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이유
친구가 내게 물은 질문
“사람은 왜 남에게 위로를 바랄까?”
나는 곧바로 말했다.
“사람이니까.”
친구가 털털한 웃음을 지었다.
잠깐의 텀 뒤에, 난 덧붙여 말했다.
“내가 나 자신에게 확신이 없어서 그래.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까 남의 격려나 위로로 채우는 거지. 잘할 거라는 말을 들으면 실현될 가능성을 어느 정도 생각하게 되거든. … 그리고 내가 이걸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그 하려는 것의 의미가 뚜렷하지도 않고 간절하지도 않아서 그래. 주춤거리는 건 그 선택이 내게 주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서야. 그 의미가 명확하면 없는 걸 만들어서라도 하게 돼. “
이렇게까지 정리된 문장으로 말하진 못했지만 비슷한 맥락의 말들을 늘여놓았다. 그렇게 혼자만의 독백을 끝내고.
그 친구는 잠자코 듣다 입을 뗐다.
“야, 너 말 잘한다.”
음.. 조금 더 구체화를 해볼까?
이 친구의 질문이 꽤나 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에 대해 확신이 없을 때, 쉬운 말로는 자신감이 부족할 때, 선택을 주저하는 순간 용기를 내볼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아닐까.
중요한 건 이 용기의 중심이 ‘남’이라는 거다. 남이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무수하다는 것. 얼마나 큰 것을 얻어 갈지, 잃어 갈지 모르는 선택. 남의 말을 듣고 하지 않으면 경험하지 못한다. 달라지고 싶었는데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너무 후회스럽지 않은가. 난 누군가로 인해 경험하지 않아 후회하는 상황이 무엇보다 싫다.
물론 행동을 해서 결과가 더 나쁠 수 있다. 안 하니만 못한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동을 선택하지 않는 거다. “못 먹어도 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있는 것마저 뺏길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잃어도 고”를 선택한 것, 그리고 결과를 도출해 낸 것 자체에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 본다. 이게 억지라 생각될 수 있겠지만 의미는 정말 내가 부여하기 나름.
나는 좋지 못한 결과와 그로 인해 겪은 경험들을 토대로 글을 썼고 그림을 그렸고, SNS에 올렸다. 그렇게 난 내 인생 기록지에 여러 자락의 경험들을 더해왔다. 인생 기록지. 내 기억보다도 정확하고 오래 남을, 그때의 내 그림과 글로 가득하다. 난 인생 기록지에 나를 꾹꾹 눌러 담고 싶다. 그래서 매번 안개 낀 경험을 선택한다. 경험 한 자락을 깊이 추구하니까. 그 경험 한 자락에 담긴 나만의 의미가 분명하니까. 그 경험들의 향연으로 지금 이렇게까지 성장한 거다.
나는 내 행동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주변이 비웃어도 내 안의 의미를 되뇌며 집중할 수 있었다. 경험과 결과를 그냥 넘기지 않았으며 실패는 더더욱 붙잡고 늘어졌다. 그렇게 얻은 깨달음은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험이 되었다.
우리는 정말 모른다. 어제의 선택, 오늘의 선택, 내일의 선택으로 말미암은 결과가 우리의 남은 인생에 있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우리는 너무 쉽게 놓치고 살아간다. 행동하지 않고 편하며 안정적인, 내 앞에 주어진 것을 기계적으로, 의무적으로 할 뿐. 나는 그렇게 살다 죽기 싫다. 그래서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진다. 정말 당연한 건 당연한 걸까? 그리고 당연하지 않은 것, 새로이 만든 나만의 것을 추구한다. 그것들이 나를 더 나답게 한다.
지금 하려는 그 선택, 하고 있는 행동이 정확히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왜? 이 의미 부여는 누가 뭐라든, 나를 믿고 꿋꿋이 걸어가 당당히 경험해 낼 진정한 용기를 얻는 방법이기에. 그 용기는 미래의 멋진 나를 만들기에.
아직 무시당하지만 견고한 꿋꿋함이 보편적인 당연함을 꺾고 보란 듯이 성공할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기대를 걸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