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28 - 나는 비가 오면 발목이 아파

잘 있니, 다정했던 사람들아

by 생강

28.


내 오른쪽 발목의 인대는 너덜너덜하다. 십일 년 전, 중학교 운동장 돌계단에서 한바탕 구른 뒤로 심하게 늘어난 인대 때문에 물리치료를 받기도 했다. 당시의 의사는 내게 인대 주사를 맞고 수술을 하는 것을 권했지만 나는 여름 내내 깁스를 하는 게 싫어서 거절했다. 주사든 수술이든 겉으로 닿는 물리치료보다 무서웠으므로 곧바로 거절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보호대를 착용하고 다녔다. 발바닥 전체를 덮는 모양 때문에 꽉 끼는 보호대를 차고 양말을 신으면 발이 퉁퉁 부은 것처럼 보였다. 다리를 절고 다녔으므로 친구들은 종종 나를 부축해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서먹한 친구들도 이내 나를 부축해주곤 했다. 마음은 멀었지만 몸은 가까웠다. 그 뒤로 여러 번 발목을 다쳤고, 나를 잘 모르는 아이도 넘어지던 나를 기꺼이 도와주었다.


오른쪽이 좋지 않으니 왼쪽 다리에 힘을 주고 걸었다. 그러다 보니 왼쪽 발목에 무리가 갔다. 수련회였는지 단체 등산이었는지 가물가물한데, 학교를 벗어나 산을 타야 했던 날이 있었다. 산이라고 하기엔 나무가 정말 없었고 그냥 길이라고 하기엔 흙 밭이었다. 학생들이 하나 둘 걸어 올라가면 뒤편에서 선생님들이 뒤처지는 아이들을 혼내고 달래며 올라오는 구조였다. 오래 걸으면 발목이 찌릿하던 나는 꼬리 쪽에 있었고 내 발목 상태를 모르던 한 선생님은 내게 화를 내며 어서 올라가라고 소리쳤다. 발목이 안 좋다고 말하기엔 나와 나의 상태를 전혀 모르던 사람이었다. 몇 안 되는 친구들을 올려 보냈고 혼자 걸어가려던 내 계획에 선생님의 호통이라는 차질이 생겼다. 그는 힘들어서 그렇다는 내 말을 여러 번 무시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속도를 내서 무리하게 올라가다가 왼쪽 발목이 꺾여 흙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발목이 끊어지는 고통이 너무 선명했다. 인대를 다치면 다친 주변으로 피가 쏠려 피멍이 드는데, 마치 손상된 인대가 검붉은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왼쪽 발목 부근에 붉고 시퍼런 멍이 번졌다. 근처에 있던 친구가 나를 발견하고는 냅다 나를 등에 업었다. 선생님은 그제야 나에게 아프냐며 다가왔고 나는 그저 친구의 등에 업혀 산 중간까지 갔다. 나보다 키가 크고 체력이 좋은 친구였지만 나는 그리 가볍지 않았고, 거친 호흡 소리를 들으며 나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갔을까. 다른 선생님이 오더니 열외 인원을 태운 차로 안내했다. 친구와 나는 선생님들과 몇 아픈 아이들과 차로 이동했고, 나는 이후의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내가 아픈 줄 모르고 다그쳤던 선생님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그러다 나를 업어준 친구를 더 오래 기억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몫을 하느라 나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고 나는 나의 상태를 그에게 알려 어쭙잖은 잔소리를 들으며 나약함과 친밀감을 나누고 싶지 않았고, 친구는 나를 부축하는 것보다 업고 내려가기를 선택했다. 데면데면한 사람에게 굳이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 값으로 나는 또 넘어지고 아팠지만 친구가 등을 내어줬다. 그것뿐이다.


나약한 시절에 나의 곁에 있어 준 사람들을 더 깊게 더 오래 기억하고 있다. 교실에서 내 발목을 보고 부러지는 거 아니냐고 핀잔과 걱정을 섞어 말하던 친구들, 보호대를 차고 걸으면 걸을 수 있냐며 교과서를 대신 들어주던 친구들, 안 그래도 작은데 발목 다쳐서 키가 더 안 크는 거 아니냐며 놀리다가도 비가 쏟아지면 힘겨워하는 내 가방을 들어주던 친구들. 그 아이들은 여전히 사려 깊게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을까.


여전히 내 양쪽 발목은 살짝 부어있다. 피멍이 든 채로 물리치료를 받고 피가 안 통할 정도로 보호대를 꽉 조이던 나는 홀로 그 시절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고 누군가는 헐렁한 내 발목 대신 내게 두 다리가 되어 줬다. 등을 내어 주었고 우산이 되어 주었다. 친구들의 친절을 먹고 자란 몸인데도 여전히 비가 오면 발목이 시리고 찌릿하다. 고통을 덜어가 주던 친구들이 없어서일까.


모두 어디선가 다정하게 살고 있길 바란다. 너희들의 도움을 받은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면 반드시 너희에게 그 몫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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