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적은 독후감
내가 태어난 연도인 2006년, 그때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이 책은 그 프랑스에서의 13년과 한국 귀국 후의 이야기이다.
1.
저자는 건축가로 활동하던 중, 취미였던 의상 디자인에 빠져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밖에 나가도 보며 사람들의 의견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의상 디자인을 포트폴리오로 삼아 건축 회사에 입사한다. 의상 디자인 포트폴리오가 건축 회사 입사에 무슨 도움인가 싶지만, 건축 디자인으로 가득한 포트폴리오는 수없이 많다. 이 포트폴리오들의 나열 속에서 차별화된 의상 디자인은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며 좇는 것, 그것이 나를 특별하게 만든다.
디자인과 일러스트.
그림이라는 큰 틀에서는 같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패키지 디자인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요소로 해당 브랜드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일러스트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저 그리는 것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패키지 디자인은 따로 연습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상과 건축을 엮어 시너지 효과를 본 저자를 통해 패키지 디자인과 일러스트에 대한 내 생각이 달라졌다.
요즘 내가 그리는 일러스트는 글을 기반으로 그려진다. 이때 나는 글의 내용을 함축하면서도 글에선 느낄 수 없는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는 그림을 그린다.
브랜드의 가치관을 부각하는 패키지 디자이너.
글의 의미를 부각하는 일러스트 작가.
둘 다 의미를 담은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근본이 같다.
덕분에 현재 내가 하는 행동에 의미를 더 부여할 수 있게 됐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패키지 디자인을 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일러스트 작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 대신 브랜드의 정체성, 클라이언트의 요구로 바뀌는 것이다.—내 이야기만을 하지 못하는 건 좀 씁쓸하지만, 내 작업은 따로 하면 되니까! 더 배울 수도 있겠고.—
남들과 똑같이 패키지 디자인만 많이 하는 건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다. 이 세상엔 패키지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과 경쟁할 수 없는, 비교할 수 없는 작업물을 가진 사람이 되면 된다. 그건 생각보다 쉽고 아주 가까이,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매일 하는 작업물이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고 오늘 인식하게 됐다.
나에겐 일상으로 존재하는 창작.
창작은 무엇일까.
저자는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로 창작을 정의했다.
창작이란 거대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탐구하고 잠재된 가능성을 투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결과물이다.
크게 동의한다. 창작은 때로 엄청난 예술적 능력을 갖춰야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창작은 어떤 것의 결과일 뿐이라고 본다.
나의 글은 나에 관한 글이다. 경험에서 비롯한 깨달음, 문제의 원인, 원인에 숨어있던 나의 믿음에 관한 글이다. 그래서 나는 바쁘고 힘들수록 많이 쓴다. 바쁘다는 건 새로운 경험이 쌓이고 있다는 뜻이고, 그것을 정리하면서 더 깊은 탐구를 하는 과정으로 나는 글을 택한다. 힘들다는 건 무언가 불편하다거나 찝찝한 것이 있다는 뜻이고, 문제의 원인을 탐구하고 사색하는 과정으로 나는 글을 택한다.
나는 중학교 때 나의 성격 특성과 정체성에 관해 많은 혼란이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 혼란을 쓰고 그림으로 그렸다. 해방감을 느꼈던 그날 밤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나는 손에 모터를 단 듯 묵혀둔 나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외면하고 자학해 왔던 나를 1년 반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마구 표현했다. 시간이 지난 이야기인 만큼 그때의 상황을 넓어진 시각으로 마주할 수 있기도 했다. 그림과 글들은 모두 어머니와 나눴다. 작업물을 공유하며 그때의 내가 더욱 구체화되는 게 있었다. 털어낼 만큼 털어내니 자책하는 마음이 줄었다.—25년이 된 지금에서야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그 이후에 더 힘들어진 건 사실이다.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책했다. 글이 언제나 나를 지혜롭고 현명하도록 도와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독이 되어 내 생각 속에만 매몰되기도 했다. 글은 생각의 표현이다. 즉,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내가 변하지 않으면 글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고, 나아진 척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결국 근본적인 문제—자책—에서 벗어나야 했다. 자책에서의 해방은 글과 그림이 주가 아니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후회와 열망이었다. 그것은 점차 행동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상에서 얻은 깨달음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저자가 말한 창작이라는 건 이런 것 아닐까. 나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 상상만 한 것을 현실화시키는 것.
‘이랬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면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샘플을 만들면서 현실화시켰다.
내가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였다.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을 쉽게 지나치곤 했다. 이 생각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다. 바로 어머니가 내게 들려주는 동시이다. 어머니는 가끔 내게 동시 세네 편 정도를 들려준다. 동시를 보면 시인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알 수 있다. 그럴 때면 난 매번 감탄한다. ‘어떻게 이리도 작은 일상적 요소에서 이런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거지?’ 생각하며 시에 담긴, 얼굴도 모르는 시인에 대해 엄마와 이야길 나눈다. 이렇듯 시인의 눈은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른 것을 본다. 우리가 길을 가며 핸드폰을 볼 때 시인은 아스팔트 모퉁이에 아슬아슬하게 꽃 피운 민들레를 본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에게 떠오르는 것을 자신의 메모장에 써 내려간다. 작가들은 글을 써놓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 영감이 떠오르면 몇 줄만이라도 적어놓는 공간. 그것들을 나중에 퇴고하여 글을 완성한다. 사실 내가 그렇게 작업한다. 저자는 의상이나 지갑에 관한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샘플을 만들겠지만, 나는 깨달음에 관한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퇴고하는 작가로서 살아가고 있다.
남과 다른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갑자기 나타난다. 예상치 못하게 말이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사람만이 그 아이디어의 주인이 된다. 기록하고 남기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내 것이 아니다.
일상 속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든 창작을 통해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기회는 눈을 뜨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이 글로 인해 나는 평소 눈을 뜨고 다니는지, 일상을 그저 흘려보내며 무의미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질문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의 메모하는 습관에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바삐 살아가는 나의 일상이 글감으로 가득한 것도 알게 되었다.
긴장감 없는 일상이 지속되자 모든 게 시시하고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바쁘게 사는 것을 즐긴다. 그럴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더욱 열심히 살기 때문이다. 내가 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불안 때문일 거다.—지금은 아닌 것 같다. 일단 예전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듯이 공부나 그림에도 완벽이란 없다. 지금까지 완벽하게 공부했다 느끼며 시험을 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불안이라는 뗄 수 없는 내 특성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불안이 내 공부에 방해되는가 하면 아니라 말하고 싶다. 불안하기에 더욱 열심히 하고 더욱 꼼꼼히 봐서 결과적으로 높은 점수가 나오는 걸 보면, 불안을 물리쳐야 하는 존재, 벗어나야 하는 존재라 칭하는 것도 이상한 관습 같다.—지금 생각하면 불안이 내게 주었던 것들보다, 나에게 뺏어간 것들이 더 많았다.—
삶에서 불안한 것을 마주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이 노력은 안 그래도 부족한 인간이 그나마 덜 부족해지는 길이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정체된 삶은 생명력을 잃으니까. 그래서 저자의 프랑스 유학이라는 급진적인 선택은 내 눈에 특히 띄었다.
나에게 유학은 먼 존재다. '내가 유학을?' 글쎄.. 생각해보지도 않고 제쳐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유학에서 얻은 깨달음의 집합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저자가 유학을 간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았기에 따로 검색했고 저자의 인터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회피의 수단으로 유학을 결정했습니다. 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장소가 바뀌었다고 해서 인생에 큰 변화는 찾아오지는 않았어요.
유학의 이유를 알게 되니 책 내용이 더욱 이해되었다. 책 초반에 저자는 문법에 신경 쓰며 완벽히 말하려고 애썼다는 내용이 나온다. 심지어 회식 날, 건배사의 인칭이 틀렸음을 지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대화에서 언어는 나를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다. 일상에서 하나하나 문법을 지키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 저자는 그때의 자신은 나를 설명할 수 없던 ‘나’를 드러내는 게 불편했던 거라 말했다. 새로운 곳에 가면 새로운 내가 될 것이란 근거 없는 기대로 간 유학이니만큼, 나를 제대로 몰랐기에 ’나‘를 말하는 것이 두려웠고 그래서 문법에 과도한 집착을 보였던 것으로 추측한다.
내가 관심이 있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언어가 다르더라도 그 진심만큼은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말들을 주고받으며 산다. 이런 웅성임 속에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진심의 말을 많이 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