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어도 참 부담스러운데, 쿠팡에서 배달 온 물건인 걸 보니 잘못 주문한 것입니다. 어쩐지 결제금액이 좀 많더라니. 핸드폰 화면이 더디 넘어가 여러 번 클릭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문 수량을 한 번 더 확인해 볼걸. 난감한 상황을 맞아 식탁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어쨌거나 지금 달걀 120개가 식탁에 쌓여 있구나. 생물인 달걀을 다시 반품하자니 좀 미안한 일이고. 둘이 하루에 각각 한 개씩 먹으면 두 달 걸리겠는데. 멀리 있는 둘째한테 계란 반찬 많이 해 보내야겠구나. 가만 보자, 앞집에 좀 나눠 줄까? 아니다. 서먹한 사이에 음식 주고받는 거 서로 부담이지. 이왕 식비 나갔으니, 달걀 상하기 전에 당분간 이것저것 해서 먹어보자.
인터넷 검색을 시작합니다.
'달걀 요리'.
삶은 달걀, 달걀 샐러드, 계란찜, 계란 오믈렛, 계란 감잣국, 달걀덮밥, 계란말이, 달걀 볶음밥, 달걀 샌드위치, 달걀전, 계란 김밥, 스크램블에그, 계란빵, 달걀 프라이······.
음식들이 주르륵 펼쳐집니다. 가족들에게 달걀 프라이 아니면 달걀찜만 늘 해주었던 게 조금 미안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까 궁리가 듬뿍듬뿍 들어간 요리들을 보니 난감했던 마음에 해가 쨍 듭니다.
매번 중탕으로 하던 달걀찜 요리법 대신 전자레인지로 몇 분 밖에 안 걸리는 손쉬운 요리법을 배워봅니다. 달걀을 얹기 위해 각종 야채와 밥을 볶기도 하고요. 달걀을 풀어 넣기 위해 감자를 깎아 감잣국을 해봅니다. 지단을 원 없이 넣은 김밥을 말아봅니다. 달걀 스무 개 삶아 놓는 건 기본이죠.
삶은 달걀만 120개 먹으라면 진저리가 났을 텐데, 이런저런 다른 재료와 섞어 요리하다 보니 색다른 맛을 알게 되는 즐거움이 또 있습니다. 이것도 꽤 괜찮네? 하는.
그러고 보니 인생도 달걀 요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느 날 태어났는데 달걀 120개를 받은 거죠. 태어나보니 부모님이 있고 형제들이 있고 만족할 수 없는 얼굴과 얼마간의 시간, 잘할 수 있는 게 조금 있고 지지리도 못하는 게 조금 있는 상태로. 이미 배달된 달걀처럼 환경과 기질과 시간도 주어졌습니다.
전생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족할만한 달걀일 수도 있겠지만 더러 불만일 수도 있겠죠. 무심코 핸드폰을 여러 번 클릭해서 잘못 주문하듯, 과거 내가 저지른 어떤 기억나지 않는 행동의 과보라 해도 어쩌겠습니까. 반품은 불가한걸요. 달걀이 상하기 전에 어떻게 맛있게 먹을지 궁리하는 편이 훨씬 낫고 말고요.
어떤 사람은 주어진 달걀과도 같은 자신의 조건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해 흥미진진한 삶을 만들어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삶은 달걀 같은 담백한 삶을 선택하기도 하고요. 요리하는 사람 마음이죠. 그 또한 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달걀요리가 다른 맛이지만 각각 제 나름의 맛이 있는 것처럼요.
우울한 달걀 같은 날도 참 많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달걀이 왔을까 고민하기보단 오늘의 요리방법을 궁리해 봅니다. 요리하면 당연히 맛이 달라지니까요.
새로 달걀을 주문했습니다.
난감한 상황도 어느새 다 지나갔네요. 달걀을 재료로 하는 다양한 요리 비법을 알게 되었고 가족과 넉넉한 식사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만족합니다. 벌써 '오늘'이라는 달걀이 도착했군요. 무슨 요리를 할지 그건 요리사에게 달려 있죠. 지난 세월 알게 된 다양한 요리법도 좋겠고 나만의 새로운 요리법을 시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