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정말 많이 왔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을 때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
달려오는 차를 피해 하수구 쪽으로 발을 틀었다.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빗물을 보며 조심해야지, 생각했다. 미끄러웠고 앞이 잘 안 보였고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때 비를 피하시던 한 할머니께서 내게 소리치셨다. '밑에 조심! 빠져요, 빠져.'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넘어질 것 같은 굴곡의 아스팔트였고 그 앞에는 덜컹거리는 하수구 뚜껑이 있었다. 나는 당황한 채 '아 네.'라고만 대답을 하고 그곳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본인도 비를 피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푼다. 낯선 이에게서 순간적인 친밀감이 느껴졌다.
낯선 친절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모르는 이를 도와주는 마음은 어떨 때 피어나는 걸까. 나는 왜 감사하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치지 않을 것 같던 빗줄기 속에서 어디를 가시던 길이었을까. 그저 집 앞에 나와계시던 것이었으면 좋겠다. 험난한 하루가 아닌 그저 비를 보러 나온 날이었으면 좋겠다. 걱정이 됐고 나의 행동에 후회가 밀려오는 날이었다. 낯선 이가 나를 걱정한다. 내가 그곳을 빠져나올 때까지 내 뒤를 봐주었다. '응, 됐어. 가요.'라고 말해줬다. 뒷짐을 지고 날 봐주었다. 비가 덜 오는 지금도 자꾸만 곱씹는 기억이다.
낯선 이가 주는 친절은 긴장과 고마움이 뒤섞인 뜻밖의 선물 같다. 할머니는 잘 계실까. 어느 날 동네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드리고 싶다. 내게 뜻밖의 선물을 준 사람의 얼굴과 손짓을 생각하며 다른 이에게 이 마음을 꼭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낯선 친절을 잘 숙성시켰다가, 다음에 다른 이가 곤란함에 빠진 것을 목격하게 되면 달려가서 똑같이 도와줘야지. 그럼 그 사람도 다른 이를 도와주고 다음 이도 그다음 이를 도와주면 좋겠다. 나를 도와줬던 낯선 사람을 떠올리며 언젠가 자신의 친절이 돌고 돌아 이윽고 스스로에게 다시 돌아오는 날을 믿길 바란다. 친절의 순환이 계속되면 세상은 꽤 단단하고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