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과거 전시에서 소리는 관람을 돕는 배경음이나 해설의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다. 물론 음향을 활용한 실험적 시도가 부재했던 것은 아니나,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행보는 전시 문법의 근본적인 변화를 시사한다. ‘사유의 방’은 반가사유상 두 점만을 덩그러니 둔 채 역사적 텍스트를 배제하고, 그 빈 공간을 소리(관람객의 발소리, 말소리 등)와 여백으로 채웠다. 에밀레종 전시가 그러했듯, 이제 전시는 시각을 넘어 청각과 촉각 등 감각 전반에 호소하는 ‘몰입형 경험’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한다. 가상 전시와 사운드 디자인의 결합은 음향을 전시의 보조가 아닌 중심으로 격상시켰다. 동시대 작가들은 시각 매체의 한계를 넘어 음향, 디지털 기술, 공간, 퍼포먼스를 융합하며 작품 세계를 확장 중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천문화원의 《소리모음. Zip – 과천의 소리를 찾아서》는 인상적인 기획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진영기 교수(중앙대)가 총괄한 이 전시는 일상의 소리를 복합적이고 예술적인 도시 기록으로 승화시켰다. 시각적 자극에 익숙한 관람객에게 도시를 ‘청각’으로 재탄생시킨 신선한 시도였다.
특히 체험형 콘텐츠의 몰입감이 돋보였다. ‘목소리 경마장’에서는 목소리의 크기가 운동 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을 통해 소리의 파동과 과학적 원리를 직관적으로 체감하게 했다. 또한 ‘소리, 압축 해제’ 공간에서는 비가시적인 소리가 선과 형태로 시각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추상적 조형미를 선사했다. 전시의 백미인 ‘소리 아카이브’는 관람객을 수동적 청자에서 능동적 기록자로 전환시킨다. 내가 남긴 소리 기록이 ‘도시 변화 아카이브’의 일부가 된다는 메시지는 단순한 체험을 넘어 깊은 울림을 남겼다.
다만, 공간 음향 설계의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러 작품의 사운드가 한 공간에 혼재되면서 발생한 간섭 현상은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이었다.
김지경 어쿠스틱 디자이너의 의견으로, 이는 작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공간 조건의 한계에서 기인한다. 첫째, 반사음 제어의 부족이다. 다수의 음원이 공존하는 공간에서는 벽과 천장의 흡음 설계가 필수적이나, 이것이 충분치 않아 소리가 중첩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둘째, 스피커의 지향성 문제다. 좁은 범위에 명확한 소리를 전달하는 지향성 스피커 대신, 확산형 천장 스피커가 다수 배치되면서 소리 영역 침범이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음향적 구획(Zoning)의 부재다. 흡음 파티션 등을 활용해 물리적·음향적 공간을 분리했다면 작품 간 간섭을 최소화하고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소리를 통해 도시를 재발견하는 신선한 시도였으나, 동시에 정교한 공간 음향 설계라는 기술적 과제 또한 남겼다. 물리적 환경과 콘텐츠가 완벽하게 공명할 때, 청각을 포함한 멀티센서리(Multisensory) 전시가 관람객에게 선사할 몰입의 깊이는 어떠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