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32 -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

길 고양이들에게

by 생강

32.


고양이 간식을 샀다. 나는 동물과 살지 않는데 동물의 먹이를 한 줌씩 싸서 가방에 넣고 다닌다. 우리 동네엔 길 고양이들이 많은데 밥을 챙겨 주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종종 자동차 바퀴 사이로 눈을 밝히며 고양이가 나오면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곤 한다. 대부분은 도망가거나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무심하게 지나가는데, 가끔씩 다리를 뭉개고 앉아 사람 구경을 하는 고양이도 있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건 아니지만 내 손에 사료는커녕 물도 하나 들려있지 않아서 아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길 고양이의 가장 큰 숙제는 하루치의 먹이를 찾는 것이다. 배를 채워야 하는 일이 매일 반복되니 얼마나 고될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우울해도 몸을 뉘일 집이 있고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부엌이 있는데 길 고양이에겐 그런 곳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집에서 나와 고양이 간식을 사러 나갔다. 운동을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종종 마주치는 고양이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한 끼를 주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그런 것을 왜 가지고 다니느냐고 할 테지만, 사람도 버티기 힘든 찬바람을 맨몸으로 버티는 고양이들에겐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식량일 것이다. 누군가가 하루 종일 밥을 먹지 못하고 외투 하나 없이 한국의 겨울을 버틴다고 생각하면 남이어도 마음이 아리다. 나에겐 길 고양이가 그렇다. 텀블러에 따뜻한 물을 담고 사료나 간식을 봉투에 넣어 다니는 일은 쉽다. 어느 고양이는 배를 채우기 위해 하루를 쓸 것이고 나는 그런 고양이를 만나면 서슴없이 먹이를 주면 된다. 누군가에게 어려운 일이 나에겐 비교적 쉬운 일일 때, 나는 닿는 데까지 내 손을 내밀면 된다.


요즘은 바람이 꽤나 매섭게 불어서 걱정이다. 아침에 운동하러 나가면 한두 마리는 꼭 보곤 했는데 추위를 피해 어딘가로 숨은 건지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간 건지,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운동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게 아니라 혹시나 고양이를 발견할까 봐 스스로를 재촉하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만났던 길 고양이들에게 물이라도 나눠 주지 못한 것을 내내 후회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간혹 가다 울음소리 비슷한 것을 듣고는 소리가 난 쪽으로 몸을 돌려봐도 고양이는 없었다. 여전히 간식과 물을 들고 다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양이들이 이 지독한 겨울을 튼튼하게 견디고 있기를 바라는 것뿐이라, 고양이보다 내가 더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마음은 왜 고양이의 배를 채울 수 없는 걸까. 왜 물이 되지 않고 사료가 될 수 없는 걸까.


싹이 움트고 이파리가 줄기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면 다시 얼굴을 보고 싶다. 사 월에 처음 마주쳐 겨울이 되기 전까지 매일 공원 잔디밭에 누워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이던 삼색 고양이. 공원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마치 숲길 같던 샛길에 친구처럼 붙어 다니던 명랑한 회색 아기 고양이와 늠름한 검은 고양이. 집 근처 주차장에서 자동차의 잔열에 끌려 헤드라이트 부분에 코를 맞대고 눈을 살며시 감던 고양이. 집 앞 담장에 올라와 나른하게 나를 내려다보던 턱시도 고양이. 먹이를 구하지 못했는지 터덜터덜 땅 냄새를 맡으며 발을 옮기던 너무 말랐던 고양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이제 물과 먹이를 줄 수 있는데, 조용히 너의 앞에 먹을 것을 두고 저 멀리서 지켜보다가 사료를 다 먹고 아쉬운 듯 자리를 옮기는 너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쳐다볼 수 있는데.


내일도 겉옷 주머니에 먹을 것을 욱여넣고 운동을 하러 갈 것이다. 실은 너희를 보고 싶어서 간다. 어느 아스팔트도 너희에겐 똑같은 고독이겠지만 조금만 견뎌주었으면 좋겠다. 날이 풀리면 어디선가 슬며시 나타나 건강한 얼굴로 나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생강 긴 글 #31 - 웃기고 애틋한 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