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수의 노래를 듣고서
9.
목소리가 담요 같은 사람이 있다. 이불속으로 도망치기엔 할 일이 남았을 때, 담요 하나 두르고 묵묵히 살아내는 나에게 책임 없는 위로가 아닌 같이 울어주는 사람. 그럴 때면 울고 싶지 않은데도 울고 싶어 진다.
언제부턴가 나는 염세적이고 가느다란 사람이 됐다. 크고 작은 일들이 계기가 되어 내 한 구석을 형성할 때, 한 줌 밖에 안 되는 일에도 마음을 깊게 베여서 아예 입을 닫는 사람이 된 것이다. 굵직하고 씩씩하게 살고 싶단 마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생존. 그것이 내 유일한 목표였다.
‘뭉툭한 마음으로 얼마나 갈 수 있나. 연필깎이처럼 마음을 날렵하게 깎아 재정비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울고 싶어도 울면 안 돼. 내가 뭐라고 울어. 무엇을 했다고 울어. 울고 싶지만 울고 싶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간다.’
작은 손으로 일기장에 쓴 내용이었다. 스스로를 울 자격도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울 시간에 앞으로 나아가야지. 다정한 말투로 시작해서 마음을 때리는 말로 끝맺었다. 한동안의 일기는 압도적으로 어둡고 축축했다. 어떤 날은 찢어지도록 건조했다. 중간이랄 게 없이 옅은 생기로 살아간 것이다.
담요 같은 사람은 내가 가장 최악일 때 나타났다. 매일이 최악이었으므로 그가 나타난 시점부터 지금까지 우연은 없었다. 그저 내가 매일 힘겨웠고 그는 본인의 삶을 살았을 뿐. 나를 위해 한 일이 아닌데도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말투, 표정, 목소리, 손짓, 발짓, 가끔 기울어지는 목, 꼿꼿한 자세를 보고 울컥한 적도 있다. 어느 날엔 나와 우리에게 잘 살아내자고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자꾸 잡고 싶어 진다.
묵묵히 내 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자랑이 되곤 한다. 위로가 되고 자부심이 되기도 한다. 사랑을 넘어 방공호가 되기도 한다. 존재만으로도 살아갈 용기를 준다.
당신이 그렇다. 그걸 알까.
내 안부를 물어봐 주는 사람이 있다. 나의 생존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 납작하고 처량한 내 하루를 감싸주는 사람이 있다. 언제까지고 날 위로해 줄 것만 같은 사람이 있다.
살아야겠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싶어.
떠나간 사람들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