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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Nov 08. 2017

#93.여행자의 먹픽쳐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불가리아 #네세바르

#요리대첩 #밀떡만들기

#세계여행요리 #먹픽쳐


식욕의 크기는

여행 기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순대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보쌈이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김수미의 간장게장처럼

사정없이 쌀밥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쓱 소리를 내며, 쓱싹 소리를 내며


아밀라아제가

입에서 명치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공복이었다.


-사랑의 물리학 패러디 '한식의 물리학'


<구글에서 퍼 온 순대국 사진. 침이 진자 운동을 시작한다.>

세계여행을 다니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 우리는 그 시간들을 대부분 인생이나 행복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것들로 채워간다. 하지만 그런 고차원적인 것이 차지하는 비율은 딱 3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70%는 '목적지까지는 어떻게 갈까, 오늘은 어디에서 잘까, 저녁으로는 무엇을 먹을까'와 같은 본능 지향적인 것들로 채워진다. 그중에서도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이 바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이다.

<소피아 컵앤롤에서 고추장 득템>

장기 여행자들은 늘 한식이 고프다. 그래서 늘 '~이/가 먹고 싶다'라는 문장을 입에 달고 다닌다. 저 문장의 주어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맛있는 음식들이 모두 들어갈 수 있다. 칼칼하면서도 담백한 국물이 예술인 찌개들과 단짠단짠의 대명사 분식들 그리고 윤기 좔좔 흐르는 삼겹살까지 모든 것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빵, 피자, 스파게티. 그게 못 견디겠는 날은 한국에서 공수해온 라면 스프에 현지 라면 면발을 넣어 먹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우리는 조금씩 빅픽쳐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먹픽쳐를 그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모든 요리가 연성 될 작지만 알찬 주방>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고추장 한 통을 구입하는 일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모든 한식을 연성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품 안에 고추장 통을 고이 품고 꿈이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음에 행복해했다. 그리고 작은 주방이 딸린 네세바르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동안 정교하게 그려온 먹픽쳐를 하나 둘 실현하기에 이른다.

<부실한 장비로도 할 건 다한다.>

본격적인 먹픽쳐 실현에 앞서 주방의 장비들을 둘러보았다. 뚜껑이 없는 2개의 냄비와 코팅이 벗겨질랑 말랑한 프라이팬 하나 그리고 몇 개의 밥그릇과 접시가 눈에 띈다. 칼은 아기용인가. 평소에 보던 과도보다 더 작은 데다 윗부분에 이도 나가 있다. 하지만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지. 훗.

<때깔 고운 부대찌개. 입천장 데는 것은 숙명이다.>

비교적 작은 냄비에 밥을 올리고 김이 날아가지 않도록 두터운 접시 하나를 덮는다. 뚜껑 대용이다. 남은 하나의 냄비에는 마트에서 사 온 소시지와 배추를 차곡차곡 넣는다. 그리고 백선생의 레시피에 따라 간장+고춧가루+고추장+다진 마늘+후춧가루를 섞어 만든 양념을 재료 위에 잘 올려준 뒤 물을 붓고 끓인다. 한 풀 고집이 꺾인 재료들이 국물과 하나가 되려는 순간 따로 살짝 익혀 둔 라면 면발을 넣고 화룡점정으로 치즈 두장을 잘 찢어 얹으면 끝. 그 이름도 찬란한 부대찌개의 탄생이다. 찌개가 완성되는 동안 작은 냄비에서도 어느새 고소한 밥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짝이 맞지 않는 그릇에 김이 나는 쌀밥을 각자의 양만큼 덜어 담고 냄비채 오른 부대찌개에 숟가락을 담근다. 입안 가득 차오르는 오동통한 소시지와 얼큰한 국물의 뜨거움. 우리는 혓바닥이 홀라당 데이는 줄도 모르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밥을 두 그릇씩이나 비운다. 치즈를 무려 네 장이나 넣었다는 사실에 조금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오늘만큼은 염치 따위 냉동실 구석에 넣어둬 본다.

<잘익은 목살의 영롱한 고동빛이 사랑스럽지 않은가.>

다음은 소리부터 침샘 폭발하는 메뉴 목살 되시겠다. 치이익 치이익. 불판에 오른 선홍빛의 고기가 육즙미를 뽐내며 익어가는 모습은 흡사 가을볕에 곡식이 익어가는 풍요로움과 같다. 아쉽지 않게 한 근을 모두 구워 흰 접시에 올리고 한 켠에 소피아로부터 고이 모셔온 고추장을 인심 좋은 식당 이모님처럼 크게 한 스푼 떠서 곁들여 낸다. 흐르는 물에 씻은 배추 잎과 채 썬 양상추까지 함께 식탁에 올리면 그때서야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뽀얀 흰쌀밥. 자, 준비는 끝이 났다. 첫 입은 클래식하게 김 나는 밥 한술에 잘 익은 목살 한 점을 얹어 고유의 풍미를 느껴본다. 다음은 물기 머금은 배추 잎을 반으로 뚝 잘라 밥과 고기와 장을 올려 한 입 가득 넣는다. 이게 바로 세미 클래식이다. 그리고 이다음부터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밥그릇은 비어 있었고 고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배추 잎이 담겨 있던 접시에는 물기만이 아련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지려던 순간 입가에서 알싸한 맛이 느껴졌다. 고추장이었다.

<사실 이렇게만 먹어도 감지덕지한 여행자의 일상.>

성대한 고기 잔치 다음날은 남은 밥을 누룽지로 연성한 뒤 계란옷 곱게 입힌 소시지를 반찬 삼아 식사를 한다. 불가리아 네세바르 슈퍼에는 작은 아시아 식품 코너가 조성되어 있는데 그곳의 히트 상품은 단연 인스턴트 미역국이다. 낱개 포장되어 있는 가루와 건더기를 그릇에 넣고 물만 부으면 국이 되기 때문에 엄청 간단하다. 맛도 꽤 괜찮은 편이어서 6개 들이 한 봉지 사서 지내는 동안 잘 먹었다.

<입맛 없을 때 비빔라면을 먹으면 10년치 입맛이 돌아옴.>

상큼한 것이 먹고 싶은 날은 남편이 소매를 걷어 부친다. 상상만으로도 신침이 나오는 비빔라면이다. 한국에서는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면 완성되는 제품을 어딜 가나 살 수 있지만 여기에는 없기 때문에 직접 소스를 제조해 비벼 먹어야 한다. 소스 제조법은 아주 간단하다. 고추장+고춧가루+식초+설탕+간 마늘+쪽파+물을 적당히 섞어주면 입맛을 돋우는 맛있는 소스가 완성된다. 하지만 이 요리의 핵심은 따로 있다. 면을 삶은 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물로 재빠르게 헹궈주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된 면에 소스를 넣고 기존대로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면 팔도 뺨치는 비빔 라면이 완성된다. 마트에서 구한 만두도 곁들여주면 금상첨화. 오늘도 먹깨비들의 평화로운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간다.

<제발 먹기 전에 찍자.>

한식 하면 빠질 수 없는 재료는 바로 닭느님. 맛초킹처럼 맛있는 치킨은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흔히 말하는 후라이드 치킨은 외국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닭느님으로 닭볶음탕을 만들기로 한다. 우선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 닭을 끓는 물에 살짝 삶은 뒤 물은 버리고 고기 표면에 칼집을 내준다. 닭이 들어 있는 냄비에 다시 한번 물을 자작하게 부어주고 설탕을 세 스푼 정도 넣어준다. 이 설탕이 감칠맛을 이끌어낼 중요한 필살기라고 백선생이 말했다. 그의 레시피는 항상 옳으니 건강이 염려되어도 따르기로 한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감자와 당근같이 단단한 재료들을 넣어준다. 그다음 양파랑 다진 마늘을 넣고 간이 될 간장과 고춧가루를 투하. 양념은 닭과 야채 양이 매번 달라서 항상 먹어보며 가감한다. 내 입에 맛있을 때까지 끝없이 펼쳐지는 밀당. 간 맞추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백선생은 마지막으로 고추나 파 같은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라고 하지만 그런 예쁜 것은 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그냥 먹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아, 사진'이라는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오고 결국 기록에는 이렇게 전투적으로 먹은 흔적이 역력한 사진만 남게 되는 것이다. 주변에 그릇 치우고 깨끗하게 찍으면 모를 줄 알았겠지만 다 티 난다.

<딱 봐도 맛없을 것 같은 포스가 좔좔.>

하루는 마트에 갔다가 소시지와 햄버거 패티용 고기 세트를 한 팩 사게 되었다. 집에 와서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구워 빵 사이에 꼈는데 음.. 너무 맛이 없다. 그래도 버리기는 아까우니 급하게 고추장을 넣어 억지로 해치워 버린다. 이날의 교훈은 '배고픈 상태로 마트에 가지 말자'였다. 원래 배가 고프면 뭐든 담고 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싶다면 식욕보다 이성이 앞설 때 마트에 가자. 사실 그런 날이 며칠 안되기 때문에 실천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함정.

<그리움 맛이 나는 엄마표 피자의 아류작.>

여행자가 아닐 때도 이랬나 싶을 정도로 네세바르에서 지내는 동안은 늘 배가 고팠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저녁이 오기까지의 시간을 못 견뎌 가끔은 이렇게 초간단 피자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마트에서 산 또띠아 한 장을 약한 불에 달군 프라이팬에 올리고 그 위에 스파게티용 토마토소스를 바른다. 그리고 소시지와 치즈를 올린 뒤 뚜껑을 덮어 준다. 버섯이나 파프리카가 있다면 함께 넣어줘도 좋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를 기다리면 치즈가 뭉근하게 녹아내려 재료들 사이사이로 스며든 초간단 피자를 먹을 수 있다. 사실 이 피자는 우리 엄마의 특별 레시피에서 나온 아류작이다. 어릴 적 시험이 끝나는 날이나 방학이 시작되는 날 같이 나름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날 엄마는 직접 밀가루를 반죽해 얇게 피자 도우를 만드셨다. 프라이팬에 도우를 잘 구운 뒤 간 돼지고기와 다진 양파를 케첩에 볶아 만든 소스를 도우에 바르고 그 당시 가장 맛있었던 목우촌 햄을 얇게 썰어 그 위에 얹는다. 그리고 피자 치즈를 듬뿍 올려 녹여주면 사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엄마표 피자가 완성되는 것이다. 어릴 땐 그게 어찌나 맛있던지 앉은자리에서 세 판씩 먹고 그랬다. 이제는 시집을 간 서른한 살의 딸이지만 가끔은 친정에 가서 그 피자를 만들어 달라고 조른다. 그러면 엄마는 귀찮지만 즐거운 얼굴로 피자를 만드신다. 예전처럼 도우를 직접 만드는 대신 마트에서 산 또띠아를 쓰시지만 내가 만들 때와는 다르게 그리움 같은 특별한 맛이 난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이 피자는 특별한 날 먹는 특별한 음식이다.

<밀가루에 끓는 물을 부어 익반죽을 한다. 태어나서 이런거 처음해봄.>

그동안 먹지 못했던 다양한 한식들을 하나둘 섭렵해 가며 행복에 겨워야 할 어느 날 나는 병이 들고 말았다. 배탈도 두통도 감기도 아닌 떡볶이 병이었다. 매콤하고 달콤하면서도 쫄깃한 떡볶이. 라면 사리를 넣으면 더 맛있는 내 사랑 떡볶이는 떡 자체를 구할 수 없는 불가리아의 척박한(?) 환경 속에 병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병세는 깊어 갔고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떡볶이를 먹을 수 있을까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떡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명제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스스로와의 대화를 통해 귀한 깨달음을 얻는다.


자아: 떡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 쌀과 밀에서 온다.

자아: 쌀과 밀을 어떻게 하면 떡이 되는가?

나: 가루로 만들어 반죽을 한다.

자아: 지금 가진 쌀은 가루인가?

나: 아니다

자아: 지금 가진 밀은 가루인가?

나: 그렇다.

자아: 밀은 어디에 있는가?

나: 부엌에 있다.

자아: 뭘 망설이는가?


<떡볶이 제조 공정. 레알 손수 만든 떡복이 떡.>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나와 같이 외국에서 떡볶이가 먹고 싶어 밀떡을 제조한 덕후들이 있었다. 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을 한 뒤 내 팔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까지 반죽을 주무른다. 많이 주무를수록 쫄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기에. 그리고 봉지에 잘 싸서 냉장고에 3시간 동안 넣어 둔다. 1시간이 1년인 것과 같은 기다림이 끝나면 반죽을 적당히 떼어 가래떡처럼 길쭉하게 만든다. 그리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건져낸다. 다시 냉장고에 넣어 식기를 기다리면 놀랍게도 시중에 판매하고 있는 것과 흡사한 모습의 밀떡을 만나볼 수 있게 된다. 밀려오는 감동. 또르르.

<라볶이는 나에게 맛도 주고 가르침도 주었다.>

나는 그렇게 연성된 떡을 가지고 오매불망 바라던 라볶이를 해 먹었다. 계란도 두 개나 삶아 올리고 말이다. 비록 어묵은 없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맛이었다. 그리고 이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도 설레고 재미있었다. 비록 먹고자 하는 식욕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이 사건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동안 내가 느꼈던 수많은 결핍들은 모두 스스로 채울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채워주길 바라고 세상이 바뀌어서 그 공간이 메워지길 바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바라고 원하면 스스로 그 길을 찾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 힘이 자라나 떡보다 더 멋진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말이다.

<왼쪽부터 비빔만두, 참치 김밥, 감자조림>

떡볶이로 정점을 찍고 난 이후 재료는 부실했지만 맛은 좋았던 참치 마요 김밥과 비빔만두 그리고 간장게장 못지않게 밥 도둑인 매콤 감자조림까지 만들었다. 지난 2주 동안 화려한 한식 먹픽쳐를 위해 한 통의 고추장과 두 통의 간장 그리고 한 팩의 고춧가루가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 그 덕에 우리는 나날이 살이 쪄갔고 무거워진 몸을 가누기 위해 집 앞 바다에 나가 파워 수영을 해야 했다. 그래도 세상을 떠돈지 반년 만에 마음 편하게 푹 쉬고 푹 먹고 푹 잘만 한 이곳을 발견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한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먼 길 떠도는 우리에게 좋은 휴게소가 되어준 네세바르. 앞으로의 반년도 너로인해 파이팅 넘치게 다닐 수 있겠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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