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오류

비정상적 비례의 매혹

by Divitia J



기억의 오류 속에서 만난, 비정상적인 비례의 매혹


서른둘, 홀로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직 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다는 목적 하나만을 품은 채였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대화를 나누다 문득 이런 말을 했다.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목이 긴 성모'를 참 좋아해요."


아차, 말에 자신감이 없다. 오르세 미술관은 인상주의 작품들로 이름 높은 곳이고, 내가 그토록 감탄했던 파르미자니노의 ‘목이 긴 성모’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었다. 혼자 떠난 여행에 잔뜩 겁을 먹었던 탓인지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그 시절의 기억은, 이처럼 시간이 흐르며 제멋대로 뒤섞여 있었다.


나의 확신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일까.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들춰본다. 파리에 일주일 남짓 머물던 시간, 루브르 박물관 주변을 달리는 활기찬 사람들, 그리고 오르세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다 맞닥뜨린 끝없는 시위 행렬. 대중교통이 마비되어 한 정거장 뒤에 무작정 내려야 했던 당혹감과 그 뒤로 어떻게 목적지까지 걸어갔는지조차 흐릿한 기억들. 총을 멘 채 이 열 종대로 늘어선 군인들의 위압적인 모습과 바나나 몇 개와 옷가지만 든 슈트케이스를 통째로 소매치기당해 망연자실해하던 어느 한국인 관광객의 얼굴만이 파편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렘브란트 생가를 찾았으나 기대보다 단출함에 실망했고, 정작 고흐 미술관은 발길이 닿지 못했다. 배 위에 마련된 숙소의 좁디좁은 화장실, 변기 바로 위에 샤워기가 달려 있던 생소한 환경도 기억난다. 사실 유럽은 내 취향의 여행지는 아니었다. 오로지 미술관과 박물관을 보겠다는 일념이 아니었다면 견디기 힘든 불편함이었다.


하지만 피렌체는 달랐다. 도시의 거리는 다정했고 우피치 미술관은 아름다웠다. 사기꾼들이 진을 치고 있던 바티칸이나, 이제는 다시 하기 힘든 판테온에서의 강렬한 경험—수많은 인파에 밀려 들어가 천장의 구멍(오쿨루스)을 한 번 올려다보고 나오던 그 순간—도 지금은 소중한 장면이 되었다.


지금도 아트페어나 프리즈(Frieze) 같은 대형 전시를 가면 모든 작품을 꼼꼼히 살피기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것 앞에만 발길을 멈추곤 한다. 그런 나에게 10년 전 유럽 여행이 남긴 유일하고도 강렬한 기억의 좌표는 결국 ‘목이 긴 성모’였다.


평소 구글의 고화질 사진과 상세한 해설이면 충분하다고, 굳이 사람들에 치여가며 실물을 볼 필요가 있겠냐며 허세 섞인 말을 내뱉곤 했다. 하지만 이 그림은 내 인생 최고의 작품 목록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물을 마주하는 순간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어떤 작품은 반드시 같은 공간에서 공기를 공유하며 호흡해야만 전해지는 감동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서서 한동안 발을 뗄 수 없었다. 압도적인 규모와 색채의 아름다움에 일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비정상적인 신체 비례, 현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바삭거리는 질감의 색감, 품에서 곧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누워있는 아기 예수, 그리고 공허함이 감도는 주변 인물들의 눈빛까지. 르네상스의 균열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그 기묘한 미학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기억은 왜곡되고 장소는 뒤섞였을지라도, 그 그림 앞에서 느꼈던 전율만큼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어딘가에 선명한 감각으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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