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수필? 아무튼
1.
오늘은 날씨 앱을 켜지 않아도 된다.
비는 깨기 전부터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밤새 흐렸을 것이다.
방금 깬 것 같지만
사실 며칠째 깨어 있는 중이다.
아닌가, 아직 깨지 못했나?
2.
생각이 짧았다.
양말부터 젖었다.
감정도 질척였다.
너는 말없이 스며들어 나를 차갑게 했다.
신경 쓰이게 했다.
너는 결국 내 모든 것을 물들였다.
3.
카드 지갑은 사라졌다.
나는 꼬깃꼬깃 접힌 현금을 꺼냈다.
낡은 시간으로 환전했다.
생각은 중구난방이다.
버스는 익숙해져 버린 길을 달렸다.
하지만 달랐다.
내 앞에 네가 뚝뚝 떨어진다.
나는 너를 피하고자 몸을 더 웅크러뜨린다.
그렇지만 버스도 이 세상도 너무 좁다.
너를 결코 피할 수 없다.
4.
‘오늘은 최악이야‘
화가 치미는데
할 수 있는 거라곤 겨우 눈살을 찌푸리면서 혼자 불평하는 것뿐이다.
조소의 웃음이 새어 나온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것들이 마음속을 시끄럽힌다.
왜 나는 마음속에서만 자유로울까.
아니, 이게 자유이긴 한가.
그렇다면 쓰디쓴 자유다.
혼란스럽다.
5.
‘올해 액땜인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날려 보냈다.
그래야 끝날 것 같았다.
뭐 하나 제대로 끝맺는 게 없다.
뭐 하나 끝맺을 수 없는 게 생인 것 같기도.
글에서나마 마침표를 찍는다.
모순이다.
마침표는 찍을 수 없다.
나는 어떤 마침표를 찍으려고 삶이라는 문장을 정성스레 쓰고 있나.
물음표만 찍어대는 것 같다.
자유는 망상인가.
6.
너는 나를 물속으로 밀었고
나는 숨을 참았다.
나는 언제나 물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믿음은 폐 속 공기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믿음 없이는 어떤 너도 느낄 수 없다.
네가 없다면 믿음도 없다.
너와 나의 존재함은 여러 각도로 맞대어있다.
어떤 각도가 가장 편할지 궁리할 뿐이다.
7.
오늘도 삐걱대는 자동문 앞에 선다.
정확히는 수동문이다.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 중요할 수도 있다.
버스 요금은 내 기억보다 비쌌다.
내가 언제 이렇게 커졌나.
나는 성인이 아닌데 성인이란다.
부정해도 바뀌는 건 없다.
화낼 이유도 없다.
중요한 건 현상이 아니다.
중요한 건
아,
중요도를 따지는 것도 나구나.
그렇다면,
8.
너는 언제나 변해왔다.
나는 그런 너를 따라.
삶은 고정관념과의 싸움이다.
사람은 자기 생각과 어긋나는 상황에 화를 낸다.
참 이상하다.
인간이라는 고등 생물은 꽤 자주
자신을 힘들게 한다.
참 별 걸 다.
9.
너는 예측할 수 없다.
너는 암흑이자 빛이자 연기이자,
어쩌면 내 생의 전부.
나는 모든 너에게 이름을 붙이고 싶었지만
끝내 붙이지 않기로 했다.
사실 불가능했다.
일부의 너에게 걸어둔 이름표마저도 떼버렸다.
규정은 의미가 없었다.
정말 모든 건 망상일지도.
정답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없는 것 같다.
있다 해도 우매하고 게으른 나는 평생 모를 것 같다.
그렇다면,
10.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관성의 법칙이다.
새옹지마
일체유심조
빌어먹을 관성의 법칙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지려 한다.
정신없는 삶은 관성에 쉽게 휘둘린다.
그래서 나는 악착같이 떠올린다.
너를 보는 나를 위해.
11.
그래.
나는 오늘
한 번 더 웃고
한 번 더 머물고
한 번 더 감사하련다.
나의 전부를.
그러니까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