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11 - 주판과 엄마

모든 것을 두고 떠나온 기분이야

by 생강

11.


어릴 때 주판 학원을 다녔었다. 엄마는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엄마의 주판 실력을 동경했다.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 단지가 많은데 그중에 꽤 오래된 단지를 가로질러 가면 상가 건물들이 터져 나온다. 나의 작은 주판 학원은 그곳에 있었다.


내가 사용하던 비공식적 주판은 엄마의 오래된 주판이었는데, 학원을 등록하자마자 내 손에 들어온 건 초등용으로 생산된 손바닥 크기의 무지갯빛 주판이었다. 세로로 다섯 개의 알이 길게 늘어져 있던 엄마의 주판보다 반절이나 작은 크기였다.


학원에 가자마자 하는 일은 ‘주판으로 백육십오를 계속 더하기’였다. 첫 번째 줄의 알은 오, 나머지 네 알은 각각 일을 의미했다. 가장 왼쪽에서부터 백육십오를 놓고, 이어서 백육십오, 백육십오를 더하고 더하면 결국 주판알이 모두 중심에 몰린 모양이 된다. 그것을 가장 빠르게 해낸 사람부터 책을 펼쳐서 수업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집에서 주판을 자주 만지고 놀았던 나는 익숙하게 해내곤 했다. 스케이트라며 주판에 발을 대고 바퀴처럼 밀고 다니던 내가 학원에서는 백육십오를 가장 빠르게 계산하는 학생이 되다니. 철부지가 드디어 무언가를 하다니.


백이십에 오십삼이요, 삼십팔이요, 십칠이요, 구십사요… 선생님이 읊듯이 부르는 숫자를 빠르게 더해 손을 들고 답을 외쳤다. 대부분은 이런 문제의 정답을 맞히고 문제집을 풀고 채점을 하는 식의 수업이었다. 문제집 속의 계산을 주판으로 빠르게 해결하는 아이는 빠르게 채점을 받고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나는 내 실력을 확인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고 집에서 엄마의 주판으로 어려운 계산을 시도하는 일도 좋았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집과 학원을 오고 가는 길이 매우 어두웠다는 것. 학원에 갈 때에는 대부분 해가 떠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해가 져있을 때가 많았다. 아파트 단지 사이의 좁은 인도를 십오 분은 넘게 걸어가야 나오던 곳이었고, 엄마가 자주 마중을 나오시곤 했다.


어느 날은 언니에게 뺏은 작은 MP3로 노래를 들으며 학원에 가는데, 아무리 가사를 중얼거려도 외워지지가 않아서 주판 계산을 하면서도 노래를 읊은 적이 있다. 그날도 엄마가 마중을 나오셨고 엄마에게 노래 가사를 모르겠다고 한탄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도 엄마는 마중을 나오셨고, 내 손에 가사가 적힌 종이 한 장을 쥐어주셨다. A4 용지를 반 접고 그것의 반을 또 접어서 내게 주신 건 <마법의 성> 가사였다. ‘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속에서’밖에 부를 줄 몰랐던 내겐 엄청난 선물이었다. 내가 가진 MP3에는 가사가 나오지 않았고 꽤 먼 길이었던 학원까지의 도보 십오 분 동안 아무래도 가사를 외우지 못할 것 같아 낙담하던 날이 많았었는데.


엄마는 대체로 날 이렇게 다정하고 사려 깊게 키웠다. 나의 말 한마디를 모두 주워 담아 담담하지만 최고의 선물을 주는 사람. 행동으로 모든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


그날의 귀갓길은 엄마와 마법의 성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행복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한 아파트 단지 사이를, 엄마와 손을 잡고 가로등에 잠깐 밝아지는 순간에 가사를 보며 한 음 한 음 노래를 이어나가던 그 시절을 엄마도 기억하고 있을까.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 엄마와 가사를 하나씩 뜯어보며 이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런 가사를 썼을까, 이야기하며 어두운 길을 씩씩하게 걸었다.


여전히 주판을 만지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계속해서 숫자를 더하고 답을 말하던 일, 그 속도와 쾌감, 어두운 길 사이에 반짝이던 엄마, 굴림체의 가사, 마법의 성, 맞잡은 손을 앞뒤로 빙빙 흔들던, 그 후로 내 주머니 속에 꼬질꼬질해질 때까지 담겨있던 가사 종이.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길은 여전히 어둡다. 그러나 나는 줄 이어폰이 아닌 무선 이어폰으로 무려 가사와 앨범 커버가 드러나는 음악 사이트에서 노래를 듣는다. 애쓰지 않고 가사를 볼 수 있다. 주판을 배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백육십오를 더하려고, 칭찬을 받으려고 집에서 애쓰면서 연습하지도 않는다. 엄마의 마중보다 내가 엄마를 마중 가는 일이 잦고 엄마에게 핸드폰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설명서를 설명해드리는 일이 많다. 작은 글씨를 읽어드리고 십 포인트보다 큰 글씨로 무언가를 인쇄해드리는 일이 많다. 외국 노래의 가사를 알려드리는 날들이 늘어간다.


모든 것을 두고 떠나온 기분이 든다.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변해버린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나의 역할이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바뀌었을 때, 혼란스러워서 짜증과 눈물로 대답을 대신하기도 했다.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 것 같던 나와 나의 주변은 바뀌는데 내 마음은 언제까지고 어리면 어떡하지. 그 마음 그대로 살다가 힘없이 부서지면 어떡하지.


좋은 기억과 불안한 마음으로 어른이 된 나는 얼마나 다정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발에 주판을 달고 거실을 쏘다니던, 엄마와 마법의 성을 부르던 나와 얼마나 멀어졌을까. 엄마의 가사 종이 이벤트를 마음 깊이 간직한 지금의 나는 엄마에게 얼마나 좋은 사람일까. 그때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두운 아파트 단지 사이를 이젠 지나갈 수 있는데.


내가 두고 온 것은 뭘까.


나와 나를 갈라놓은 건 시간일까, 내 마음가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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