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30 - 피어싱 하러 왔는데요

귀에 구멍이 다섯 개

by 생강

30.


지난 가을, 충동적으로 귀를 뚫었다. 그리하여 내 귀에는 다섯 개의 구멍이 생겼다. 귓불에는 얇은 귀걸이가, 왼쪽 귀에는 두 개의 피어싱, 오른쪽은 한 개의 피어싱이 자리 잡았다. 왜 뚫는 건지 묻는 사람들에게 살을 뚫는 느낌이 시원해서 뚫는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아프지 않아? 아파. 아픈데, 시원해. 스트레스가 확 내려가는 것 같아. 소화제를 먹고 식도가 멀끔해지는 기분이야. 마음 같아서는 더 뚫고 싶어.


연골을 뚫는 것은 두려워서 뼈가 없는 살만 집중 공략했다. 어느 날은 스테이플러처럼 생긴 피어싱에 푹 빠져서 왼쪽 귀에 두 번째 구멍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흘 정도 지나고 바깥에 나갈 일이 생겨 그 길로 피어싱 가게로 돌진했다. 동행한 친구들은 나보다 더 떨고 있었고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저, 피어싱 뚫으려고요. 어디에 하시게요? 여기 귓불 위예요. 나는 내 귀에 박힐 피어싱을 골랐고 친구들은 멀리서 날 응원했으며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의자에 앉았다. 살짝 따끔해요. 하나 둘 셋.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장갑을 낀 손으로 내 귀를 잡고 한 번에 살을 뚫은 것이. 그래도 피어싱인데 아프지 않을까 싶었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처음 귀를 뚫었을 때를 생각하면, 이 직원분이 엄청난 능력자인가 아님 내가 그때 너무 긴장한 건가 아리송할 정도였다. 끝났어요. 거울로 확인해보실래요? 아기자기한 거울을 받아 들고 귀를 바라보았다. 멋진 귀가 보였다. 속도 시원했고 이 기세라면 오른쪽 귀도 뚫고 싶은 심정이었다. 심지어 아쉬울 정도였다. 더 시원하고 고통스럽게 뚫리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소독약과 바늘, 피어싱을 준비하는 시간을 합쳐도 단 일 분도 걸리지 않는 작업이었다. 수고하셨어요. 다정한 한 마디에 나는 아프지 않았다고 엄지를 치켜들며 가게를 나왔다. 친구들은 붉어진 내 귀를 보며 도리어 아파했지만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속 시원한 일탈을 하고 말았다.

처음 귀를 뚫었던 날엔 이제 귀에 구멍을 낼 일은 없겠다, 이 정도 아픔이면 더 겪고 싶지는 않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으로 자라 있었다. 신기하지. 이것을 소소한 일탈로 여기며 살고 있다니. 스트레스를 푸는 일로 귀를 뚫고 있다니.

해보기 전에는 항상 두렵다. 아플 것 같고 힘들 것 같고 토할 것 같은 예상을 뒤엎고 나는 생각보다 의연하게 일을 끝마친다. 하고 싶어서 시도했고 귀를 뚫은 그날처럼 결과가 좋으면 더 뿌듯할 때가 종종 있다.


덤덤한 일탈을 아주 사랑하게 됐다. 상상만큼 아프지 않고 상상보다 멋진 일들을 하고 싶다. 나이가 들고 늙어서 쭈굴쭈굴해졌을 때, 귀에 멋들어진 피어싱을 하고 거울을 보는 내가 기대된다. 그때쯤이면 어깨 죽지에 타투도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아주 멋있는 할머니가 되는 거지.

피어싱 하나로 저 먼 미래의 멋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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