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베오그라드요새 #제문올드시티
#아다비치 #2017년7월31일~8월6일
헝가리를 떠난 밤기차가 오랫동안 어둠 속을 달려 도착한 곳은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밤새 구겨질 대로 구겨졌던 온몸의 근육들을 한 번씩 쭉쭉 펴준 뒤 선반 위에 올려둔 짐을 끌어내려 내릴 준비를 마쳤다. 기차에서 도시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낯선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거리의 회색빛 건물들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각자의 의무에만 충실한 듯 보였고, 그걸 유독 의식하며 걷느라 내 발자국 곳곳에는 경계심이 잔뜩 들러붙었다. 낭만이 가득했던 부다페스트를 이제 막 떠나온 참이라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처음 만난 베오그라드는 나에게 그렇게 낯설고 어려운 존재였다.
이리저리 눈치를 봐가며 미리 캡처해 온 지도를 따라 더듬더듬 숙소를 찾아 나섰다. 우리가 예약한 호스텔의 이름은 '스윗 홈 스윗'. 이 도시가 말하는 스윗이 무엇일지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작은 기대를 안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4층에 위치해 있는 호스텔에 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는데, 멈춰 설 때 덜컹하고 살짝 내려앉는 효과가 있어 스릴 만점이었다. 아니 2만 점이었다.
묵직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선 호스텔 내부는 도시가 내뿜었던 첫인상과는 달리 매우 스윗했다. 은은한 조명과 폭신한 소파 그 앞에 놓인 벽난로까지. 마치 진짜 '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런 집에 처음 와본 사람처럼 두리번 대던 그때 리셉션 옆으로 난 작은 주방에서 연세 지긋하신 동양인 부부가 주인장 포스를 폴폴 풍기며 밖으로 나오셨다. 얼떨결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는데 또 우연찮게 '안녕하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세상에나. 60대 한국인 부부가 호스텔에 묵으신다니. 게다가 젊은 여행자들은 아직 침대 속인데, 두 분은 식사까지 마치고 벌써 하루를 시작하고 계셨다. 나중에 여쭤보니 은퇴하신 뒤 틈이 날 때마다 2~3개월씩 여행을 하신다고 했다. 이곳에 오시기 직전에는 30일 동안 스페인 순례자의 길을 걸으셨다고. 대단한 열정이다. 이제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시대가 왔나 보다.
노부부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은 우리는 리셉션에 짐을 맡기자마자 밖으로 나와 여행을 시작했다. 적막했던 도시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여행객들로 슬슬 붐벼 갔고 그들의 소란함 사이로 나의 음울했던 첫인상도 차츰 사라져 갔다. 역시 여행에 있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항상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이다.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직접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속단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죽을 때까지 공들여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베오그라드는 '하얀 도시'라는 뜻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온통 알록달록한 색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눈이 시릴정도로 파란 하늘 아래 붉은 우산이 골목 사이사이를 매우고 있었고 요새 앞 정원은 노오란 꽃들로 가득했다. 여름의 싱그러움이었다. 어떤 시인인가 소설가는 우리의 인생을 계절에 비유했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봄으로부터 초록이 무성한 젊음을 지나 무르익은 지혜의 시간을 건너 모든 것이 쇠잔해지는 겨울로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쯤에 와있을까. 육신의 시간이 비록 젊음에 머물러 있다고는 하나 잠시 이는 바람에도 파르르 흔들리는 이 마음은 과연 어디쯤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이 가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즐거우며 적당히 지혜로운 시간. 하지만 적당한 것은 항상 다다르기 어려운 곳에 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아직은 먼 가을을 그리워하는 요즘처럼 그렇게 나는 늘 가을이 그립다.
요새 앞마당에는 과거 전쟁에 사용되었던 무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지금은 차갑게 식어버린 이 고철들은 시대를 거쳐 착실하게 발전되어 온 보호와 파괴의 모순들이다. 수많은 나라들에게 돌아가며 지배를 당해야 했던 세르비아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스민 이 '칼레메그단 요새 Kalemegdan Fortress'에는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보여주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1차 2차 세계대전과 나토 폭격까지 견뎌낸 벽을 따라 천천히 요새 안으로 들어서면 저 멀리 사바강과 도나우강이 흐르는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나타난다. 부다페스트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도나우 강에 비장함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보느냐에 따라 이렇게 풍경이 달라진다. 분명 이 강은 하나의 줄기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 따라 때로는 낭만이 흐르고 때로는 비장이 흐른다. 정말이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하나도 틀린 구석이 없다.
이렇게 베오그라드에는 요새를 비롯해 가볼만한 곳이 참 많다. 하지만 한낮의 기온이 40도를 육박하는 이곳의 여름은 우리에게 밖으로 나갈 용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 머무르는 일주일 중 나들이를 나간 날은 겨우 사흘에 불과했다. 하루는 나가 돌아다니고 또 하루는 스윗 홈 스윗 호스텔의 포근한 소파에 오래된 스티커처럼 눌어붙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렇게 늘어진 날에도 꼭 한 가지 하는 것이 있었으니 세르비아 마트 구경이다. 호스텔 주방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해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날의 찬거리를 사러 하루에 한 번 꼴로 마트에 들렀는데 얼마나 싸고 좋은지 매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마트보다 더 엄청난 곳이 있다. 바로 시장이다. 빨간 속살이 먹음직스러운 수박 4분의 1통 가격이 40디나르(약 450원)이다. 정말 실화임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옥수수는 한 개에 10디나르(약 110원).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수박&옥수수 마니아가 이것을 놓칠 리 만무했다. 그는 이곳에서의 일주일 동안 천 원 한 장에 수박과 옥수수를 양손 가득 들고 집에 돌아올 수 있음에 행복해했다.
세상을 여행하며 얻게 된 가장 큰 깨달음은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실이었다. 시장에서 산 노란 옥수수에도, 평소에 보지 못했던 요상한 색깔의 비둘기를 만난 순간에도, 낯선 이가 잡아준 문에도 행복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행복은 어느 순간에나 있다. 다만 그동안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그것은 지독한 스트레스 때문이었고, 삶이 너무 무거워서였고, 가도 가도 앞이 보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행복을 느끼기에 너무나 두터운 벽 안에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행복을 느끼는 일은 아주 간단했다. 그냥 마음속 스위치를 OFF에서 ON으로 딸깍하고 움직여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마음먹은 순간 나는 세상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쉬운 일이 여행을 떠나 오기 전에는 왜 그렇게 어려웠나 모른다. 아마도 '행복'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지 말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이 여행을 통해 나는 그동안 부족했던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얻고 있다. 천천히 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온전한 시간. 나는 이런 시간이 참으로 필요했었나 보다.
스윗 홈 스윗의 마약 같은 소파에 누워 여느 때처럼 소파 밖은 위험해를 시전 하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를 가진 호스텔 직원이 오늘은 어디 안 나가냐고 엄청난 질문을 해왔다. 우리는 곧 액체로 변할 것 같은 나른함으로 계획이 없다고 대답을 했다. 그녀는 세상 게으름뱅이들에게 광명을 찾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근처에 좋은 곳이 있다며 '아다 비치 Ada Beach'를 소개해 주었다. 바다도 없는 이곳에 웬 해변이 있나 싶었는데 찾아보니 강변에 모래사장을 조성해 좋고 수영도 하고 일광욕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신기하다. 끌린다. 가자!
사람들로 북적이는 여름의 강변은 전해 들은 것보다 훨씬 핫했다. 강을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들은 앞다투어 좋은 몫에 파라솔과 테이블을 설치해 두고 손님을 받았다. 우리도 어슬렁어슬렁 좋은 자리를 물색하다 강과 맞닿아 있는 테이블에 터를 잡았다. 수영복으로 옷을 갈아 입고 남편과 강으로 뛰어들어 시원하게 수영도 했다. 물은 아주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았으나 어딘가에서 떠내려온 물풀과 나뭇가지들이 조금 거슬렸다. 그래도 물속에 있으니 이글이글 타오르는 40도의 더위가 조금은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10분 만에 수영을 끝내고 파라솔 밑 소파에 누워 미드를 봤다. 남편은 안전 레일을 벗어나 멀리까지 헤엄을 쳤는데 안전요원이 휘리릭 하고 호루라기를 불어 경고를 주었다.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남편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 없다가 자신한테만 경고를 준 빨간 빤스 안전요원이 밉다고 했다. 이런 것도 인종차별인가 싶다.
아다 비치에 다녀오고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옆 방에 묵고 있던 중국인 여자분이 액체 괴물처럼 늘어져 있는 우릴 보더니 '제문 올드시티 Zemun Old City'에 가보라며 추천을 해주었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던 곳이었는데 추천까지 받은 마당에 안 가볼 수 없어 깨끗하게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 가는 길에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오늘이 베오그라드의 마지막 날이다. 세상에나. 호스텔이 지나치게 편하다 보니 이런 일도 일어난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깨우치게 되어 다행이다. 이름 모를 중국인 여행자여 고맙소.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찾아가게 된 '제문 올드시티 Zemun Old City'는 호스텔이 위치한 베오그라드 번화가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곳이었다. 골목 안 집들은 제각각 따듯한 색을 품은 채 서로에게 기대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오랜 시간 마차와 사람이 지난 흔적으로 반들반들해진 돌길은 거리에 포근함을 더해주었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 경사가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가니 '가르도스 타워 Gardos Tower'가 늠름한 모습으로 우릴 맞아 주었다. 이 탑에 올라가 온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는 탑 뒤로 난 작은 샛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탑을 등지고 내려다본 올드시티의 붉은 지붕이 사랑스럽다. 얼마 전 요새에서 봤던 비장한 도나우강은 어느새 사랑스러운 마을을 따라 흐르는 평화로운 강으로 변해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아득함 마저 드는 이 도시를 나는 왜 이렇게 늦게 찾아온 것인가. 오늘도 배워가는 한 가지, 인생사 모든 것이 타이밍이다.
탑 뒤로 난 작은 샛길 계단을 따라 쪼르륵 내려오면 곳곳에 숨어있는 사랑스러움을 대거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 내가 공들여 살펴본 것은 문이었다. 나중에 나에게 집이 생긴다면 다른 것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지만 문 하나만은 아주 신중하게 고를 생각이다. 문은 집으로 돌아온 이를 가장 먼저 맞이해 주며 집 밖으로 나가려는 이를 가장 마지막까지 배웅해 준다. 이렇게 살면서 집과 가장 많이 눈을 맞추게 될 부분이 바로 문인 것이다. 때문에 오래될수록 시간 흔적이 깊어지는 나무 소재의 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과 녹음으로 장식된 오래된 이 도시의 문처럼 말이다.
구석구석 모든 것이 좋았던 제문의 골목을 벗어나 다시 번화가로 돌아와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을 시작했다. 메뉴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지만 마지막 날이니 호스텔 주방을 벗어나자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거리로 나서 아무 곳에나 가려했지만 이번에는 트립어드바이저의 추천을 따라 보기로 했다. 마침 높은 순위의 레스토랑이 집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살짝 늦은 저녁임에도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가까스로 빈자리를 찾았고 앉자마자 660g짜리 고기 세트 한 접시와 이 집의 자랑이라는 수제 맥주 두 잔을 시켰다. 맥주는 두툼하고 투박한 잔에 담겨 나와 마치 바이킹이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고기 세트는 돼지, 소, 소시지, 베이컨까지 다양한 고기들이 알맞은 정도로 구워져 나왔으며 감자튀김이 곁들여져 있었다. 한근이 넘은 고기를 둘이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거짓말처럼 접시가 싹싹 비워졌다. 위대한 사람들.
베오그라드에서의 일주일은 최선을 다해 게을렀고 열정적으로 나태했지만 어쩐지 평소보다 더 많은 것을 한 듯한 착각이 드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호스텔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어 태평가를 읊조렸던 시간에 비해 사진이 많이 남았다는 점도 미스터리 하다. 낯설다고 속단했던 그 순간이 민망할 정도로 지나치게 편안하고 익숙했던, 나에게만은 게을렀던 그 도시.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서울로 돌아가면 더 많이 그리울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이겠지. 그래 기분 탓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