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어요
든든해요
믿음이 가요
아름다워요
유머감각이 좋으세요
매력적이에요
알고싶어져요
예뻐요
잘 생겼어요
귀여워요
사랑스러워요
지혜로우세요
능력자세요
센스가 좋아요
힘이 세군요
로맨틱해요
쓸모 있는 사람일세
섹시해요
독특해요
재능이 많으세요
완전 동안이에요
탁월해요
묘하게 끌려요
다정해요
책임감이 강하세요
바람님은 위 표현들 중 어떤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으신가요?
물론 또 다른 칭찬의 표현들이 얼마든지 있겠지만 일단은 그중에서 하나만 골라보세요.
만일 두 가지 이상이 눈에 들어와서 하나만 고르기 어렵다면요?
제 경험상... 솔직해지면 고르기 쉽더라고요.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그냥 내가 진짜로 욕망하는 것에 귀 기울여주면 되니까요.
자, 하나를 선택했다면 그 단어를 밑줄 위에 넣어서 다음과 같이 적어보세요.
OOO님, 당신은 __________한 사람!
예를 들어, '알고싶어져요'를 선택했다면?
'바람님, 당신은 알고 싶어 지는 사람!'이라고 쓰는 거죠.
그렇게 쓰고 나면 뒤따라오는 생각과 느낌이 있을 겁니다. 짧아도 좋고 복잡해도 좋습니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것은 무엇이든 무시하지 말고, 그대로 적는 겁니다.
바람님의 글이 궁금하네요. 저는 어떻게 썼는지 한번 볼까요?
새파란은영님, 당신은 알고싶어지는 사람!
와우, 정말? 그건 내가 진짜 듣고 싶은 말이잖아. 어라? 전엔 안 그랬는데? 멋있는, 매력적인, 탁월한, 독특한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잖아. 그런데 언제, 왜 바뀐 거지?
아마도... 글을 쓰면서 또 공연을 만들면서, 나의 작품이나 나라고 하는 인간 자체가 사람들에게 뭔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면 좋겠다는 바람이 커진 게다. '다음은 어떨까? 저걸 만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작가가 궁금해진다'는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반대로, 뻔하게 생각하고 뻔하게 표현해서 더 이상 펀fun한 게 없어 보이는 뻔뻔한 인생을 산다면? 그것처럼 노화된 인생은 없을 거다. 늙는다는 건 그런 거겠지. 난... 설렘이 있는 만남, 현재도 좋지만 앞으로가 더 궁금해지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데 나 스스로도 내가 궁금하다. 나는 어디까지 나갈 수 있을까? 어디까지? 그걸 아는 유일한 방법은... 갈 수 있는 데까지 내가 나가 봐야 아는 거잖아. 그래, 계속 시도하고 도전하자. 근데 여태 해왔잖아. 너무 힘들잖아. 늘 무리하게 애를 써야 하고... 하지만 뭐 그 정도로 몸부림치듯 그렇게 애쓰지 않고서 어찌 꿈꾸는 것들을 이룰 수 있겠나? 이 정도 애쓰지 않는 대한의 중년이 어디 있으랴...
떠오르는 대로 막 써봤습니다.
우선은 이렇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글로 옮겨내는 훈련을 하고요. 일정 시간이 지나서 글쓰기 근육이 좀 붙으면 그땐 깎고 다듬고 버리고 고치는 '퇴고推敲'의 시간을 걸어야겠지요.
바람님, 지금 우리는 '나 자신에게 솔직한 글쓰기'를 연습 중입니다, 아시죠?
그럼 한 가지만 더 해볼까요?
바람님의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꼭 듣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요?
스스로에게 솔직해 보세요. 정말 듣고 싶었던 혹은 듣고 싶은 말이 있을 겁니다. 그 한 마디를 먼저 씁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물어보세요.
'왜 그 말을 듣고 싶지? 이미 듣지는 않았을까? 실제로 들으면 내 기분이 어떨까?...'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스스로 풀어봐야겠죠?
5년 전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50-60대 중년 여성 70-80명 정도를 앞에 두고 '치유적 글쓰기' 강의를 하는 중이었지요. 매주 월요일에 모여서 인문학강의를 듣는 그룹이었는데, 그날은 '글쓰기의 능력-표현과 치유'란 제목으로 제가 강의를 했습니다. 그날도 지금처럼, '부모님께 꼭 듣고픈 말 한마디'에 관련해서 막 쓰는 시간을 가졌고요.
5분 정도 지났을까요? 수강생 중 세 분의 글을 차례로 공유하도록 안내하는데 마지막 분이 좀처럼 글을 읽지 못하는 겁니다. 60대 중반의 얼굴, 은빛 숏컷 헤어스타일과 당당한 체구에서 풍기는 카리스마와 달리 그는 말없이 그저 눈시울만 붉혔습니다. 그러다 겨우 글을 읽었지요, 아주 짧게요.
"미안하다, 애비가 잘못했다... 그 말을 너무 듣고 싶었는데... "
음악을 무척이나 배워보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못하게 했다네요. 아들도 아니고 딸내미를 음악학교에 보낼 수는 없다면서요. 떼쓰고 빌어도 소용없었고요. 결국 음악과 멀리 떨어져 살다가 중년이 돼서야, 여기저기 합창단이나 악기동아리 등 갈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다니는 중이지만, 가슴속 상처는 아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그 나이 든 딸을 가만히 안아드렸습니다. 함께 있던 수강생 모두가 그이를 향해 '미안하다, 딸아, 이 애비가 잘못했다'라고 말해주도록 안내했고요. 은발의 딸은 강의 직후에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한결 가볍고 맑은 얼굴로 말했지요, 글을 쓰고 싶다고요.
심리치유 현장 같은 이런 이야기가 바람님에겐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바람님의 지구별 나이가 젊을수록 더 그럴 것 같네요. '그 글 한 줄이 뭐가 대단한 힘을 갖는다고 그거 읽으면서 울고 그러지? 나이도 많은 어른들이?'라고 짜증을 낼 수도 있고요.
미안한 소리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 자신에게 정직한 막 쓰기'는 특별한 눈물과 변화를 맛보기 쉽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제가... 그랬었거든요.
12년 전쯤에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었습니다.
정말 두 번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사고죠. 몸에 장애도 얻고 한국으로 돌아와 경력 단절, 사회적 관계 단절의 시간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때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by 나탈리 골드버그)라는 책을 구명조끼 삼아서 '나 홀로' 치유적 글쓰기의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당시의 제 몸상태론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요. 비록 온몸의 통증으로 울면서 버틸지언정 글 쓰는 노동만큼은 감당할 수 있었으니까요.
희한한 것은요, 어떤 화두로 글을 써도 거의 매번 동일한 테마로 돌아온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내 기억이 죽나 아니면 내가 죽나' 내기라도 하듯, 저는 미친 듯이 막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다만, 나 자신에게 정직한 상태에서요. 내가 원하는 게 정말 무엇인지, 이미 떠가간 아비에게 뭘 바라는 건지... 내 솔직한 욕망에 귀 기울여주고 그대로 써보는 시간이었지요.
며칠이 흘렀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얘기만 써재끼다가 문득 더 이상 쓸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 오더군요. 머릿속이 뻥 뚫려버린 것 같았고요. 그제야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미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던 거예요.
그때 터져 나온 고백이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보면 제 글이 민망스러워서 오금이 저릿저릿합니다만... 이리로 옮겨오렵니다.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보시렵니까? 어떤 판단이나 분석을 요하는 시는 결코 아닙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그냥... 읽는 대로 느낌이 올라올 거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아버지와 딸
예쁘다
한마디 건네주지 않고
제 멋대로 떠난 아버지
통장 세 개 합쳐 25만 7천 원
팔십 평생 남은 돈
지지리도 궁색하게 살다 간 아버지
허세는 어데 가고
앙상한 육신에 암덩어리 매단 채
추적추적 자식 찾아온 아버지
석 달을 요양병원 문턱 닳도록 오갔지만
하고팠던 이야기 입 속에만 꾹꾹 담아둔
딸도 모질다
끝내 아프다 신음 한번 흘리지 않고
백발과 함께 떠나간
아버지도 참 모질다
왜 이제야 갔느냐
악을 쓰는 엄마에게 이제 그만
그만 좀 하라고 소리치는 나는
천상 딸이다
예쁘다 내 딸
그 한마디 듣고팠던 막내딸이다.
__ [참 쉬운 시1:무명본색] 중에서
바람님, 시방 느낌이 어떠신가요?
오늘의 마지막 써보기 시간, 출발~!
바람님, 이것 하나만 기억해 주세요.
막 쓰기 기간 중에는 내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 울림에 귀 기울여한다는 겁니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안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니까요.
골드버그 님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속 명문 하나를 소개하며, '막 쓰기로 나찾시' 여덟 번째 문을 닫겠습니다.
바람님, 안녕~.
글쓰기의 90퍼센트는 듣기에 달려 있다.
열심히 들으면 당신을 채우고 있는 내면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