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13 - 코로나 이후의 삶

슬프게도 나는 더 건강해졌다

by 생강

13.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사이에 유학을 가 있던 언니가 들어왔고 나는 자가 격리를 했다. 두 번의 귀국, 두 번의 격리. 처음엔 답답했고 두 번째가 되어서야 격리 생활의 리듬을 찾았다. 잃은 것이 있다면 모두의 일상, 얻은 것은 생존 방식이었다.


첫 번째 격리를 하면서 살이 쪘다. 이 주 동안 세 끼를 모두 챙겨 먹고 방 안에 처박혀서 과자와 시리얼을 먹었다. 움직이는 거라곤 마스크를 쓰고 소독약으로 집안을 닦고 언니의 밥을 챙겨주는 것뿐이었다. 돌아보면 아주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운동량보다 먹는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먹는 것이라도 화려하게 먹어야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므로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밥을 격렬한 속도로 해치웠다. 식도로 음식을 급하게 밀어 넣으면 위장의 무게가 느껴졌다. 나는 그것의 무게를 가늠하며 만족했다. 격리가 끝날 때쯤엔 삼 킬로그램이 불어난 몸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당연한 결과에 새삼 놀라는 것은 나라는 종족의 특징인가.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아서 이 주 동안 속살을 외면했으나 내심 찔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격리 해제 후 거하게 저녁을 먹은 어느 날, 소화제를 마셔도 소화가 되질 않아 집 근처 공원을 걸었다.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쓴 사람들이 반 시계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뛰는 사람은 없었다. 과하게 화사한 가로등 빛 때문에 그림자가 공원 바닥에 진하게 늘어섰다. 한두 바퀴 걷자 체증이 내려갔다. 개운했다. 걷기만 했는데 숨이 트였다. 사람들을 추월하며 빠르게 걸었다. 박자를 잃고 기우뚱했다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걸었다. 마스크 안에서 뜨끈한 숨이 맴돌았다.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공원을 돌기 시작했다. 뛰지도, 걷지도 않는 중간의 속도로 계속 나아갔다. 개운함을 겪은 몸이 되어서 다시금 그것을 흠뻑 느끼고 싶었다.


공원 한 바퀴를 돌면 딱 오 분이 걸린다. 만 보 걷기를 목표로 한 시간 십 분 또는 십오 분을 매일 걸었다. 걷고 걷다가 어느 날은 걷고 뛰었다. 처음으로 뛰던 날을 잊지 못한다. 새로 산 검은색 러닝화를 신고 가볍게 바닥을 때리며 달리던 쾌감을. 뛰어가던 나를 보고 찰나지만 꼬리를 흔들던 작은 말티즈도 있었다. 구름이 해의 몸을 가렸다가 지나가기를 반복했다. 나무로 된 쉼터는 사람의 엉덩이가 닿으면 삐걱거렸다. 사람보다 강아지가 많은 날도 있었고 삼색 고양이와 회색 고양이가 나른하게 누워 꼬리를 말았다 펴는 날도 있었다. 나무 의자 뒤에는 잔디밭이었고 잔디가 결을 따라 무심하게 바람을 탔다. 사월 중순,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아침과 점심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먹었다. 저녁은 샐러드를 먹고 싶은 만큼 먹었다. 그 상태를 유지하니 한 달에 이 킬로그램이 빠졌다. 느리지만 정확했다. 조바심 내지 말자. 그게 목표였다. 여러 운동을 하고 여러 식단에 도전해보았지만 살을 빼는 덴 시간이 가장 좋은 재료였다.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루를 빼먹어도 그다음 날 다시 운동을 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걷기가 지겨운 날엔 집에서 요가를 했다. 명상을 하고 호흡을 했다. 나의 중심을 찾으라는 요가 선생님의 묵직한 목소리에서 평화를 보았다. 의식을 순환하고 감정을 받아들인다. 요가를 병행하니 새벽에 자주 깨는 일이 적어졌다. 십 년째 날 괴롭히는 발목의 통증도 적어졌다. 오래 걸어도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오월이 되고 유월, 칠월, 팔월로 넘어가면서 나는 건강한 몸을 갖게 되었다.


참 이상하지. 유례없는 전염병이 돌면서 나는 건강해졌어. 언니에게 매일 같은 말을 했다. 그 사이에 언니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이내 다시 돌아왔다. 두 번째 격리를 했다. 여전히 밥을 먹고 집에서 요가를 했다. 요가 매트에 흰색 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격리가 끝날 때쯤엔 선의 가장자리가 희미하게 닳아있었다.


나는 매일 마스크를 쓰고 손을 벅벅 씻는다. 일상을 잃고 생존을 얻었다. 모순된 삶이 일 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무기력과 생기가 하루에도 몇 번씩 침투한다. 희망과 실망이 날 뒤집는다. 그래도 난 살아있고 여전히 살고 있다. 이상한 날들 속에서 숨을 쉬는 것도 두렵다 못해 이젠 미치도록 색다르다.

처음 겪는 세상에 적응하는 내가 신기하면서도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매일 간절해진다. 내 몸이 건강한 것은 좋지만 전염병의 세상이 아닌 건강한 세상에서 건강한 몸이고 싶기 때문이다. 최대한 집에 있으면서 친구들과는 화면으로 만나는 것, 손을 자주 씻고 소독 티슈로 핸드폰과 가방을 닦는 것, 매일 운동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 작년의 여행 계획을 상상하다가 목구멍에 서러움이 걸려 숨죽여 울다가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부운 눈으로 잘 먹고 잘 견디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것뿐인데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란 것을 알아서 내 생존 방식을 하찮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하찮아도 우리는 살고 있다. 지독하고 쓰리지만, 괴롭지만, 마스크 안에서만 숨을 쉴 수 있지만, 우리는 살고 있다. 숨을 차단한 세상 속에서 눈으로 서로를 읽고, 눈과 눈 사이의 수축과 이완으로 대화한다. 그래.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좋든 싫든 내가 통과해야 할 시간이라면 덜 고통받으며 늙고 싶다. 그게 지금일 줄은 몰랐으므로 매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산다. 그마저도 마스크 안에서만 존재하지만 밤이 돼도 그림자를 길게 자랑하며 시간에 발을 푹푹 담그고 싶다. 왜 이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지금은 ‘왜’ 보다 ‘어디로’, ‘어떻게’를 말하는 것이 내게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건강과 다른 사람의 건강이 애틋하다. 언젠가 늙어서 어떤 말을 뱉고 죽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는데 요즘은 그 말을 미리 정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전염병이 모두를 쓸고 지나갔는데도 여전히 난 살아있고 너도 살아있지. 버티길 잘했다.”

매거진의 이전글생강 긴 글 #12 - 나를 미워하고 남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