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작가 초청 강연 中
최근, 학교 도서관에서 김초엽 작가 초청 강연이 있었다. 나는 이 작가의 딱 한 권의 책만 읽었지만, 그리 좋아하지 않던 SF에 관심을 갖게 한 책이었기에 강연을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선착순 신청이라서 빠르게 정보를 입력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QnA 질문 칸이 있었다. 딱히 질문할 게 생각나지는 않았지만, 다시 보기 어려울 사람이기에 뭐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급하게 ‘고통스러운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셨나요?’를 써서 제출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이 시작되었다. 질문들이 워낙 많고 시간은 적었기에, 작가님은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고, 고통에도 끝은 있다고, 짧게 답하셨다.
처음에는 그 답에 실망했다. ‘결국 내가 어떻게 못 하는 건가? 시간을 넘어갈 수는 없는 거니까, 인간인 이상 고통을 감내하거나 조금이나마 줄일 방안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인가?'
'… 아, 인간이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내가 실망한 이유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은, 하찮고 약한 존재라는 걸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 앞에서, 우주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진다. 실제로 작지만, 나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더 있을 거라 생각하는 편인데, 이 믿음이 과연 좋은 믿음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이 믿음이 필요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겠지. 그 적정한 때—중용—를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살아생전에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무모한 생각이라 하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희망할 것이다.
나는 왜 하필 이 질문을 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개인의 본성은 급박한 상황일 때 드러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내가 겪었던 과거의 고통을 타개할 훌륭한 방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나는 과거에 대한 미련함을 털어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음을 인식했다. 사실 이 경험은 나중에도 완벽하게 털어낼 수 없고, 털어내서도 안 될 만큼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경험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의문과 감정을 곱씹음으로써 또 다른 고통에 대항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비단 고통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 대한 지혜를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털어내는 대신, 그 경험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자유로워진다는 건, 그 경험이 현재의 나를 괴롭히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최근에도 과거의 내 모습이 되는 꿈을 한 번 꾸었고, 큰 두려움과 절망감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꿈이라는 걸 깨닫고는 안도했다.
아무튼, 나의 무의식에서 나온 질문 속에는 지식인이라면 더 지혜로운 해답이 있을 거라는 가정이 숨어있었다. 하지만 그도 역시 인간이고 시간을 넘어갈 수는 없었다.
사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인 것 같다. 내가 모르는 높은 수준의 방법 즉, 진리와 유사한 힘을 가진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것. 나는 그런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물론 정말로 진리나 진리와 비슷한 게 존재할 수도 있고, 있다고 믿었기에 많은 철학적 사유와 이론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러한 믿음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믿음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라고 생각할 뿐이다.— 슬프게도 나에게 이 믿음은 고등학교 내내 독이 되었다. 진리, 즉 답이 존재하므로 찾아야 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답이란 외부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후부터는 계속해서 남의 이야기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살았다. 그 시간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사실 이것들 자체가 힘들다고는 딱히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 몸이 버티지를 못했기에 나는 그동안의 내 믿음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몸이 병들면 마음이 병드는 건 순식간이다. 그런데, 아마 시작은 마음의 병이었을 것이다. 병든 마음을 외면하고 오히려 병든 것을 질책했기 때문에 몸으로 전이된 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스스로 답을 내렸다. 모두에게 자신에게 맞는 진리—신념이나 삶의 가치—가 있구나. 나에게 맞는 진리를 찾으려면 외부의 것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나의 마음을 돌아보며 필요한 부분을 알아채는 것부터 해야 하는구나.
나는 그동안 팽이처럼 계속해서 뱅뱅 돌고 있었다. 어른들의 조언에 맹목적으로 따라보기도 했고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조각해보기도 했다. 팽이에 채찍질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옳고 칭찬받을만한 행위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고, 학교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것과 고통스럽게 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 때문에, 채찍질을 멈추었다.
그러자 팽이가 멈추었다.
그제야 나는 자연스러운 본연의 나를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돌고 돌아 결국 내가 도달한 곳은 나였다.
인간은 시간을 건너갈 수 없다. 그러므로 시간이 필요한 고통을 가장 현명하게 보내는 방법 대해 생각해야 한다.
나는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 진정한 회복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그 시간을 버텼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방식을 하나씩 터득해갈 때마다 건강을 한 조각씩 되찾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