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전쟁도 좀 쉬어가라잖아
성장소설 <낭만 10세> (9)
대폿집 소란이 지나가고 어느새 다시 일요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주간의 피로를 풀며 늘어지고 싶어 하는 그 아침, 시장통은 또 한 번의 가족 간 소동으로 떠들썩해졌다. 그리고 그 난리의 발원지는 다름 아닌 우리 집이었다.
"어이구, 가장이란 인간이 어떻게 허구헌날 저 모양이야?"
어머니의 한스런 넋두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렇게 기상하는 게 처음도 아닌데, 그런 아침은 언제나 낯설었다. 눈 뜨자마자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고 온몸이 경직되는 아침. 참으로 피하고 싶은 순간이지만 눈을 떠야 했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일단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희수언니는 역시나 취침 중이었다. 그녀가 뛰어들기엔 너무 독한 시간이다. 차라리 오래도록 잠자는 숲 속의 공주로 머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간밤에도 독서실 책상에서 쪽잠을 잔 모양이었다. 유일하게 나와 힘을 합칠 수 있는 희주언니는 어디에? '아, 맞다... 언니는 친구네 집에서...' 수학을 탁월하게 잘하는 그녀는 친구의 수학 공부를 봐주는 대신에 방 한 칸과 식사를 제공받았다. 손바닥만 한 사글셋방에서 비좁게 사는 것 보다야 언니한테 열 배는 잘 된 일 같았지만 실은 그녀에겐 가혹한 시간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부모의 돌봄 없이 지내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렇다고 싫은 티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어른스러웠으니까. 이따금씩 그녀의 두 눈에서 외로운 한숨이 비칠 따름이었다.
어머니의 탄식은 건넌방에서 들려왔다.
“결혼하고 이 날까지 월급 한 번을 제대로 안 가져오면서 뭐? 누굴 도와줘? 이번에 또 누군데? 학교 후배? 고향 친구? 누구냐고? 남들은 다 불쌍해 보이지? 도울 거 투성이지? 으이구! 내가 미쳐, 미쳐!"
그녀의 목청이 커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소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들면 어머니는 밤이 새도록 허공에 넋두리를 쏟아냈다. 죽은 듯이 자는 남편이 더 미워서, 그녀는 말로 남편을 저주하고 죽였다. 하지만 말로만 그랬다. 마음 약하고 겁 많은 어머니는 남편을 달리 어찌하지 못했다.
천천히 안방을 나왔다. 겨우 엉덩이 기댈 정도의 좁은 마루를 내려오면 곧바로 건넌방 미닫이문이 손에 닿았다. 건넌방은 이전에 가게로 쓰였던 곳이라 온돌도 깔리지 않은 시멘트 바닥의 공간이었다. 스티로폼을 깔고 그 위에 노란색 비닐장판을 덮었다지만 여전히 바닥에서 찬 기운이 올라왔다. 아버지는 거기서 혼자 잠을 자곤 했다.
미닫이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문 바로 앞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조금 다가서 올려다보니 그녀의 얼굴이 많이 푸석푸석했다. 원망과 미움이 뒤엉킨 푸석거림이었다. 아버지는 길 쪽으로 난 출입구 근처에서 두꺼운 이불을 방패 삼아 누워있었다.
훌쩍훌쩍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한테서 나는 소리였다. 부모가 그렇게 서로를 대치해 있을 때 세상 어떤 자녀가 무심할 수 있을까? 내 가슴은 뾰족한 칼 끝에 긁히는 것처럼 아팠다.
“엄마⋯, 하지 마, 하지 마, 엄마⋯.”
애절하게 사정했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가 싶었지만 이내 날카롭게 돌변했다.
"뭘 하지 마? 얘는 맨날 나보고 하지 말래?“
그리곤 다시 남편에게로 화살을 쏘아댔다.
“새끼가 넷이나 되는데, 집에선 죽을 끓여 먹는지 밥을 굶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술 마시다가 새벽에서야 기어들어와? 가정이라곤 쥐똥만큼도 모르고 그저 남들이나 챙길 거면서 결혼은 뭐 하려 했어? 월급은커녕 마누라만 보면 그저 돈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인간, 으이구, 거머리가 따로 없지, 거머리!”
휘익! 바람 소리와 함께 뭔가 육중한 힘이 움직였다. 아버지가 번개처럼 어머니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는 제 아내의 목덜미를 틀어쥐었다.
“아악!”
여자가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남자는 손안에 든 작은 목덜미를 더 바투 쥐어 잡고는 마구 흔들어댔다. 여자의 몸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컥, 컥!"
그녀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나는 아버지의 팔에 매달렸다.
“하지 마! 이러지 마, 아빠, 안 돼!”
악을 썼다. 얇은 미닫이문 밖은 바로 시장통이었다. 그렇게 울부짖으면 동네 사람들이 내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애들 사이에 소문이 쫙 퍼질 테고. 그래도 할 수 없었다. 남들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난 그저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엄마를 빼내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 했다.
생각만으론 부족했다. 절대적 힘의 열세. 열 살이나 먹었는데도 부모의 싸움을 말릴 수 없다니? 아득한 좌절감에 더 큰 울음만 터져 나올 때였다. 작지만 강한 목소리가 울렸다.
“주일 아침이잖아. 좀 쉬어가면 안 돼요? 제발...”
희수언니였다. 정적이 몰아쳤다. 여태 스스로 큰 소리 한 번 낸 없는, 부모 입에서 큰 소리 나게 한 적도 없는 모범생 공주님이? 그녀의 등장이 어찌나 놀라웠던지 우리 세 사람은 마치 내부반에서 ‘동작 그만!’을 명 받은 병사들처럼 멈췄다. 나는 '좀 쉬어가면 안 되냐'는 언니의 말에 신경이 집중되었다. 표현 자체가 무척 낯설었는데 희한하게 속이 시원했다. 재미있기도 했다.
아무튼 곧바로 휴전이었다. 둘째 딸이 부모의 약한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 덕분이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주일날은 거룩한 안식일이다 등을 중요하게 여기고 또 늘 강조해 온 어머니였기에, 딸이 던진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난 모양이었다.
일요일 오전 내내 집안은 고요했다. 어머니는 이마에 흰색 끈을 질끈 동여맨 채 드러누웠다. 끙끙 앓는 소리가 안방에 가득했다.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웠다. 어머니의 앓는 소리는 부부싸움에 쓸 기력이 이제 없음을 알리는 신호, 즉 더 이상 투쟁을 이어갈 힘이 남아있지 않을 때 선택하는 마무리용이었기 때문이다.
정오가 거의 다 되었을 즈음, 아버지는 주섬주섬 양복저고리를 찾아들었다. 집 밖으로 나가려는 몸짓이었다. 나간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 또 그의 심신이 안식을 취할 만한 곳도 없겠지만, 그래도 아내가 누워있는 때를 놓치면 안 되는 거였다.
외출 준비라 해봤자 누런색 서류봉투를 집어드는 게 전부였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결같이 그의 손에 들리는 봉투였다. 가끔은 일찍 귀가한 아버지가 그 봉투 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곤 했다. 대부분은 내가 알아보기 어려운 서류들 투성이었지만, 종종 두껍고 네모난 책 하나도 들어 있었다. 내겐 둘도 없이 반가운 친구 같았다.
어른들이 읽는 월간잡지였다. 당시의 대형 신문사들이 발행하는 월간지는 사회 전반의 이슈들을 다루었고 특히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아버지는 그 두꺼운 책을 읽을 때 가장 평화로워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웬수 남편이 아닌, 멋진 안 선생님으로 보였다. 일선 씨마저 “느이 아버지가 정의파잖아, 4‧19 때 좀... 하더라.”라고 말했으니까.
상상하곤 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하이얀 와이셔츠 차림의 민근 씨를. 팔 소매를 아무렇게나 걷어 올린 채로 사람들 앞에 서있다. 그의 곁엔 비슷한 옷차림의 청년들이 섰는데, 그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함성도 질렀다. 아버지는 그들 앞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상상 속 아버지를 흠모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그런 성향을 타고났는지 모르겠지만, 틈만 나면 그 깨알 같은 지면의 월간지를 들여다봤다. 책 속에 담긴 허다한 글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나의 사명이라도 되는 냥 그 책을 붙잡곤 했다.
나이 들면서 인정했다, 내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게 정말 많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사회정의에 눈을 떴고, 어떤 형태로든지 불의에 저항해야 그게 사람으로서 마땅한 도리라는 신념까지 지녔으니 말이다. 물론 그런 사회참여적 태도와 별개로 허접한 내 꼬락서니를 목도할 때면 ‘어째 이런 것까지 닮았을까?’ 싶었지만...
아버지는 미닫이문 앞에 섰다.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졌다. 일요일 아침인데 어디를 가려는 걸까? 아버지가 어디 먼 곳으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가슴이 철렁했다. 덜컥 울음이 올라왔다. 아버지가 어디론가 사라져 주면 좋겠다는, 그러면 우리 집에 평화가 올 것 같다는 기도를 올리기도 했는데, 막상 아버지가 길을 나서는 뒷모습 앞에서 두려워졌다.
“아빠-!”
콧물과 눈물을 주렁주렁 매단 채 황급히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어디가? 가지 마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드문 일이었다,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다니. 비록 한 번이었지만, 그 손길에 그만 울음이 쏙 들어갔다.
드르륵 문이 열렸다. 아침 바람이 밀려들었다. 아버지는 그 바람에 막내딸을 맡기고는 자기의 길을 나섰다. 우두커니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헉! 내 두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엇? 너, 너?”
낡은 남색치마를 입은 아이, 나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가 문 옆에 서 있었다. 그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초, 초아야⋯, 노, 노, 노올자⋯.”
세나와 나는 얇은 문에 기대앉았다.
“세나,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어? 어~, 쪼금. 아, 맞다! 그게⋯ 할머니 심부름 말야, 두부 사러 나왔다가”
“다... 들었어?”
“어? 어⋯.”
“우씨, 우리 엄마, 아빠가 나쁜 사람은 아닌데 맨날 싸워.”
“우씨! 우리 아빠도 나쁜 사람 아닌데 맨날 때려!”
“뭐? 세나... 너네 아빠가 맨날 때려?”
“어? 아, 아니! 아냐 아냐! 울 아빤 한 달에 한 번 올라오잖아. 어떻게 맨날 때려, 그냥 한 번, 쩌번에 한 번!”
세나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완강했다. 그의 말대로 믿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근데 초아야, 나 너 따라서 교회 가면 안돼? 오늘 떡볶이 준다며?
“우와! 세나도 갈 거야? 그래, 같이 가자. 쫌 있다가 만나자. 근데 오늘 우리 반 선생님이 떡볶이 해주시는 거 어떻게 알았어?”
“에헤헤, 난 우리 동네 교회들 뭐 하는지 다 알아! 이히히-.”
세나를 보내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데 가슴 한 구석이 콕콕 아파왔다. 세나는 분명 웃으며 갔는데 왜 내 가슴이 아픈지... 그리고 마음먹었다. 내 칭구 세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궁리해야겠다고. 방법은 전혀 모르겠지만 찾아보면 뭔가 좋은 수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딱 한 번이 되었든 열 번이 되었든, 아버지한테 맞는다는 건 내게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으니까. 비록 가난과 부부불화로 자녀들이 고통받긴 하지만, 아버지는 매를 들거나 손찌검을 한 적이 없었다. 실은, 자녀들한테 욕설 한 번 내뱉은 적도 없었다. 알고보면 점잖은 양반이었다. 그걸 알아보는 데까지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다는 게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