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12 - 나를 미워하고 남은 것

자기혐오의 끝

by 생강

12.


지금의 내가 소중하면 과거의 모든 선택도 소중해진다.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후회를 덜 하기로 했다.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허무한 말보다 후회해도 결국 그 선택과 결과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나를 만들 것이라는 말이 좋다. 그게 내가 지독한 후회 끝에 얻은 것은 깨달음이었다.


나란 사람은 언제나 끝을 봐야 처음으로 돌아오나 보다. 끝없는 끝의 끝을 보고 와서야 이렇게 되면 안 되는구나,라고 느끼나 보다. 꼭 겪어 봐야 내 살 길을 아는 사람인가 보다. 그래, 나는 그 고집으로 다시 살아갈 사람인가 보다.


누군가가 물어보면 대답해줘야겠다. 내가 경멸의 끝까지 가봤는데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 미움도 후회도 체념도, 아무것도 없어. 그냥 그 시간을 통과한 나만 남아. 그런 몸과 마음으로 살아야 해. 그러니 내게 화가 나더라도 내 선택이 멍청해 보여도 이윽고 후회하는 날이 와도, 죽일 듯이 날 미워하지 마. 혐오와 경멸과 후회의 끝은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또 시작이므로 빠져나오기 힘들다.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끝은 없으니까.


행복하기도 바쁜데 내가 나를 미워하면 그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매거진의 이전글생강 긴 글 #11 - 주판과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