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 <낭만 10세> (6)
“야호! 열두 시다아아아-!”
그러지 말아야 했다. 앉은뱅이책상 위 동그란 시계의 바늘이 열두 시를 가리키건 말건, 꼼짝 말고 누워있어야 했다. 그랬으면 좋으련만, 난 그만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질러댔다. 아버지를 제외한 다섯 식구가 한 방에서 자는 상황이었다. 특히 어머니의 최애우량주인 오빠가 단잠을 자는데 그 밤의 고요를 깼다고, 감히?
슈우웅, 턱!
아니나 다를까, 육중한 베개가 내 옆머리를 강타했다. 엄마는 방금 전까지 분명 바느질 중이었는데 언제 베개를 던진 건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난 그녀의 무시무시한 눈길을 맞닥뜨렸다.
‘조용히 해! 네 오빠 자는 거 안 보여? 오밤중에 미쳤니?’
라고 말하는 게 분명했다. 능히 그러고도 남을 일선 씨였으니까.
그런데 입가가 찝지름했다.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파서도 아니요, 엄마한테 혼나서도 아니었다. 그런 것 때문에 울 나이는 이미 지났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인생사를 새로 쓸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너무나 원통했다. 혼나지 않고 자정을 넘기는 날이 가능할 뻔했는데...
기억하는 한, 나는 어머니의 꾸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하루라도 혼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물론 어머니에겐 밉상 막내를 혼낼 이유야 차고 넘쳤다. 시끄럽다, 말 안 듣는다, 밥 안 씹고 삼킨다, 여자애가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다, 잘 때 이를 간다, 언니한테 대들었다, 밤낮 밖에 나가 놀궁리만 한다, 오빠 줄 계란프라이를 뺏어먹었다, 주위가 산만하다, 입을 쭝 내밀었다, 애가 뭘 믿고 허세냐, ⋯.
그나마 이유를 알려주면서 혼낼 땐 괜찮았다. 문제는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게 하면서 마구잡이로 혼을 낼 때였다. 정말 싫었다. 내가 말을 못 알아듣는 얼라도 아니고, 여차저차해서 이러저러하게 야단치는 거라고 설명 좀 해주면 안 되나? 울분이 치솟곤 했다.
그럴 때면 일부러 입술을 앙다물었다. 엄마가 “너 또 그럴래, 안 그럴래?”라고 윽박질러도 꿈쩍하지 않았다. 왜 혼나는 건지 영문도 모르는데 다음에 또 그럴지 말지 그걸 어찌 결정한단 말인가? 난 그저 ‘날 죽여 잡숴요~’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것은 마치, 부당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맞서는 약자의 저항 같았다.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몸으로 표현하는 항의였다까?
지속적으로 저항을 표현하는 중에 나만의 비밀 하나가 쑥쑥 자라났다. 가족도 모르는 내 출생의 비밀, 초록별에서 온 아이. 때가 되면 가족과 세상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놀라운 빛의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비록 아이로 사는 동안은 사람들이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볼 수 없지만 언젠가는 다 보게 되리라, 세상을 밝히는 빛이 내 온몸에서 뻗어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리라는 믿음! 대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믿음을 동아줄처럼 붙들고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비밀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아무튼 그날 밤에 처음으로 무사히, 그러니까 언어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엄마로부터 그 어떠한 압력도 받지 않고 하루를 보낼 기회를 만난 것 같았다. 이불을 덮었다가 슬쩍슬쩍 눈만 내놓고선 책상 위 시계를 훔쳐보고 있었다. 시침이 숫자 12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부턴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어쩌면 진짜로 혼나지 않고도 하루를 넘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다 시계가 자정을 알리는 순간, 나의 이성은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환호성을 지른 것이다. 물론 그 즉시로 나의 아둔함을 후회했지만 이미 화살은 활시위를 떠난 후였다.
고맙게도 그 밤엔 오빠가 나보다 일찍 잠들었었다. 학교 근처 독서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다가 모처럼 집에 오니 일찌감치 꿈나라로 떠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귀한 아들의 소중한 수면이 방해받을까 봐 어머니가 조심한 덕분에 막내딸 응징은 베개 한 방으로 마무리되었다. 불행 중에도 언제나 다행의 틈새는 열리는 모양이다.
재미난 건, 인생 신기록을 세우지 못해 슬퍼하는 중에도 새로운 궁금증들이 올라왔다는 사실이다. 대체 안희준은 나랑 뭐가 그렇게 다를까? 나만 모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걸까? 혹시 이 인간도 어디 먼 별에서 왔나?
나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오빠, 안희준의 얼굴은 ‘난 완벽한 외탁이에요, 난 절대로 아버지를 닮지 않았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외가 쪽 남자들의 얼굴형은 대체로 비슷했다. 평평하되 그리 크지 않은 이마 아래로 굵고 진한 눈썹이 휘날리고, 그 바로 아래 움푹 깍여내려간 곳에는 부리부리한 두 눈이 위치했다. 거기에 길고 오뚝한 콧날까지 더해져 서아시아 어디쯤의 후예처럼 보였다. 내 어머니 일선 씨는 하나뿐인 아들 얼굴이 그 미워죽겠는 남편과는 딴판으로 생겨서 절로 감사기도가 나온다고 했다.
다른 이유는 보이질 않았다. 김일선 여사가 자신의 막내딸-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의 친딸이 아닐 거라 믿었지만 –을 구박하는 이유는 오로지 딸의 얼굴이 엄청난 친탁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씹어먹고 또 씹어먹었다. 너무 잘 씹어먹었는지 그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화석이 돼버렸다. 그래서 종종, 나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한 어머니의 바른 훈육을 ‘흥! 내가 아빠를 닮아서 혼내는 거지?’라고 단정 짓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심각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부정적 생각굴레를 멈추지 못한 것이다. 중독이었다. 나 자신을 비참하게 여기며 연민과 동정으로 스스로를 감싸주는 재미를 너무 일찍 맛보았는지도 모르겠다. 훗날 내 눈과 귀가 자라나서 그런 중독을 직시하고 깨트리고자 했을 땐, 오랜 세월 동안 나를 지배한 부정적 습관 하나를 떼어내기가 얼마나 어렵던지, 징글 징글맞게 어려웠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을 처음부터 싫어하진 않았다. 딸이 제 아비를 닮은 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아버지의 딸이니까 당연히 아버지를 닮을 수밖에. 별다른 감정 없이 그 말을 받아들였다. 적어도, 어머니가 나를 보드라운 목소리로 “초아야~!”라고 부를 때까진 그랬다.
어느 날, 일선 씨는 막내딸을 보고 “야! 김초아!”라고 소리쳤다. 그녀 얼굴엔 짜증과 미움이 우글거렸다. 그때 확실히 목격했다. 아버지를 바라보던 눈빛, 원망과 증오의 시선이 그대로 나를 향하고 있음을.
그때부터였나 보다, 아빠를 닮은 게 싫다고 웅얼거리기 시작한 것이. 아무리 그렇게 뇌까려도, 막상 거울을 바라보면 빠져나갈 구멍을 못 찾았다. 앞짱구도 모자라 뒷짱구까지 겸비한 내 두상은, 아버지의 툭 튀어나온 이마와 뾰족한 뒤통수와 참 잘 어울렸다. 내 두툼한 윗입술과 두 개의 커다란 앞니는 아버지를 넘어 막내고모의 얼굴까지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닮아도 너무 닮은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막내딸의 앞니가 톡 튀어나왔으면 보통은 ‘토끼 이빨이네? 아유, 귀여우!’라고 예뻐해 줄만도 한데, 내 어머니는 달랐다. 볼록하게 솟은 엉덩이, 다른 발가락들보다 갑절은 길고 커서 늘 양말을 뚫고 나오는 엄지발가락, 차가운 우유를 먹으면 뱃속이 꿀렁거리다가 이내 설사가 터지는 습성까지 제 아비와 똑같으니, 그녀가 막내를 사랑스럽게 쳐다볼 리 만무했다.
미완의 환호성이 베개 타격으로 초기 진압되던 그 밤도 지나가고, 시장통엔 진한 봄기운이 넘실거렸다. 학교에서 돌아온 직후, 나는 수주와 나란히 의상실 미닫이문턱에 앉았다. 햇살에 나른해진 우리는 느리고 낮은 말투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
“울 엄만 정수미만 좋아해.”
“울 엄만 안초아만 미워해.”
“엄마가 셋을 낳아놓고서 왜 하나만 좋아하지?”
“엄마가 넷을 낳아놓고 왜 하나만 미워하지?"
"그러게, 첨부터 하나만 낳았어야지. 하나를 낳지 말던가."
"... 그럼... 너랑 나, 둘 다?"
"없는 거지."
“... 글치... ”
우리의 궤변이 방향도 없이 흔들거렸다. 하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건 그냥 우리의 놀이 중 하나였으니까.
“쯧쯧, 니들처럼 어린것들이 부부의 애로사항을 어찌 알겠니?”
수미언니였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5학년 짜리 아이의 입에서 그런 단어, 그런 표현이 나올 줄이야! 그녀가 던진 말의 진의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어쩐지 그녀가 내 어깨 위 저기 어디쯤에서 미소 짓는 존재 같았다. 낯설었던 동네에서 특별한 아이, 수주와 손을 맞잡았다. 수주를 통해서 수미 언니를 만났다. 응암동 재래시장 한복판은 어느새 내게 흥미로운 공간으로 느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