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어제 그 두꺼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다 읽었다. 그런데 뿌듯하고 후련하기보다는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다.
내가 독서에서 기대하는 것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는 잘 나오지 않은 것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공감이 가는 핵심 문장을 기대하는 편이다. 한 문장에 공감하면서 그와 관련된 나의 경험도 떠올리고, 이를 글로 쓰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대표적인 메이지 시대를 풍자하는 소설이다. 약간 스포를 하자면, 이 책은 고양이 시점으로 주인의 일상을 전개한다. 그리고 주인은 바로 나쓰메 소세키 본인을 본떠 만들어진 인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주인과 주인의 친구들이 모여서 주고받는 실없는 허풍을 풍자하는 내용이라 보면 된다. 당시 배경을 보면 메이지 시대, 그리고 러일전쟁의 승리 직후다. 그때 어깨가 한껏 올라간 지식인들이 많았나 보다. 나쓰메 소세키 본인도 그런 지식인 중 한 명이었으려나.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는 이런 세태가 계속되면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으로 이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나는 이런 장편 풍자 소설은 처음 읽었다. 삶의 깨달음보다는, 이렇겐 살지 말자 라는 내용이 담긴 글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대화로 아까운 시간을 보내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글을 읽고 있는 나의 시간마저 아까울 지경이었다. 뭐,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 이런 생각이 들게끔 유도하는 건가? 그 당시 지식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게끔 하려는 건가?'
근데 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이런 글을 읽을 수준이 안 되는 건가' 생각했다. 나는 그냥 내가 그동안 깨달은 것들과 비슷한 글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공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는 나에게 실망했다. 내가 풍자 소설을 이해할 ‘수준’이 안 되는, 즉 내가 높은 차원의 생각을 잘 못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이 책을 왜 읽었나 싶었다.
그런데 오늘 밤, 놓치고 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음.. 그러긴 어렵지.. 상황에 따라 읽었던 책도 다르게 보이는데..
맞다.
과거의 나는 소설을 끔찍이 싫어했다. 그냥 시답잖은 이야길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소설에 맛이 들려 몇 권씩 읽었던 경험이 있다.
아, 지금의 나는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읽고 싶어 하는 거네.
풍자 소설이 더 높은 수준에 있는 것도 아니네.
모든 장르는 나름의 색을 지니고, 동등한 자리에 존재한다. 나는 지금의 내가 끌리는 책들을 맘껏 읽어보려 한다. 그러면 분명 어느 순간엔 다른 장르에 눈이 갈 거다. 지금에 충실해야 한다.
선호는 그냥 자연스러운 마음의 방향이다. 자연스럽고 솔직한 나의 마음을 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