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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Nov 02. 2017

#91.매일이 축제, 불가리아 여행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불가리아 #소피아 #부르가스

#서커스 #흑해 #2017년8월7일~10일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 동부에 위치한 불가리아 공화국>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라피티로 꾸며진 기차를 타고 유럽 동남부에 위치한 불가리아로 이동하는 날이다. 기차는 이른 아침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를 떠나 속이 터질 만큼 느릿느릿한 속도로 해바라기 밭 사이를 달렸다. 대지를 덮은 노오란 꽃들은 작렬하는 태양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너무 버거워 얼굴을 돌려야만 했던 것일까. 늘 해만 바라보고 살 것 같았던 해바라기의 뜻밖의 행동에 이런저런 상상들이 따라붙는다.

<뿌연 창밖으로 노란 해바라기 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고요한 사색이 얼마간 이어질 때쯤 우연히 우리 옆에 앉은 독일인 할아버지와 긴 대화가 시작되었다. 올해 64세가 되신 할아버지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으시고 여행을 즐기며 살고 계신다고 하셨다. 젊은 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다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모든 것을 놓고 첫 여행을 가셨던 것이 시작이었다고. 책임질 가정이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외로움을 치러야 했다는 말을 남기셨다. 해바라기를 보며 사색에 잠길 때보다 내 안에 더 깊은 파도가 일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늘 선택지를 준다. 복수 선택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답도 없다. 단지 하나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가져올 무수한 경우의 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뿐이다. 그 수 안에는 행복과 기쁨도 있고 아픔과 좌절도 있다. 우린 그 어떤 것도 예상할 수 없지만 오늘도 용감하게 무언가를 선택해 삶을 이루어 나간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이다.

<독일 할아버지와 함께한 기차 만담.>

 할아버지는 여행과 독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간이역이 있는 작은 마을에 내리셨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에는 제각각의 이야기를 담은 삶의 흔적들이 훈장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기차는 다시 느릿느릿 길을 나섰다.  우리는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해바라기 밭을 바라보았다. 사색하기 딱 좋은 시간과 공간이었지만 소피아에 너무 늦게 도착할 것이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창고를 급하게 치워 준 듯한 느낌이 물씬나는 대타 숙소>

 그리고 우리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예약해 둔 호스텔로 찾아갔지만 도무지 입구가 어딘지 찾을 수가 없었다.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물어도 모르겠다는 말 뿐이고. 어쩔 수 없이 온몸의 촉이란 촉은 다 발동을 시킨 뒤 구글이 알려준 위치 근처를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뭔가 찌릿 느낌이 오는 어두운 골목 하나를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낡은 문 앞에 아주 작게 호스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촉 살아있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호스텔에서 우리는 날벼락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너희 예약이 취소됐단다. 언제 체크인할 것인지 묻는 메일을 여러 번 보냈는데 답장이 없어서 말이야.


 도착 시간을 알리지 않았다고 예약을 취소하는 호스텔은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우선은 사실 확인을 위해 와이파이를 잡아 그들이 보냈다는 메일을 확인해 보았다. 아, 세 번이나 보냈었구나. 어쨌든 내가 메일을 보지 않은 탓에 벌어진 일이었으니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자정이 다되어 가는 이 시간에 안전하게 잠을 청할 곳이 필요했다. 호스텔에 계신 아주머니가 주인과 전화 연결을 시켜 주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근방에 있는 다른 숙소에 묵을 수 있도록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안내받은 방은 30유로라는 가격에 비해 쾌적하지는 않았지만 깔끔했고 화장실에 뜨거운 물도 잘 나왔다. 무엇보다 길에서 자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맨왼쪽에 보이는 작은 간판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 우리는 다시 짐을 들고 예약이 취소되었던 호스텔로 갔다. 어제 주인과 통화 시 예약한 이틀 중 나머지 하루는 묵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는 길에 혹시나 이 호스텔을 찾아오려는 다른 여행객들을 위해 입구 사진을 찍어 두었다. 호스텔의 이름은 '헬로 소피아 호스텔&게스트하우스 Hello Sofia Hostel&Guesthouse'이다. 구글이 알려준 곳쯤으로 가면 왼쪽에서 첫 번째 사진 같은 작은 간판이 달린 골목이 나타난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연습장 찢어서 만든 것 같은 작은 메모지가 보일 것이다. 이때 당황하지 말고 초인종을 누른 뒤 조금만 계단을 올라가면 누군가가 두꺼운 철문을 열고 나올 것이다. 후기에 보면 호스텔 사람들이 무뚝뚝하다고 쓰여있는데 나에게는 친절했다. 원래 러시아 근처 나라 사람들이 다 츤데레라는 것을 이미 우크라이나를 통해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튼 이렇게 우리는 드. 디. 어. 헬로 소피아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게 되었다.   

<작지만 내실이 탄탄한 소피아의 한류 중심지>

 숙소에 짐을 내려 두고 점심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한식이 땡겨서 구글에 검색을 해보니 '컵 앤 롤 Cup&Roll'이라는 가게가 근처에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손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냥저냥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한식집 중에 하나구나 생각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가게 컨셉이 특이하다. 여기저기 한국 아이돌의 굿즈들이 진열되어 있고 모니터에는 뮤직비디오가 틀어져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투에니원 세트에 엑소 세트까지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린 그냥 불가리아에도 한류 바람이 불고 있나 보다 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학생들이 좋아하게끔 구성된 굿즈 코너.>

 컵밥 두 개에 컵라면 한 개를 시키고 12레바(약 7,600원)를 낸 뒤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사장님 부부가 들어오셨다.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범상치가 않다. 일단 지금은 방학이라 사람이 없는 것이지만 학기가 시작되면 근처 학교의 학생들이 200명 300명씩 우르르 몰려와 줄을 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푸드 페스티벌 같은 곳에 참가를 하셨는데 부스에 아이돌 음악을 틀어두니 애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어 그 앞에서 커버댄스를 추기 시작해 대박이 나셨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렇다. 우리가 그저 컨셉이 조금 특이한 한식집이구나 정도로만 여겼던 이 가게는 불가리아 한류의 성지였던 것이다.

<여기 애들은 컵라면을 한자리에서 5개씩 먹고 그런단다.>

 가게의 위치는 전략적으로 한국어 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학교의 앞으로 선정했고, 판매하는 음식 가격은 학생들이 사 먹을 수 있는 정도로 책정했다고 한다. 거기에 한창 불어오는 한류를 한 방울 떨어트렸더니 이런 결과가 찾아온 것이라고.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주 주말마다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현지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사장님 집에서 직접 문화 교류 교실들을 열고 계셨다. 요리도 함께 해보고 노래도 배워보고 영화도 같이 보면서 말이다. 이 문화 교실도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자리가 없어서 못 올 지경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갈 곳 없는 한국인 여행자들을 그냥 재워주시기도 한다고 한다. 이 정도면 한국 외교부에서 상이라도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활짝 핀 해바라기가 여름에 생기를 더해준다.>

 우연히 엄청난 분들을 만나 밥도 먹고 3시간 동안 신나게 수다도 떨다가 본격적으로 소피아 구경에 나섰다. 유럽은 어딜 가나 꽃가게들이 참 많다. 거리에도 마트에도 시장에도 신선한 꽃들이 항상 준비되어 있다. 이들의 삶에서 꽃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가 보다. 우리 집 남자는 1년에 한 번 사줄까 말까 한 그 꽃이 말이다. 그래도 사줄 때 흔한 붉은 장미를 가져다주지 않아서 참 좋았다. 첫 번째 꽃은 연애 때 받은 노란 해바라기였다. 4년의 연애 기간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꽃이었지만 그게 참 좋아서 잘 말려 꽃잎만 봉투에 넣어 보관해 두었다. 두 번째로 받은 파란색 안개꽃은 결혼하고 맞은 나의 첫 생일을 위한 것이었다. 그때 그는 연이은 야근으로 집에 이틀에 한 번 꼴로 들어오는 처지였다. 나는 그날 혼자서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봤다. 그리고 새벽 2시쯤이 되어서야 파란색 안개꽃과 함께 남편이 돌아왔다. 그는 아무리 물어도 그 늦은 밤 어떻게 꽃을 구했는지에 대해서 아직도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세 번째 꽃은 첫 결혼기념일에 받은 하얀 장미였다. 나는 그제야 파란 안개꽃을 정리하고 새로 받은 장미를 화장대 위에 올렸다. 10개월 만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받으려고 기다리는 것은 이제 그만해도 되겠구나. 나에게든 남에게든 받기 위해 기다리는 것보다 주기 위해 준비하는 삶이 더 행복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간단한 것을 배우는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기고기고기고기 예~!>

 이틀간의 짧았던 소피아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불가리아 동쪽 끝 흑해 연안에 위치한 부르가스로 이동을 했다.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오후 6시쯤 새로운 도시에 멈추어 섰다. 예약해둔 인도풍의 호스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번화가로 나왔다. 하루 종일 감자칩 따위에 의지해 이동했더니 저녁은 근사한 것으로 먹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래서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 무려 폭립과 해물 볶음밥을 시켰다. 생과일 에이드와 맥주 한잔도 함께 말이다. 이렇게 해서 가격은 32레바(약 2만 원)이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는 저렴한 축에 속하지만 장기 여행자의 식탁으로는 약간 과한감이 없지 않다. 그래도 오늘은 파티다. 예!

<해군 제복은 누가 입어도 멋진듯>

 오랜만에 고기를 뜯고 한껏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밖에 나오니 광장에서 해군 군악대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하얀 제복을 입고 각 잡힌 발걸음으로 대열을 바꿔가며 연주를 하는 모습이 참 멋있었다. 공연은 밝은 행진곡과 장엄한 추모곡들로 다채롭게 꾸며졌다. 연주가 끝난 뒤 부르가스 이곳저곳을 탐색하러 다니는데 벽에 붙은 포스터 하나가 나의 발을 붙들었다.

<오묘하고 기괴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커스 포스터.>

 오래된 영화에서나 봤을법한 서커스 포스터였다.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어 혹시나 학대의 현장은 아닐까 잠시 고민했지만 너무나도 이국적인 이 서커스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나다니다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일단 저장.

<흑해는 검지 않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다음날 아침 간밤에 너무 더웠던 호스텔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그늘이 넓게 조성된 공원으로 향했다. 한쪽에는 바다를 끼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푸르른 나무가 가득한 이 공원은 부르가스 주민들과 여행객들에게 아주 좋은 쉼터였다. 우리도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피하기 위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한참을 쉬다가 공원의 끝이 보이는 지점까지 걷고 또 걸었다.

<똑또로로똑똑. 두유 워너 빌 더 스노우맨♪>

 공원에는 중간중간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풀밭 위에는 호빗이 살 것 같은 작은 집 한 채도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 문을 두드렸다. 아무 기척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살짝 깨진 창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역시나 내부는 그냥 텅 빈 공간에 불과했다. 속은 비었지만 그래도 꼭 가보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던 뉴질랜드의 호빗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부르가스 숲 속에서 만난 서커스.>

 호빗 집을 보고 고향마을에 온듯한 기분에 취해 걷던 중 저 멀리 붉고 화려한 건물이 보였다. 오! 서커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눈앞에 나타나 주다니!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매표소가 있는 입구로 다가갔다. 가격은 자리마다 달랐지만 중간쯤 위치한 곳으로 1인 15레바(약 9,600원)를 내고 예약을 했다. 공연 시간은 저녁 7시 반.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시작 시간에 맞춰 다시 오기로 했다.

<말 한마디 없이 사람들을 웃게 해주던 멋쟁이 피에로.>

 공연은 화려한 옷을 입은 미녀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여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우리는 진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꼬맹이들 사이에 앉아 신나게 박수를 치며 피에로 아저씨의 꽁트를 지켜보았다. 탄탄한 몸매의 서커스 단원들이 펼치는 아크로바틱 공연도 아슬아슬하게 높은 사다리에 매달려 이리저리 묘기를 부리는 여자분도 모두 엄청났다. 아이들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놀라움으로 바라보았고 세상에 어떤 한계도 없을 것 같은 웃음으로 환영했다. 단원들의 연기도 아이들의 반응도 모두 순수한 열정 그 자체였다.   

<여러분은 지금 바람직한 서커스 단원들을 보고 계십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의 멋진 공연이 막을 내리고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거대한 낙타가 공연장 중앙에 등장했다. 사회자는 낙타를 가리키며 어떤 내용을 공지했고 사람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줄을 섰다. 낙타에 올라 타 사진을 찍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음. 동물은 안 나오고 끝날 줄 알았는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낙타에 오르내리며 여전히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여름밤 숲 속 영화관.>

 공연장을 나와 바다가 보이는 길을 따라 걸었다. 숙소까지 가려면 40분 정도를 걸어야 했지만 바다가 있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곳이 좋아 힘든 줄을 몰랐다. 공원 중앙쯤에서는 시민들을 위한 한여름 밤의 영화 상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분수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더해져 신비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낮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밤의 공원을 걷고 있었고 그로 인해 어떤 축제에 온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아니다. 나는 지금 분명한 축제 속에 있다. 서른한 해를 살며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부르가스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와있다는 것이,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 틈에 섞여 이 밤을 거닐고 있다는 것이, 모두 다 이 축제의 한 장면임에 분명하다. 이런 날은 삶을 여행 위로 옮겨 온 것에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이 여행이 끝난 뒤에도 일상을 지금과 같은 희열로 채울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피어오른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똑같은 양의 스트레스를 받는 삶 속에 다시 뛰어든다고 해도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삶을 요리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것이 마냥 아지랑이 속 세상은 아닐지 모른다. 그래서 제멋대로 피어오르는 기대를 그저 놔두기로 한다. 뭉게뭉게 피어 올라 나중 삶의 축제가 되어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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