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의 세계로
42.
집에서 머리카락을 잘랐다. 가슴 밑을 웃돌던 복슬복슬 파마머리를 턱 끝까지 잘라버렸다. 한 순간의 충동이었고 꽤나 상쾌한 일탈이었다. 화장실 바닥엔 오랫동안 상해서 버석한 갈색 머리카락 더미가 쌓였고 가위질은 계속되었다. 어느 정도 길이를 맞추었을 때, 나머지 부분은 언니에게 부탁했다. 언니는 투덜대면서도 아주 정교하고 꼼꼼하게 머리카락을 잘랐고 머리숱이 어마어마해서 힘들다며 내게 꼭 미용실을 가라고 당부했다.
언니, 그거 알아? 나는 미용실에 가기 귀찮아서 이런 일을 저지른 거야.
언젠간 갈 테지만, 지금은 아니야. 언니가 잘 잘라줬잖아.
그리고 머리는 또 자라니까. 나는 미련 없어.
내 얼굴형에 어울리는 머리라든가 숱이 많은 파마머리를 자르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나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상한 머리카락’을 제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미련이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긴 파마머리를 꼭 해보고 싶다고 언제나 중얼거렸었는데 나는 그것을 작년부터 이뤄내곤 쭉 유지해왔고, 햇볕에 바짝 그을린 머리카락의 겉면이 자꾸 바스러져서 종종 불편을 겪어야 했다. 나는 불편한 게 가장 싫다. 편하지 않은 것과 온전히 불편한 것의 차이라면, 전자는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다는 것, 후자는 곧바로 제거하거나 도망치고 싶다는 것. 9 개월 동안 유지한 나의 복슬 머리는 대략 한 달 전부터 후자에 속했다.
이 정도면 됐지, 하고 싶은 것을 했고 그것이 현재의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만둬야지.
중요한 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했다는 것이므로.
좋은 소식은, 어릴 때부터 나는 항상 단발을 유지해왔으므로 성인이 된 지금도 나의 단발을 나름대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 어떤 모양의 단발을 해도 마음에 금이 간다거나 울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긴 머리도 좋고 단발도 좋다. 요즘은 중단발도 좋다. 나는 머리카락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서 어떻게 되든 좋다, 하고 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것은 어느새 내 어깨 부근에 넘실댈 정도로 자라 있다. 잊고 지내다 보면 흘러온 시간을 증명하듯 머리카락이 자라 있고 나는 그것을 보고 다시 시간을 가늠하곤 한다. 어쩌면 머리카락과 나의 관계는 서로의 시간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일명 존재의 증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숱이 많은 나의 머리카락은 언젠가, 꼭, 반드시 전문가의 가위질을 거쳐야만 한다. 미용실을 가면 적게는 한 번 많게는 두세 번 전문가의 전문적인 잔소리를 듣기 마련인데, 이번만큼은 뭐라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집에서 자른 단발이라고 하기엔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었지만 뭐든 전문가 앞에선 쪼그라드는 나의 작고 여린 모습이 눈에 훤하다. 한두 달 정도는 나와 언니의 합작품인 지금의 단발머리를 만끽하다가 집에서 자른 티가 희미해질 때쯤 미용실을 가야겠다. 숱을 치고 끝 부분을 가볍게 처리한 단발을 하고 싶다. 아주 가볍고 선명한 단발을.
파마머리를 아주 만끽했으니 이제 편하고 귀여운 단발의 세계로 들어갈 차례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에 하는 세계로 입장하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 아주 여리지만 명료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