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훈 작가 그림 리뷰
언뜻 보았을 때 그림은 어둡게 인식된다. 그러나 시간을 들여 바라보면 전혀 다른 결이 드러난다. 화면을 가득 채운 구름은 살구색, 레몬빛 등 연한 파스텔 톤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부드럽고 풍성한 질감을 준다. 작품은 흔히 기대되는 풍요나 번영, 혹은 행복한 가정을 상징하는 회화로 읽히지는 않는다.
작품과 작가는 분리되어 생각되어야 한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가의 생애나 윤리를 직접적으로 투사하는 태도는 종종 감상의 깊이를 제한한다. 연주를 들으며 연주자의 삶을 떠올리는 감상이 진부한 키치로 전락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재클린 뒤프레의 삶에서 비난받을 부분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뛰어난 지휘자이자 연주가이다. 그의 연주에 개인의 품성이 드러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과 창작자는 서로 독립적이다.
그러함에도 그림에서 따뜻하면서도 풍부한 상상력이 느껴진다. 어떤 소중한 것을 떠올리면서 파생된 감정이. 예쁜 마음을 가졌나 보다. 화면 하단에 자리한 호수와, 그 위에 흔들리며 반사되는 윤슬은 특히 주목해야 할 요소이다.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시간대는 어스름한 새벽 혹은 아직 해가 완전히 오르지 않은 순간처럼 보이며, 화면 전반은 어둡고 정적인 분위기를 띤다. 구름은 유난히 밝다. 이 대비는 작품에 미묘한 긴장과 서정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다수의 관람자는 작품에서 J. M. W. 터너를 연상할 가능성이 크다. 빛과 색의 흐름을 통해 감각을 포착하려는 시도는 인상주의의 계보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차용이나 모방에 머물지 않는다. 19세기의 인상주의가 캔버스를 들고 외부 풍경 속으로 나아갔다면, 현대의 회화는 더 이상 바깥을 향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난파선에 붙은 따개비들의 향연이다. 난파선은 언제고 산산이 부서질 거고 유희는 다시 물결에 흘러갈 것이다. 시선은 안으로 향하고, 감각은 내면을 부유한다. 이와 같이 유희를 위한 유희, 지워지기 위해 구축된 세계는 끊임없이 예술가들에 의해 건설된다.
한재훈의 회화는 그러한 세계를 과시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정온히 제시한다.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 떠오르는 빛, 고요히 흔들리는 윤슬, 밝게 부풀어 오른 구름은 관람자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스스로 도달하도록 여백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