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결과론적 사회에서 살아남기

by 생강





항상 생각합니다. 결과가 좋으면 언제든 열심히 할 텐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피어날 꽃에 물을 주고 있는 거라면, 이 고통 또한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우리는 과정 속에서 언제나 값진 결과를 소망하고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맙니다. 좌절하고 다시 일어날 힘을 찾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죠. 마치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그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내 의지로 할 수 없는, 그러니까 내 힘이 닿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건 어찌할 수 없으니 지금의 일을 하는 것 밖에 없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결과가 중요하고 그것을 얻으려면 자책하면서도 나를 갈아 넣어야만 할 것 같고. 목적을 잃고도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생각과 행동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로 무엇을 하는 줄도 모른 채 하던 것을 계속 이어가고. 그렇게 번아웃을 맞이하고.


가끔은 결과가 운칠기삼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운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때도 있어요. 운도 실력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몇몇 운은 기회로부터 나를 떨어뜨리기도 하더군요.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인간은 피폐해지는 것 같아요.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날의 나를 꾸짖고, 남들보다 잘하지 못한 나를 괴롭히고, 그다음의 것들을 착실하게 실행하지 못하는 단계로 접어들죠. 결과론적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일들을 모두 겪어야만 하는 걸까요? 견디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요?


이건 건강하지 못한 과정이에요. 최선을 다했는데도 나를 혼내야 하는 세상이 과연 건강한 세상일까요.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저는 제 주문 하나를 말해보려 해요. 나만의 주문이 여러분의 주문이 될 수 있도록.


“나는 잘 될 건데 지금 잠깐 고민하는 것뿐이야!”


잘 될 것이라는 행복한 결과, 약간의 희망과 그리하여 획득할 수 있는 일말의 자신감과 행동의 증폭, 이것이 바로 건강한 과정 속의 ‘나’ 아닐까요? 결과를 위해 달려가는 세상이지만 그 과정 속의 '나'만은 잃어선 안 되는 것이니까요. 그걸 잃어버리면 꽤 많은 부분을 삶에서 삭제당하게 될 거예요. 어딘가 결여되고 삭제된 삶을 다시 건강하게 되돌리려면 꾸준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나 그 과정 또한 가치 있다는 것. 존재를 존재로서 증명하는 삶, 그러니까 내가 나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값지다고요.


모든 과정 속에 놓인 나와 여러분에게 이 주문이 친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주문이 발휘되지 않는 날도 있겠지요. 그래도 과정 중에 한 번쯤은 웃는 날도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결과는 우리를 찾아오게 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 시간들을 건강하고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 구석 하나는 마련해두면 좋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