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감」 권정민 그림책
"진짜? 미역국 먹으면서 울어본 적 없다고?"
나는 다 그런 줄 알았다. 아이를 낳고 신생아를 키우며 하릴없이 눈물이 흐르는 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식탁에 앉아 별일 없이 미역국을 먹다가도 맥없이 눈물이 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아이 낳고 마음이 울적하긴 했지만 미역국 먹다 울어본 적은 없다는 동료직원의 말에 되려 놀랐다.
일하시는 친정엄마가 출근 전 가끔 집에 들러 나와 아기를 들여다봐주고 갔다. 문 앞에서 엄마를 배웅할 때마다 눈물이 고여 먼저 뒤돌아서기 일쑤였다. 마음이 맑았다 흐렸다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했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게 우울감이란 건 한참 후에야 알아챘다.
아이를 낳으면서 휴직을 했고 때마침 올려달라는 전세금에 어차피 1년은 출근을 안 하니 원래 살던 도시와 경계를 이루는 옆 도시로 이사를 갔더랬다. 옆 도시가 문화센터도, 극장도, 백화점도 없는 심심한 동네라는 것을 가기 전엔 미처 몰랐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도시에서 24시간 아기만 바라보다, 무료해지면 아기띠를 메고 아파트 셔틀버스를 타고 이마트에 가서 사람구경을 했다. 엄마는 일하느라 시간이 없었고, 시부모님은 지방에 살며 우리 아이보다 두 살 많은 조카를 맡아 키우고 계셨고, 남편은 주말 부부로 평일엔 없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평일에 오는 날도 아기와 내가 잠든 시간에 들어와 새벽같이 나가야 했다.
주위에 어려움을 털어놓거나 부탁을 하는 성격이 못되기에 육아를 책으로만 배우며 홀로 고군분투하던 시기.
아이가 고열에 시달려도, 온몸에 울긋불긋 열꽃이 피어도 의논할 사람이 없었다. 잘 자지 않고 잘 토하는 아기 덕에 늘 신경이 곤두서고 피로했다. 하루종일 한 끼도 먹지 않은 채 두유로만 버텼던 날도 제법 있었다. 거실 이불에서 겨우 잠든 아기가 부엌 딸그락 소리에 깰까 봐 밥도 먹지 않고 불도 켜지 않은 채 노트북 불빛에만 의지에 두유를 쪽쪽 빨았다. 그러다 밤늦게 들어온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 문을 탁탁 닫고, 형광등 불을 부주의하게 딸깍 소리를 내며 켤 때 얼마나 싫던지.
다크서클은 깊어지고 머리는 늘 추노처럼 꼭대기까지 올려 꽁꽁 동여매고, 한번 풀었다 하면 감은 지 오래되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 지금 생각하면 기괴한 모습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얼마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리고 분유까지 먹이면 오던 잠은 달아나고 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왔다. 푹 자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던 때다.
어느 날엔가는 자다 깨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면서 분유를 타고 있는데 작은방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주말인지라 남편이 그 새벽시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 휴직 중이니 나는 논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이를 돌보는 것은 전적으로 엄마가 해야 한다고 믿었던 걸까. 여태껏 분유 한번 타준 적 없고 나를 대신해 아기 한 번 재워본 적 없는 남편이 야속해 그 새벽에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미친녀자지 미친녀자야. 이 새벽에 잠도 못 자고 나만 이러고 있으니!
정말 그날은 미친 여자 같았다. 모든 게 억울하고 야속하고 분하고 화가 났다. 비슷한 시기에 아빠가 된 직장동기가 새벽마다 아기 분유를 먹이고 재우느라 입술이 찹쌀떡처럼 허예져서 출근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대학 선배는 아내 손목이 아프다며 회식을 하다가도 아기 목욕을 시키러 밤 10시까지는 집에 들어간다는 말도 귀에 들어왔다. 나도 손목 아픈데, 나도 새벽에 푹 자고 싶은 게 소원인데. 해맑게 컴퓨터 게임만 하는 남편이 마냥 서러워 울었다.
아무도 몰라주던 그 시절 나의 24시간을 알아주는 그림책을 만났다. 권정민 작가의 <엄마도감>
엄마는 아기와 함께 태어나는 신생인류라며, 아기 성장에 대한 보고서는 쌓여가는데 신생 엄마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작가의 말. 왜 누구도 갓 태어난 엄마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지, 모든 것이 처음인 세상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을 갓난 엄마들을 생각하며 책을 만들었다는 작가의 말 만으로도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떨어진다.
태어난 아기는 엄마를 보며 생각한다. 엄마의 모습이 배 속에서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퉁퉁 부어있다고, 생후 100일까지는 쭉 이런 얼굴이고 한동안은 눈을 제대로 못 뜨는 것 같다고 엄마가 괜찮은지 걱정한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자기가 부르면 즉시 달려오니 몸이 날쌔고 귀도 밝은 것 같다며, 자기가 아는 동물 중에 엄마가 제일 빠르다고 말한다. 다양하게 변하는 엄마의 기분을 걱정하고, 외출할 때 가지고 나가는 큰 가방에는 모두 자기 물건뿐이라며 제발 엄마 물건부터 잘 챙기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엄마가 가끔은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 같기도 하고 무서운 마녀 같기도, 공주님 같기도, 폭발하는 화산 같기도 하다는 아이. 엄마의 진짜 정체를 밝히기 위해 연구를 계속해보겠다는 말로 그림책은 끝이 난다.
아기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나와 너무 닮아있어 놀랐다. 조그만 움직임이나 울음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나, 한시도 눈에서 뗄 수 없어 기어이 화장실 앞에 아이를 옮겨다 놓고 볼일을 보는 다소 수치스러운 순간들, 삐뽀삐뽀 소아과 책을 내 분신과 같이 끼고 살던 나날.
그림이 몹시 현실적이라 한 페이지, 한 문장 오래 머물렀다. 그 시절 내 아이도 나를 보며 이런 생각과 걱정을 했겠구나 뭉클함도 올라온다. 남편도 몰라주는 것 같아 나만 미친 여자라고 소리치던 그 시절의 나와 나의 시간을 오롯이 이해해 주는 것만 같은 그림책. 그래서 위로받고 실컷 웃다가 결국엔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몸은 덜 고되지만 또 다른 고민으로 머리는 무거워지는 요즘. 하나 단단한 마음이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는지 이제는 별안간 눈물이 흐르지 않아 다행이다. 지금 딸아이는 내 모습을 어떻게 관찰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직 어린 아기를 돌보며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이 책을 보며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위로받길,
긴 육아의 터널을 지나 이제 한시름 놓은 이들은 옛날 옛적을 생각하며 피식 웃을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