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측통행

시련은 타인을 이해하는 힘

by 새옹

오늘도 어김없이 옷과 신발을 욱여넣고 집을 나섰다


재택근무를 한 지도 벌써 2년째,

이렇게라도 집 밖을 나서지 않으면

검은 파도가 날 덮칠지도 모르니까


내 맘이 건조하고 퍽퍽하다 생각했지만

이따금씩 일렁이는 파도들을 보니,

손에서 움켜쥐면 쭈욱 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만 같이

잠겨있었던 것 같다


처음 1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사실 너무나도 잘 알지만

지금의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은

차가운 수술대였다


세상도 원망해 보고 가족도 원망해 보고

믿지도 않는 신도 원망해 보고, 나 자신도 원망해 보았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이 모든 노여움은, 애쓰며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심리.

그 보상이 수술이라는 편협한 생각에

분노하고 슬펐고 좌절했다


그래도 내가 어떤 사람인가

좌절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지만

한없이 강인하기도 한 사람이니까


*


세상의 풍파에 소용돌이치며 살아가다 보면

나에게 주어진 사건들에 명료한 메시지를 발굴하기에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왜 그래야 합니까?라고 묻는 다면

내 직업은 상담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마인드는 태풍의 눈 속에 명상을 하는

도인들이나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던 와중, 나에게 빛을 내려준 것은 철학이었다

특히 요즘은 불교 철학에 관심이 간다


허공에 손가락을 튕기며 쇼츠를 넘기다 보면

종종 뜨는 법륜 스님의 말씀


관중 속 한 사람이, 어릴 적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며

지금은 성인이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나와 내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칠까 걱정되어서

마음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자문하였다


법륜스님은 답하셨다


“설악산을 오르는 4명의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케이블카를 타고 대청봉 꼭대기까지 가는 사람

두 번째는 힘들긴 하지만 부모님이 짐도 들어주고 어려울 때 잡아당겨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

세 번째는 가족이 같이 못 가서 혼자 가게 된 사람. 옆에 또래 등산객은 부모가 도와주는데 나는 혼자 가게 되어 부럽지만 죽을힘을 다해 오르는 사람

네 번째는 부모가 봉정암에 기도를 하러 가야 한다고 데리러 가는데, 공양미가 무겁다며 자식에게 쥐어주고 힘들다며 야단치고, 그렇게 겨우 봉정암에 갔다가 대청봉에 오른 사람“


그리고 모두 정상에 섰을 때는

어떤 과정을 통해 올라왔든 다 평등하다

그럼 이제 그곳에서 누군가의 등산을 돕는다고 했을 때

과연 누가 가장 역량과 경험이 많을까


‘힘들게 올라온 사람. 바로 4번째 사람’이라고 하셨다


어릴 때 그 힘든 일들을 겪었는데

성인이 된 지금 일들을 버티지 못할 것이 있는가

결국 그 모든 것이 밑천이 되어준다는 말씀을 하셨다


짭조름하고 따스운 액체가

눈알을 한두 바퀴 핑 돌다가 마르고 다시 들어갔다.


마음속 바다는

삼켜낸 눈물들이 그곳에 한 두 방울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진 것일까


스님의 말씀처럼

많은 관문을 넘어간 사람일수록 경험이 많고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힘도 생긴다


그 이유는

‘내가 힘든 것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 같지만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다 다른 맛의 고통을 익히 알고 있다


허나 그 누구도 그런 과거들을

자랑스럽게 보이지 않으니 모를 뿐이며

특히 남의 시선을 더 의식하는 한국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말을 아끼고 아끼는 것이 미덕이라 보기도 하니까


그런데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일수록

다 경험해보지 않아도

상대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어김없이 옷과 신발을 욱여넣고 산책로를 거닐 때

자유를 찾고 나선 길 위에서

또 하나의 강박적 약속이 떠오른다


‘우측통행’


우측통행을 지키다 보면

마주 보고 오는 사람과 몇 미터 떨어져

눈치싸움을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상대가 비키고

또 다른 날은 그냥 내가 좌측으로 비킬 때도 있다


암묵적으로 우측통행이라는 약속이 있는데

넉넉한 옆길을 두고

자꾸 마주 보고 오는 것이 불편할 때가 있다

그렇게 거슬리는 기분을 머금다 이런 생각들이 스쳐갔다


그래 그 암묵적 약속은 내 마음속에서 한 거니까

저 사람은 좌측통행이라는 암묵적 약속을 한 것일지도 몰라

아니면 뭔가 다른 일 때문에 생각이 복잡하거나

걱정을 하고 있나 봐, 저녁에 뭘 먹을지 고민하는 걸까


또는 1년 전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던,

우측통행인지 좌측통행인지도 신경 쓸 겨를 없던 내 모습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우측 통행로에서 서서 바라본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내가 좌측으로 비켜가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니 나도 지하철에서 사람이 붐비면

종종 좌측통행으로 가기도 하고

지키지 못한 적이 수두룩 빽빽하다는 사실이다


내 한정된 경험과 시선에서만 바라본 타인과 세상은

편협하고 어긋나고 왜곡되고 그릇되어 보인다


하지만 두 갈래로 나누어 놓은 통행로에 멀어져

정상에 오를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넓어지게 된다


그리고 내 마음속 바다도

더 이상 나를 덮치지 않고, 부드럽게 일렁이며

정상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