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한 향기가 입 안에서 터질 때
8.
이 년 전,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귤을 한 봉지 사온 적이 있다. 운전하던 친구가 대뜸 귤 농장을 가야겠다고 말했다. 나와 Y와 다른 한 명은 그러자 했고, 친구는 부모님께 드릴 귤이라고 했다.
그를 따라간 곳은 작은 상점 뒤로 귤 밭이 펼쳐진 곳이었다. 사장님은 우리 넷에게 금방 딴 레드향을 주셨고 한 입 넣는 순간 우린 그 자리에서 모두 레드향 한 봉지씩을 손에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내가 먹어 본 귤, 오렌지를 합해서 가장 달고 맛있었다. 껍질은 얇고 과육은 꽉 차있었다.
친구는 집 앞으로 한 박스를 주문했고, 나도 그러고 싶었으나 가족들 취향에 맞지 않을까 봐 만원 어치만 구매했다. 레드향은 한 손에 가득 차는 크기였고 만원 어치였으나 그 양이 꽤 많아서 가방의 짐을 많이 빼야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상의 네 겹을 입은 채로 땀을 흘리며 레드향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양말도 하나씩 더 신을 걸 그랬나. 가방은 이미 레드향으로 가득 찼고 살아남은 몇 가지의 옷에 귤 냄새가 은은하게 뱄다.
엄마는 만원 어치만 사온 나에게 소심하다고 말했다.
이 맛있는 걸. 더 사 와도 되는데.
아니, 엄마 없을 때 채소나 과일 사면 나한테 더 좋은 거 없었냐고 하니까, 괜히 쓸데없는 거 산 걸까 봐 그랬지. 엄마 귤 많이 안 좋아하잖아.
맛있네. 명함 받아왔니?
아니. 근데 내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간 거라 나한테 주소 있을 걸.
거기 번호 줘 봐. 더 주문할 수 있나 보게.
그럴까? 진짜 맛있지.
엉. 잘 샀네.
흐흐. 다행이다.
찾아보니 그곳은 제주에서 유명한 귤 농장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가장 가까운 곳을 검색해서 간 건데 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레드향을 비롯해서 비트, 포도, 한라봉 등 여러 과일과 채소를 팔고 있었다. 우리가 농장에 도착했을 시기에 레드향은 끝물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나는 농장 홈페이지에서 레드향 10kg을 구매했다. 첫 입을 베어 먹었던 순간도 함께 실려오길 바라면서.
우리 집은 매년 그곳에서 레드향을 주문한다. 할머니 댁과 삼촌네 집에도 연말 선물로 보낸다. 십이월 중순쯤이면 레드향 구매가 가능하다는 문자가 온다. 올해는 늦나 보다. 늦어도 좋으니 어서 먹고 싶다.
껍질을 까고 노랗게 물든 손으로 과육을 씹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맛있는 것을 공유하는 순간 모두의 얼굴은 레드향 향기보다 더 생기가 넘친다. 소중한 사람들의 생기 있는 얼굴을 볼 일이 적어질수록 자꾸 맛있는 걸 사게 된다. 맛난 것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기 때문이다. 긴장이 풀려 흐물흐물한, 그래서 생기가 도는 표정들은 애틋하고 소중하다.
제주에서 먹은 레드향과 서울에서 먹은 레드향은 맛이 같았다. 여전히 훌륭했고 여전히 싱그러웠다.
어떤 순간은 새로운 순간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