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영 Jun 27. 2023

나, 느낌, 기억

막 쓰기로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시간 6

오늘님, 그거 아십니까?

여행의 참맛은 나 혼자 여행 때 제대로 맛볼 수 있다는 것을요.


저는 1999년 5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멕시코시티에서 교민으로 살았습니다.

자기 위기 날? 네, 그러게요. 일단 들어보세요.

 

멕시코 사는 동안 이따금씩 혼자서 짧은 여행을 다녀오곤 했습니다.

가방 하나 둘러메고 낯선 시골 어디쯤에서 3일이든 6일이든 머무는 거죠. 물론 일에 미치도록 몰입하다가 "헉, 안 되겠다, 이러다 죽겠다!"라는 말이 터져 나와야 떠날 수 있었지만요. 

혼자 지내기만 하면 몸살을 앓는 남편에게 "당신은 잘 버틸 수 있어, 파이팅!" 응원해 주곤 얼른 고속버스에 올라탈 때의 설렘이란... 기가 막힙니다.

 

다녀본 곳 중에 남쪽 오아하까(OAXACA)를 갔던 기억이 진하게 남아있네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쏘깔로(zocalo;관공서, 성당, 공원 등이 함께 있는 지역 중심부)를 찾아갔습니다. 혹시라도 멕시코를 여행하다 길을 잃거나 뭔가 급히 필요할 때는 일단 쏘깔로로 달려가세요. 그곳에 가면 물건이든 장소든 사람이든 다 모여 있으니까요.

쏘깔로 한복판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카페들 중 가장 깔끔하고 예쁘게 장식된 2층 건물을 발견하곤 그곳으로 들어갔지요. 

참, 멕시코 사람들은 한국 여성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들 눈엔 너무 젊어 보이기 때문이죠. 그 카페의 직원 역시, 서른아홉 살이나 먹은 제게 

"세뇨리~따, 어디에서 왔어? 왜 혼자야? 시티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야?"

라고 질문을 쏟아내더군요. 아줌마로선 기분 나쁘지 않은 환대(?)였습니다.


저는 메뉴판에서 한 끼 식사로 가장 비싼(워낙 물가가 낮아서 안심하며) 걸로 주문했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도 여기에 와서 먹고 싶어. 그런데 동네에서 제일 깨끗하고 예쁜데 가격도 착한 호텔이 어디야? 알고 있으면 좀 알려줄래?"

까무잡잡한 얼굴의 직원은 명함 하나를 건네주며 말하더군요.

"여기 가. 이 호텔이 너처럼 예쁘고 착해!"

한국에서라면 '이 쉐키가 어디서 수작을?'이라고 욕을 해줬겠지만(물론 한국에서라면 내가 듣기 어려운 멘트였겠지만), 중남미 문화에선 젊은 여성의 외모를 칭찬해 주는 게 예의라 들었기에 미소로 화답해 주었네요.


아무튼 그의 추천은 너무도 만족스러웠죠. 깔끔하고 고풍스러운 스페인식 저택에 멕시코식 컬러풀한 인테리어, 아침마다 직접 구워내는 빵을 조식으로 내놓는 호텔이었으니까요.

그날 호텔 방에 침대에 걸터앉는데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 내 짧은 스페인어로 그렇게 의사소통을 다 하다니? 숙소를 찾는 방법은 또 어찌 알고 그렇게 물어본 거야?

자기 자신한테 반하는 순간이었나 봅니다.


가만, 제가 여행무용담을 늘어놓고 있나요?

낯선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 나 혼자 뛰어들다 보면 '내가 이런 사람이었어?' 놀라기도 하고요, '요즘 내 안에 이런 욕망이 숨죽이고 있었구나' 알아차리기도 하더라는... 이야기를 하고픈 거네요.

네,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고 내가 직접 다 해야 하니까, 또 나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에 자유롭게 나를 드러낼 수 있으니까 그런가 봅니다.


몸으로 다녀보는 여행도 그러할진대, 오롯이 나 홀로 걸어야 하는 글쓰기 여행이야말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정직하고 명확하게 찾아갈 수 있는 지름길 아닐까요?  


이 즈음에서 오늘님의 시방 느낌이 궁금해집니다.

생각은 잠시 멈추시고요, 오늘님의 뇌를 채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느낌 하나를 적어보세요.

그 느낌 언어 뒤에 따라오는 생각, 그 생각 뒤에 올라오는 느낌을 흘러가는 물처럼 술술 써볼까요?

엊그제 한 분이 느낌언어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네,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어떤 사건이나 정보 등을 사실 또는 팩트라 하지요. 그것은 바꿀 수 없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요. 그 외는 전부 생각의 영역이지요. 그래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요. 

우리는 어떤 팩트에 대해 각자 생각을 합니다. 옳다, 그르다 등의 가치 판단이 들어가고요. 해석하고 의미 부여를 합니다.

생각 직후에는 어떤 느낌이 뒤따라 오기 마련이지요. 거기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이라 딱지를 붙이지는 말고요. 그냥 내가 그 순간에 느끼는 거니까, 있는 그대로를 문자로 표현해 내는 거죠.


- 흐뭇하다, 뿌듯하다, 기쁘다, 우울하다, 슬프다, 짜증 난다, 감사하다, 쓸쓸하다, 외롭다, 억울하다, 허허롭다, 서럽다, 담담하다, 덤덤하다, 답답하다, 가슴이 벅차다, 열받는다, 시원하다, 지루하다, 따분하다, 좋다(나쁘다와 대척점에 있는 가치판단의 좋다가 아님), 싫다, 황홀하다, 멍하다,...


아, 제가 수다만발이죠? 이젠 오늘님의 글로 푸는 수다 타임, 들어가 볼까요?


어제에 이어, '내 생애 첫 기억'을 다시 꺼내보겠습니다.

어제 쓴 것은 잊어버리시고요. 다시 쓰겠습니다.

테마는 오늘님이 기억하는 인생 첫 장면!

사진 한 장 또는 sns동영상 숏츠처럼, 그 장면의 이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세요. 이런 작업을 '글로서 보여준다'라고 할 수 있겠죠? 

자, 그럼 출발!  

10분이 휘리릭 지나갔네요. 오늘님의 손목 스냅에서 바람 소리가 났답니다.

그런데 다른 이는 어떻게 썼을까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오프라인 수업 때 어떤 분이 쓰신 첫 기억 이야기를 공유해 볼게요.

아주아주 오래전 같은데 아마도 여섯 살 때였을 것 같다. 기와지붕과 마루가 보인다. 큰삼촌은 뒤돌아 앉아서 등만 보이는데 이상하게 그 등이 무서웠다. 곁에 할머니랑 엄마가 있는데 두 분 다 얼굴이 창백하고 슬퍼 보이지만 우시는 건 아니다. 난 되게 슬펐는데 아니 되게 무서웠다. 두 분이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 나누시는 것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그렇다고 끼어들어서 여쭤볼 수도 없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할머니와 엄마가 입술을 느리게 달싹거리며 틈틈이 한숨을 깊게 내쉬곤 하셨다. 아주 많이 덥진 않았지만 여름날이었던 건 확실한데 삼촌은 긴 팔 옷을 입었던 것 같다. 흰색인지 베이지인지 모시 저고리 같은데 손목 끝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등은 복어배처럼 동그랗게 튀어나와서 아니 동그랗게 말려서 너무 불쌍했다. 나중에 엄마가 말씀해 주셨는데 큰삼촌은 그때쯤 돌아가셨다고 했다.

  

글을 읽고 나니 어떠신가요? 

저는... 가슴이 아려오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어린 눈에 큰삼촌이면 무척 큰 존재로 보였을 텐데요. 그런 존재가 병들어 스러져가는 뒷모습을 목격한다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 순간으로 기억되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막 쓰기 후 소감나눔 시간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저는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플 때 정말 힘들어해요. 제 자신의 건강도 염려스럽고요. 건강 염려증 같은 건가요? 부모님이 아프시단 소식을 들으면 두렵고 떨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내 생애 첫 장면'은 현재의 내 삶을 반영하거나 혹은 내가 풀어야 할 숙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첫 장면은 나를 이해하는데 중요하겠고요.  


오늘님, 조금 전에 쓰신 [오늘님이 기억하는 인생 첫 장면]을 차분히 읽어보세요. 입 밖으로 소리 내서 읽으면 훨씬 좋답니다. 기본 내용은 유지하되 아래 항목들을 적용해서 다듬어 보세요.


    1. 문장을 단순하게 자를 수 있으면 자르기

    2. 주어와 술어를 짝 맞추기

    3. 시제를 잘 맞추기

    4. 불필요한 접속어는 빼보기

    5. 동일어 반복 시엔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로 바꾸보기  

    6. '~하는(인) 것이다'를 '~하다, ~이다'로 바꾸보기

오늘도 15분 혹은 60분... 동안 글쓰기에 몰입하신 오늘님, 정말 멋져요! 


멋진 오늘님과의 여섯 번째 만남은 여기까지. 

안녕~.

이전 05화 최고의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