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공부법이라는 허상을 위안으로 삼았다.
나는 완벽한 공부법을 위해 유명한 유튜버들의 공부법 영상도 정독했고 실제로 써먹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길게는 못 했고 대체로 작심삼일로 끝났다.
완벽한 공부법
내가 만든 이상이라는 허상이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나는 철저히 내 시야에 들어오는 공부만을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유레카!라고 외칠만한 완벽한 공부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점수가 낮은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점수가 낮은 현실에 위안이 되었으니, 그것은 정답이어야만 했다. 새로운 공부법을 시도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었고 더 이상 새로운 공부법은 없다 생각했었으니. 그래서 내게 맞지 않는 현재의 공부법에 안주하기 위한 방법으로 완벽한 공부법이란 허상을 만들어냈다.
내게 맞을지 안 맞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공부법을 만들고 익숙해져야 하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은 내게 있어 이 생각은 최선이었다.
난 변화하지 않았고, 그래서 내 성적도 변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난 시험 기간마다 완벽한 공부법을 찾지 못했다.
사람은 한 치 앞도 모른다. 처음 만난 사람과 내가 어떤 관계로 발전할지, 얼마나 가까워질지도 모르면서, 처음 시도한 공부법이 나에게 완벽한 공부법인지 어떻게 바로 알 수 있을까. 설령 누군가에겐 정말 절친한 사이더라도, 나와는 성격이 안 맞을 수 있는 법. 누군가에겐 완벽한 공부법이라 할지라도, 내 스타일은 아닐 수 있는 법이다.
사람이라 그런 거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기에, 같은 코드를 넣는다 해서 같은 결괏값이 나오지 않는다.
예전 일이지만 난 그림 또한 이 완벽이라는 허상의 렌즈를 착용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완벽한 내 그림체라는 것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유튜브나 인스타의 그림체, 핀터레스트에 나와있는 옷이나 장신구들을 따라 그리기도 했다. 그럴수록 더욱 내 색은 옅어져만 갔고 내 그림에 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도 그때의 그림은 정이 안 가고 내 것이라 말하기 껄끄럽다. 친구가 그린 그림 좀 보여달라 하면 그건 자연스레 넘기고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 정도.
내 그림체를 찾으면 달라질 것이다
라는 나의 마음. 사실 이 고민의 본질은,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의 부재였다. 내가 이 그림으로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가 없었고, 그저 ’잘 그린 사람들의 그림처럼 그리고 싶다 ‘가 다였다. 초창기 때는 못 그렸지만 재미는 있었다. 잘 그리고 싶단 욕심도 없었고 소소한 취미였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 재미도, 성취감도 못 느끼게 된 상황에서 큰 상실감을 받았다.
이런 내가 달라지게 된 계기는 인스타툰(소소일상툰)이다. 어느 날, 지금까지 그린 그림들 중 진짜 나의 그림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공허함으로 가득한 밤, 만화로 내 심정을 표현했다. 그때, 처음으로 짤막한 해방감을 느꼈고 지금까지 그린 그림과 뭔가 다르단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천천히 내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 올렸다. 이 인스타툰은 그림에 있어, 첫 번째 전환점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에 관한 확답이 있는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게 됐다. 그러자 그림체는 자연스럽게 내 손에 스며들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공부법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 공부법은 내가 발 벗고 나서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뿌린 씨앗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열매가 모두 달고 맛있을 순 없는 노릇. 중간에 벌레가 꼬일 수도,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배워가는 거다. ‘아, 이 방법은 나에게 맞지 않았구나’라고.
가장 한심한 행동은 앞에서 언급한, 무언갈 만들어가려고 시도하는 사람을 보기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노력이 정말 성공할까 두려워, 구구절절 안될 거란 말을 덧붙이는 것. 이런 사람들은 주변에 차고 넘친다. 나도 내 노력을 하찮게 여기고 포기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의 입을 잡아떼고 싶다.ㅎㅎ
그래도 가끔은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한다. 난 정말 이런 사람이 싫고, 되기도 싫다. 내가 뭐라고 누군가의 가능성을 재고 판단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잴 수 없는 것이다.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라 해야 하나. 우물 속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재다. 그리고 우물 밖은 무엇이 펼쳐져 있을지 모르는 미래다. 또한 가능성이란 미래의 나와 비슷한 뜻이다.
가능성은 볼 수 없다. 그저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근거는 우리가 새로운 방법을 갈구하는 동안 자연스레 스며든다.
사람이면 당연히 쉬운 길로 가고 싶다. 이미 성장한 누군가의 반듯하고 깔끔한 길을. 하지만 그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성장하기 어렵다.
원래는 없던 길을 내가 직접 개척해 나가는 것. 창조는 사람을 성장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