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포기하는 동안 나는 노력했고 해냈다.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비비안 그린
1학기 중간고사 수학 43점
1학기 기말고사 수학 21점
수포자 친구의 기말고사 수학 점수는 21점이었다. 주변의 더 낮은 친구와 나보다 조금 높은 친구, 모두 입 모아 말했다. 편하게 포기하라고.
시험 중, 분명 절망했다. 중간고사 때보다 더 열심히 준비한 나를 너무나 잘 알기에 더 분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 공부법의 문제를 깨달았기에 시도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번 시험 준비, 수학 교과서만을 반복하며 풀었던 것. 오히려 독이었다. 반복으로 난 그 유형의 문제만을 풀 수 있게 되었고 고등학교 수준의 휘황찬란한 문제 변형에 정신을 못 차렸다. 당연히 점수도 휘황찬란한 비로 가득했다. 점수도 마음도 난장판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내게 포기하라 말했다. 아니면 조용히 나를 보기만 했다. 조금 안쓰러운 눈빛? 일까. 아무도 내게 “다르게 하면 돼”, “다시 해보자”라고 확답을 주지 않았다. 뭐, 그게 당연하기도 하다. 내 성적과 비슷한 친구들은 대부분 공부를 놓거나 포기한 애들이다. 자기 스스로도 한계 짓고 안 될 거란 생각을 갖는데,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시각을 버릴 수나 있을까. 말이 안 되는 거다. 자신들도 포기했고 자신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본다.
남들이 내게 한계로 구멍 난 우산을 쥐어준다. 이제부터는 내 몫이다. 이 우산을 받아 들고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비를 잠자코 맞을 것인가, 아니면 이 우산을 내팽개치고 비를 맞으며 더 단단할 내 우산을 만들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새로운 공부법의 비를 맞으며 천천히 내 우산을 만들어갔다.
나는 묵묵히 앉아 비를 맞으며 우산을 만들었다. 그런 날 어리석다며 비웃는 사람도 있었고 가끔씩은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우산 만들기에 열중했다. 누가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내가 좋아하는 재질, 내가 좋아하는 색, 내가 좋아하는 크기의 우산을 만들기 시작했고 나라는 사람이 물씬 나는 맞춤형 우산이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직은 거센 비에 주춤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우산은 단단하고도 깊을 것이다.
2학기 중간고사 수학 67점
나름의 성공을 그 친구들에게 당당히 내보였다. 하지만 참 웃겼다. 그렇게 안될 거라며 포기하라 했던 친구들 모두, 간단히 “오, 잘했네?”라는 말뿐이었다. 멋대로 판단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기대도 안 했지만, 웃기고도 묘한 기분이었다. 참고로 그 친구들은 성적이 더 떨어졌다. 전체 평균도.
쌤통이다, 이것들.
너네가 포기할 때 나는 해냈어.
남이 내게 준 한계에 포기할 수 있었다. 물론 난 포기할 생각 따윈 1도 없었지만,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은 그랬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적어도 나는 보았다. 남들이 씌워주는 우산을 그대로 받아 드는 친구들을. 그들이 준 한계의 우산을 받아들였다면, 나는 이 소중하고 새로운 경험을 못했을 거다.
우리는 많은 것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인간이다. 하지만 인생은 한 번이고 지금 이 시간도 유한하다. 그렇기에 나는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일 거다. 근데 그 후회하지 않는 법은 참 모르겠다. 그래서 후회를 하며 살아가는 거다. 하지만 난 이 경험으로 후회하지 않는 법 한 가지를 깨달았다.
누군가가 내 가능성을 한계 짓고 쉽게 포기하라 말한다면, 기필코 포기 않고 내 것으로 만들어 그 한계를 부숴버리자. 물론 이 포부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내재된 의미가 있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무얼 하며 살고 싶은지 등등, 내 정체성에 관한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고 있어야 한다는 것.
내가 가진 방대한 꿈, 즉 홍익대 학생과 패키지 디자이너는 지금 하고 있는 결과들이 모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러스트 작가는 지금 하고 있고. 여하튼, 공부 중간중간, 슬럼프가 오거나 번아웃의 경험은 있을 수밖에 없다. 조언이라 포장된 당당한 비난. 하지만 웃기게도 난 이런 조언 같은 비난에 반발심이 든다. 너무 보란 듯이 성공해버리고 싶은 심보랄까. 그리고 난 후회하지 않았다. 그 친구들의 말을 되새기며 하루의 공부를 마무리한 적도 있었다. 조금 늘어지는 순간, 내게 한계를 씌워주는 친구들의 말이 공부의 동기가 되기도 했다.
친구들의 말을 떠올려서 지금, 성적표를 받고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참 고마운 비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