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없는 세상으로 가다
이 소설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에볼라가 화양이라는 도시에 퍼져 봉쇄된 상황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그린다. 카뮈의 『페스트』가 신을 원망하고 희망이 사라진 상황에서 분투한 의사의 실존주의적 소설이라면, 『28』은 신을 찾지 않는다. 신을 말하지도 않는다. 오직 인간의 지옥을 보여줄 뿐이다. 이란과 미국이 말하는 '지옥문을 열겠다'는 예언이 실현된 28일. 현실과 다르지 않다.
이야기의 힘이 나를 붙들었다. 간간이 매력적인 표현이 눈에 띄긴 했지만, 무엇보다 인물들의 서사 속으로 깊이 휘말려 들어갔다. 소설은 재형이라는 인물의 묘비명으로 끝을 맺는다. '인간이 없는 세상으로 가다.'
나는 링고의 복수가 성공하기를 바랐다. 스타를 죽인 한기준의 목을 뜯어버리는 것으로 끝을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동안 묘비명을 반복해서 읽다 보니, 한기준의 생존이야말로 무간지옥의 연장임을 알았다. 그는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던 이들의 영혼과 대화하며, 살아있지만 죽은 상태로 존재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끊임없이 되돌아온다.
살아있다는 것이 죽은 것보다 낫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죽음 이후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공존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죽어가는 과정이다. 영원한 삶은 과연 축복일까. 『프랑켄슈타인』에서 죽음 없는 존재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고통은 무한한 굴레로, 시지프스의 돌덩이처럼 계속된다. 그러나 한기준이 악인도, 재형이 선인도 아니다.
스타와 링고는 개다. 동물이다. 인간의 비루함과 물질성이 인간 본성의 약함과 비극성을 드러낼 때, 동물은 생명에 순수하고 존재에 충실하다. 그래서 인간의 눈에는 바보같아 보인다. 물론 인간의 기준에서 그러하다.
나의 멜루, 나의 강아지가 사라진 나의 세계에는 흉터가 남았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나는 멜루의 영혼과 함께 살아간다. 그 삶이 길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