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나
10.
사진을 인화했다. 무광지로 스물세 장. 내 사진은 세 장. 나머지는 가족들의 것이었다.
나는 내가 나온 사진을 선호하지 않는다. 어떤 순간, 내가 목격한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는 게 좋다. 결국 나의 핸드폰 속 앨범에는 풍경사진과 사람들, 친구네 집 강아지와 길고양이들이 대부분이다. 기억이 휘발되는 게 싫어서,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내가 본 그대로를 찍어서 간직한다.
시간이 지나고 사진을 훑어본다. 그 당시가 기억나면 없던 생기도 피어나는 기분이다. 맞아, 우리 그랬었지. 살아온 날을 더듬거리면 어느 순간에 행복했고 어느 순간에 화가 났는지 금방 알아차린다. 그럴 때면 애틋하면서도 그립다. 그립고 사랑스럽다. 우울함은 사라지고 몽글거리는 기억들이 날 감싼다. 사람의 기억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때로는 내 모습을 온전히 보는 게 무섭다. 내가 기대한 만큼 멋있는 사람이 아닐까 봐 두려워서 앵글 밖으로 사라진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거울로 보는 나보다 앵글에 잡힌 내가 더 객관적이므로 더 객관적으로 내가 못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타인의 시선 속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결정됐기 때문이다.
나를 결정하는 기준이 남에게 있을 때, 우린 스스로를 잃는다. 아무리 혼자 지내도 타인과 부딪치고 결국 이 세상은 남과 같이 살아가야 하므로 남의 시선이 내게 중요한 잣대가 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남의 시선에 맞춰 나를 설계하면 결국 나는 무너지고 만다. 남의 입맛대로 구성된 나라는 존재, 정작 타인은 그런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
나를 안고 살아야 하는 건 언제나 나라는 것. 이 사실을 깨달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
인화한 사진을 본다. 대학교 졸업식 때 학사모를 쓰고 졸업장을 안고 어색하게 웃는 내가 있다. 그때도 내 앞의 풍경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사진에 멋지게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사진 속의 나는 멋졌다. 그때의 나를 보면 내 앞의 풍경도 떠오른다. 우중충했지만 우중충해서 눈이 부시지 않았다. 눈이 부시지 않아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었고 꽃다발이 아주 알록달록하게 나왔다. 학사모를 던지며 눈에 주름이 질 정도로 웃던 내가 꽤 유쾌하게 담겼다. 좋은 기억이었고, 멋진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