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렵고 슬픈 관계
14.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내 언행을 곱씹으면서 정작 타인에게는 싫다고 하지 못했다. 난 그렇게 사람을 포기했고 기대하지 않는 법을 알았다.
언제였을까. 내가 매달리지 않으면, 체념하고 다 놓아버리면 관계가 알맞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안 것이. 내가 한 줌의 욕심이라도 보이는 순간 관계는 박살 났고 내가 살금살금 멀어지면 살금살금 가까워지는 사람들을 보며 뒷걸음질 치는 관계만 이어온 것이. 아주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내 삶의 공식, 관계의 해답 그리고 너와의 결말.
인간관계 뭐 별 거 있냐. 기대하지 말고 멀찍이 떨어져서 적정 거리 안에서만 인사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저 사람도 언젠가 진심이 아닐 때가 올 테고 나도 변하니까 딱 거기까지만 하자.
그렇게 몇 사람을 보냈다.
그중엔 잘 떠나보냈다 싶은 사람도 있었고 가지 않기를 바란 사람도 있었다.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널 많이 아껴. 그 말을 못 했다. 내가 좋다고 말할 때면 그 자리마다 구멍이 생겨 발이 밑으로 쑥 빠졌다. 잘 풀리다가도 멈추게 된다. 나는 저주 걸린 사람처럼, 징크스처럼, 관계의 중심에서 꼭 한 발 물러났다. 그러면 상대방과 아주 괜찮은 관계가 됐다. 미지근하게 사람을 대하면 평화로운 관계가 됐다. 슬프지만 정답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의욕과 열정이 가득하던 어린 시절에,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 이게 좋고 저게 좋다고 말하던 나를 무안하고 민망하게 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때의 나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것 같다. 나만 홀로 남아 나를 다독이던 시절. 모든 시선을 홀로 견뎌내던 시절. 어른이 아니라서 날 무시하는 건가 보다. 어른이 되면 이런 일은 없겠지, 하고 울먹이던 시절.
바보 같은 나. 어른이 된 나는 나를 지킨답시고 가끔 아주 비열하고 비겁해지는데 그냥 그때 울고 화를 낼 걸. 아이가 아이처럼 우는 것과 어른이 아이처럼 우는 게 너무 다른 세상이라 터놓고 울 수도 없는데 지금은.
그렇다고 하기엔 나쁘지 않은 시절이었는데. 아니었나. 나는 또 바보 같이 내 시절을 미화하고 있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넌 왜 못해준 것만 기억해. 왜 힘들었던 것만 기억해. 누군가에게 이 말을 들은 이후로 남에게 내 어느 시절을 아름답게 말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힘들었으니 기억하는 것이지 기억하고자 힘든 일을 경험한 게 아닌데. 솔직히 말하면 그날도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 내 의견을 말하면, 나를 위해 한 발 나아가면, 관계의 평화가 깨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찾을 수도 없는 기억 속 한 구석에서 어린 내가 울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