 들이켜기도. 그 시절 카페보다는 술집을 자주 갔고, 화이트데이 때도 남친(현 남편)과 감자탕에 소주를 마시며 '사탕' 대신 '감자탕'을 선물 받았다고 깔깔댔다. 애주가인 나를 남편이 주정뱅이라 매도하는 일도 그 옛날에는 종종 있었다는. 하하

다른 건 모르겠으나 2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술 코드'는 통한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다른 부부들도 다 이렇게 살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부부끼리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지인들을 꽤 봐왔다. 보통은 아내 쪽이 싫어했고 더러 남편이 못 마시는 경우도 보았고, 드물게는 둘 다 좋아하는데 각자 따로 즐긴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집에서도 캠핑장에서도 여행지에서도 곧잘 술을 마시는 우리는 필요이상 다정한 부부로 오해되어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둘이서 마시면 심심하지 않느냐, 할 얘기가 있느냐는 의아함도 동시에 받는다. 허나 우리는 술 자체를 좋아하는 거지 부부끼리 꽁냥꽁냥 양질의 대화를 나누며 마시는 것은 아니니 부러워하지도 의아해하지도 마시길; 헤헤




먹구름에 회색하늘이 되기 시작하면 슬슬 시동을 건다. 청각뿐 아니라 미각까지 자극하는 요란한 비가 쏟아지면 어김없이 파전이 떠오른다. “해풀파전 먹고 싶다"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막걸리 마시러 나갈 채비를 하는 남편. 빗소리도 생생하게 들리고 비 내리는 풍경도 보기 좋은 곳으로 애써 골라간다.

그때 우리 둘의 마음은 같다.


'해물파전은 거들 뿐. 막걸리를 내놓으시오!'



막걸리를 마시며 생각한다.

안 맞는 구석이 꽤나 많지만 평생 술친구 하나 얻었다 생각하면 그리 손해 보는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막걸리에 곁들이는 해물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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