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자주 들어보셨을 거예요.
'바람이 일어난다, 살아야겠다'라고도 하고요, '바람이 분다!... 그러므로 살아야겠다!'라고도 하죠.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1871-1945)의 시 [해변의 묘지] 중 끝부분에 등장하는 시구詩句입니다.
그의 시집을 처음 접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분명히 한글로 된 시를 읽는데 낯선 외국어를 마주한 것 같았지요. 뭔가 느낌은 오는데 그게 뭔지 명확하지 않아서 '난해하다, 난해해...'를 읊조리며 겨우겨우 읽었지요. 그러다 [해변의 묘지]란 시가 거의 끝날 무렵에 위 시구를 보고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 이거지!'라고 외치기도 했고요.
날이 무더워서 혹은 나라 사정이 너무 폭폭해서 그런가, 오늘은 뼛속까지 시원하게 해 줄 바람 한 줄기를 간절히 찾게 되네요. 멀리 가지 않고... 일곱 번째 글쓰기를 찾아오신 그대를 바람님이라고 부르렵니다.
네? 그랬죠, 어제까지는 그대를 '오늘님!'이라 불렀죠.
네? 이름은 이름일 뿐이니 얼마든지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다고요? 그럼요! 오늘도 바람도 다 가능하죠.
그리 응답해 주시니 참 좋습니다.
그런데 바람님 자신은 스스로를 뭐라고... 부르고 싶으세요?
바람님이 이제껏 사용해 온 주민등록상의 이름 말고요, 정말 불리고픈 별칭 하나 지어볼까요?
한 번쯤 되어보고픈 자연, 사물, 현상, 가치, 사람,...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불리고픈 혹은 되고픈 이름을 크게 써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구름, 향기, 기쁨, 하쿠나마타타, 옹달샘, 가람, 왕대박, 내맘, 소풍, 태풍, 쓰리세븐, 점그린, 큰바탕, 김태리, 분홍나비, 참나무, 소우주, 파란여우, 재벌, 나이야가라, ...
끝도 없겠죠? 무엇이 되었든 좋습니다. 맑은 목소리와 또렷한 발음으로, 사랑스럽게 불러보세요.
부르고 나니... 어떠한가요? 뒤따라오는 느낌과 생각이 있지요?
그것을 따라가면 또 이어지는 느낌이 있고요.
5분 정도 멈추지 말고 쭈욱~ 막 써보세요.
바람님, 혹시 아래 이미지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noharmdone.tistory.com 이탈리아 아티스트인 마우리치오 난누치(MAURIZIO NANNUCCI)의 2003년 작품인데요,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PEGGY GUGGENHEIM COLECTION)' 마당(제 기억이 맞다면)에 전시돼 있습니다.
10년 전쯤에 유럽미술관 투어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가진 돈은 쥐뿔도 없었던 때인데 '이번이 아니면 내 일생에 다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무조건 가자'는 생각 하나로, 정말 억지로 돈을 만들어서 다녀왔었네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아파하는 몸은 진통제로 달래가며 보름 정도를요. 말도 안 되는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놀라운 여정이었습니다. 그때 다녀오길 백 번 천 번 잘했단 생각입니다.
아무튼 그때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만난 위 글귀가 제 인생에 얼마나 큰 울림을 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장소를 바꾸기
시간을 바꾸기
생각을 바꾸기
미래를 바꾸기
어제와 다름없는 생각과 생활을 고수하면서 내일은 바뀌길, 변화가 있길 바라는 건... 제정신을 가졌다 볼 수 없겠죠? 그럼에도 저는 종종 그렇게 살아왔었기에, 저 지엄한 문구 앞에서 한참을 멈춰서 있을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때 제게 들려온 음성을 그대로 옮겨 써볼게요.
미래를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네가 속한 공간을 바꿔!
어제까지 반복한 시간표도 바꿔!
무엇보다 네 생각을 바꿔!
그러면 너의 미래는 바뀔 것이야!
제 수다는 여기까지. 이젠 바람님 차례입니다. 글로써 마음껏 수다를 풀어볼까요?
이렇게 적어보세요.
바꿔보고 싶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과 느낌들을 막 써보겠습니다.
아시죠? 자체검열 따윈 없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도 아니고요. 맞춤법은 그다음에 확인해 볼게요. 우선은 막 써봅니다.
어느새 10분이 훌쩍 지나갔네요.
'잘 썼다, 못 썼다' 그런 건 무의미하죠. 지금은 '내가 쓰고 싶은 것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 중이니까요. '다른 누가 아니라 내가, 바로 내가 스스로를 먼저 나를 알아주고 나를 보듬어주는 시간'이니까요.
참, 어제 바람님이 건네받은 미션이 있었죠?
'바람님이 기억하는 인생 첫 장면'을 손 좀 봐 오시라는 거였죠.
어떻게... 해볼 만한가요? 여섯 가지 정도의 잣대를 사용해 보시라고 했었는데요...
어제 예시로 들었던 글이 있었죠. 살짝 다듬어주면 어떻게 바뀔까요?
아주아주 오래전, 아마도 대여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흐린 날이었다. 구름도 하늘도 기와지붕도 온통 잿빛투성이었다. 어두컴컴한 마루 한쪽에 큰삼촌이 앉아 있었다. 여름날 같은데 큰삼촌은 손목까지 내려오는 긴 팔 옷차림이었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웅크린 등만 보였다. 동그랗게 말려서는 등뼈들이 투두둑 튀어나올 것만 같은 메마른 뒷모습만, 손 대면 바사삭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뒷모습만 기억난다.
큰삼촌 곁에는 할머니와 엄마가 있었다. 두 분 다 낯빛이 어두웠다. 속삭이듯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음성들이 하도 작고 낮아서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두 분의 달싹거리는 입모양, 틈틈이 내쉰 한숨 소리가 내 온몸을 휘감았다. 무서웠다. 그런데 자꾸만 슬펐다.
무서운데 슬픈 그 풍경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나이 오십을 넘어선 지금까지도, 그때만 떠오르면 눈물이 난다. 덜컥 겁이 난다. 그 기억 속 큰삼촌처럼, 내 사랑하는 누군가 아파서 스러질까 봐, 갑자기 사라질까 봐...
어제 예시문과 비교해 보시길요.
바람님은 어제의 글을 어떻게 다듬으셨을지 궁금하네요. 그 궁금함을 꾹꾹 눌러 담아서, 오늘의 글쓰기 미션을 하나 전달하고자 합니다.
앞서 쓰신 '바꿔보고 싶다' 글을 천천히 읽으면서 손 좀 봐주세요. 어제 작업했듯이요.
여기까지입니다. 바람님, 내일 여덟 번째 날에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