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가 많은 몸이라서
31.
내 몸엔 화상 흉터가 있다. 오른쪽 발목 주변에 하나, 오른쪽 팔목 중앙에 하나, 그리고 왼쪽 약지에 하나. 마지막 흉터는 가장 최근에 생겼다. 식탁 위에 불판을 놓고 길쭉하게 자른 새송이버섯을 굽다가 불판 가장자리에 손가락이 닿았다. 잠시 홧홧하고 쓰라렸다. 크게 데인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덤덤하게 밥을 먹었다. 버섯과 양파를 무지하게 구워서 쌈을 싸먹었다. 표고버섯 꽁지는 왜 그렇게 맛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바쁘게 젓가락질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며 손가락을 봤을 땐 이미 붉은 흉이 살 위로 올라온 뒤였다.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왼손 약지에 반지 같은 흉이 남았다.
웃기네. 나 버섯이랑 결혼하나 봐. 약을 바를까 고민하며 생각했다. 물집이 잡힐 만큼 깊게 데인 건 아닌 것 같고, 화상 약은 어딘가 상한 레몬 향이 나던데. 그냥 두지 뭐. 버섯을 기막히게 구운 내 탓이지. 자잘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굴러다녔다. 이로서 내 몸에 화상 흉터는 공식적으로 세 개가 되었습니다. 자 박수 주세요. 와아- 짝짝짝. 헛소리를 하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다. 이건 버섯이 내게 남긴 흔적이다. 버섯을 너무 사랑해서 이런 흔적이 남았다. 그런 말을 지껄이며 나른하게 누웠다.
팔목에 있는 흉터는 누룽지를 끓이다가 냄비에 데여 생긴 것이다.
왜 하필 누룽지냐. 아니 맛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누룽지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들어 봐. 누가 내 흉터를 보고 물어보면, 누룽지 끓이다 스테인리스 냄비에 살이 잠시 붙었다 쯔아악 하고 떨어졌어,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내가 덤벙대는 거랑 누룽지랑 너무 잘 어울려서 좀 그래. 어딘가 구수하고 칠칠맞은 느낌이잖아.
그러면 좀 어때. 그땐 덤벙거리는 나를 인정하기 싫어서 투정을 부렸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그 흉이 상당히 유쾌한 모양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오른팔에는 점이 많은데 누룽지 흉터가 아주 절묘하게 점 아래에 생겨서, 그것도 웃는 입 모양으로 찍혀서 기존의 점이 마치 눈 같고 흉터는 삐에로의 입처럼 보였다. 의도한 일이 아니어서 더 웃겼다. 여기 옆에 점 하나만 더 찍으면 완벽한 스마일이 되겠다. 언니와 그런 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었다.
발목에 있는 흉터는 고등학생 때 매직기로 앞머리를 말다가 잠시 발 옆에 내려놓는 순간 데여 생긴 것이다.
그땐 집에 화상약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아침이었고 지각하기 직전이었으며 오랜만에 자른 앞머리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면 꼭 무슨 일이 생긴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는 매직기에 발목을 심하게 데였고 피부가 뜯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무작정 학교까지 뛰어갔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은 내 앞머리를 보며 잘 어울린다는 말을 했고 동시에 붉은 흉터를 보며 아프지 않느냐고 했다. 아팠지. 아팠는데, 앞머리 잘 말았으니 됐지 뭐. 그때도 그렇게 덤덤하게 말하고 말았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집 가서 약 찾아봐야지. 흉이 생긴 건 생긴 거고, 아픈 건 지나갔으므로.
언젠가 발목에 타투를 해야지.
스물 한 두 살쯤 내 몸에 있는 흉터 위에 타투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긴 양말로 가리면 가려지는 위치였지만 거무죽죽한 흉터가 아닌 더 멋진 그림이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 뒤로 오년 정도 지났고 아쉽지만 내 몸엔 타투가 없다. 항상 내 몸을 보며 여기엔 어떤 그림을 받고 여기엔 저런 그림을 받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받지 못했다. 마음은 있으나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받고 싶은 타투는 여러 개인데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속상해하는 모습은 아직 보기 힘들다. 그래도 언젠간 받을 것이고 그 마음을 돌파해야겠지. 그러려고 몸에 흉을 남긴 게 아닌데, 남겼다기보단 내가 당한 거지만. 웃기네. 그래도 이 흉터에 꼭 타투를 받아야지. 그런 나를 보고 언니는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타투 하려고 흉 낸 거 같잖아. 아닌데, 웃기네. 정말 그런 것 같아서. 우리는 또 식탁 앞에서 낄낄 웃었다.
예상치 못한 열의 공격으로 몸 구석구석에 흉이 생긴 것을 웃기다고 생각하다니. 아무래도 고통을 잘 참는 성격이 화상 흉터에도 적용되나보다. 아님 흉이 생겨도 그저 기억의 자국이라고 생각해서 가능한 마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멋들어진 타투로 덮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정말 그것도 아니라면, 그 모든 마음을 갖고 있어서인가. 그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음이 똘똘 뭉쳐져서 고통에 덤덤하게 반응하는 것이겠지. 마음 한 구석에 언제나 고통을 튕겨 낼 에어백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내가 웃겨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웃기네, 라고 중얼거렸다. 낄낄 웃기도 했다.
외부의 고통을 덤덤하게 흘려보내는 것처럼 내면의 고통에도 같은 태도를 보이면 좋을 텐데. 겉은 덤덤하지만 속은 뭉개지는 일이 늘어날수록 겉과 속의 간극이 커지는데, 내면에 타투를 박을 수도 없고 이것 참, 그런 생각을 하며 나의 마음에 뽁뽁이를 칭칭 감는 상상을 한다. 왠지 귀엽다. 귀여운데 그건 열에 녹지 않나. 예상치 못한 공격, 그것도 무지하게 따갑고 뜨거운 공격을 받으면 속도 화상을 입으니까 방호복처럼 입을만한 게 필요해. 결국 흉터는 남겠지만, 마음엔 타투를 받을 수 없으니까 그냥 나를 보호하다가 생긴 자국이라고 생각하자. 그 위에 내가 사랑하는 올리브 나무를 그리는 상상을 해보자. 그리고 다시 덤덤하게 하루를 살자.
어쩌면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어디에 얼마나 흉이 졌는지 발견할 수 없으므로 어떻게 극복하고 흘려보내야하는지 감이 안 잡히는 것 아닐까. 눈에 보이는 피부의 흉터는 보다 보면 그러려니, 하는데 저 깊은 곳에 숨은 마음은 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그것을 과하게 해석하려 하거나 아주 모르는 척을 하는 게 아닐까. 몸에 흉이 많은 것처럼 내 마음에도 여기저기서 공격받아 생긴 흉이 크고 작게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웃겨. 흉이 진 마음을 붙들고 뭐라도 해보려는 게.
웃기고 애틋해. 그런 생각을 하며 몸과 마음에 새기고 싶은 타투를 생각한다. 동물 그림과 나무 그림 사람의 형상과 아무 의미 없는 형상 같은 것을. 요즘은 거울을 보며 그런 것을 오래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살아보려는 내가 웃기고 애틋해서 오늘도 낄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