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깨달은 줄 알았는데 본질에 갇힌 것이었다.

by 김새옹
내가 하는 것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 한 문장은 내 삶의 방향과 같은 본질이다. 무언갈 시작할 때, 중요한데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면 이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한다. 근데 이렇게 굳게 믿은 한 문장 때문에 이번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연도에 엄마랑 홈트를 하다가 혼자 헬스를 시작했다. 처음에 내게 헬스는 건강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헬스를 하고 난 후의 상쾌함, 씻은 후 내가 해야 하는 것 즉, 공부를 바로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촉진제로서의 목적이 커졌다.


1학기 시험과 2학기 중간고사 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해야 한단 마음이 절실하긴 했지만 야자도 한 상태라 쉬고 싶은 마음도 공존했다. 그리고 헬스가 없을 땐 거의 매번, 쉬려는 마음이 이기곤 했다. 그래서 난 쉬면서(유튜브를 보면서) 땀도 흘리고 샤워까지 해서 상쾌함을 주는 헬스를 하게 된 거다.


그땐 시험 1주 전까지도 헬스를 갔었다. 그때까지 간 이유는 누워서 유튜브만 보기엔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헬스 중에 보는 유튜브는 죄책감으로 여기지 않았다.


근데 2학기 기말고사땐 시험 한 달 전부터 안 갔다. 안 갔음에도 야자 후, 앉아서 바로 공부가 가능했다. 이건 공부의 의미를 구체화하자 생긴 일이다. 난 더 이상 ‘쉼’이 없어도 공부를 바로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이다. 달라진 날 보는 건 언제나 참 신기하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생각 하나가 내 행동을 바꾸다니. 참 별 거인 생각이었다.



어쨌든 땀도 흘리고 씻고선 바로 집중할 수 있다란 의미가 지금까지 날 헬스를 하러 가게 했다. 그러나 기말고사까지 끝나자, 가장 큰 이유가 사라졌다. 크게 해야 할 공부가 없자 그 촉진제 역할을 한 헬스도 자연스레 안 가게 된 거다. 그리고 오늘, 그때의 의미를 다시 찾고자 헬스장에 갔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난 텅 빈 헬스장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헬스를 끊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이 고민의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단단한 바위마저
시간이 갈수록 변한다.
바람에 깎이고 물에 쓸리면서.


헬스에 대한 나의 의미도 변할 수밖에 없다. 이건 너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의미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내게 이러한 의미였던 것은 그 자체로 변질되지 말아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모르는 새, 그렇게 견고할 것 같았던 헬스에 대한 믿음도 변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나만의 의미는 찾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내 눈에서 배제된다.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보잘것없는, 조금은 희미한 이유를 가지고 무작정 하다 보면 어느새 의무의 모래가 걷히게 되고, 또 어느새 볼록 튀어나온 의미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의 내 글은 모두 쓰려고 쓴 것이 아니었고 찾은 의미도 찾으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작은 이유를 쥐고 묵묵히 할 때 자연스레 보이는 것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미들은 결코 계획이 아니었다. 이건 계획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행동을 반복하면서 원래는 없던 의미를
경험해본 후의 내가 만드는 것이었지.


나는 그때의 의미(해야 하는 공부를 하게 하는 촉진제)를 상기시키려는 의도로 헬스장에 갔고,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지금은? 2학기 기말까지 끝나고 아직 시작도 안 한 겨울방학은 길다. 2학년 예습도 쉬엄쉬엄하면 되고. 그렇기에 쉬고 싶으면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젠 내게 필요하다 느끼면 그냥 하게 됐다. 굳이 유튜브나 웹툰 같은 길로 새지 않는다. 그러자 헬스장을 가게 했던 그때의 의미는 완전히 사라졌고, 결과적으로 안 가게 된 거다.


헬스 후의 활동이 간절하지 않았고
헬스라는 ‘쉼’없이도, 힘들긴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을 바로 할 수 있게 됐기에.
예전과 지금의 내가 달라진 만큼, 어떤 활동이 주는 의미도 예전과 지금은 다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기본적인 틀은 안정이다.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에 검증된 것에 집착한다.

예전의 내가 겪은 헬스의 의미를, 성장한 지금의 나에게 끼워 맞추려 했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 내 발자국만을 따라 다시 예전으로 가려했다. 지금의 나는 발이 더 큰데도, 지금의 나는 보폭이 더 넓어졌는데도, 줄이면서까지 맞추려 했던 나.

나는 나를 과소평가한다. 내가 성장한 것을 더 인정하자.

예전에 의미 있었던 그 의미는 성장의 전리품으로 삼고, 지금의 내가 더 만족할만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성장한 내가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