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인도 #아그라 #타지마할 #자이푸르
#신고식 #2017년5월18일~23일
새벽 기차를 타고 아그라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뉴델리역으로 향했다. 역은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각종 장사꾼들이 따라붙는다. 이럴 때는 빨리 걸어주면 된다. 인도 사람들은 뛰는 것을 싫어하니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들과 멀어질 수 있다. 대신 따라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 계속 뛰어야 하는 것과 내가 땀 투성이가 된다는 단점이 있다. 단점이 엄청 크네.
어찌 되었든 역 앞에 도착해 짐 검사를 하는 곳에 줄을 섰는데 직원 포스를 풍기는 인도 아재 한 명이 티켓을 보여달란다. 나는 분명 블로그와 책자를 통해 기차표를 보여주면 안 된다는 글을 수도 없이 읽고 또 읽었었다. 하지만 뭐에 홀렸는지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표를 꺼내 주고 말았다. 아재는 더 자연스럽게 기차가 엄청나게 연착이 되었으니 저쪽으로 가서 표를 다시 사라고 한다. 그 순간 '아, 이게 바로 그 유명한 기차표 사기구나!'하고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와중에 남편은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재를 따라가려 했다. 안돼 남편! 나는 재빨리 아재 손에서 표를 뺏어 가방에 도로 넣고 '연착된거 알아. 그래서 기다리려고'라고 말했다. 다행히도 아재는 더 이상 치근대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보통 저렴이 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은 기차도 저렴이 칸을 많이 이용한다. 그러면 인도 서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경험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도둑이나 사기 또는 신변의 위험이 느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우린 그냥 안전한 에어컨 있는 3등석 정도를 예약했다. 가격은 1인당 640루피(약 11,500원). 이곳에 타는 인도인들은 나름 경제적 능력이 있는 축에 속하기 때문에 여행자가 타도 신기해하거나 쳐다보지 않는다. 뉴델리에서 너무 많이 구경을 당해서 그런 환경이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고속 열차여서 아그라까지 소요된 시간은 딱 2시간. 연착이 심하기로 유명한 인도 기차였지만 왠지 모르게 정각에 출발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거기에 인도 타임즈 신문이랑 간식도 주고 간단한 아침까지 차려주는 엄청난 서비스에 또 한 번 깜짝.
아그라에서 이틀간 묵은 숙소의 가장 큰 장점은 옥상에서 타지마할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우리 방에서는 커튼만 걷으면 타지마할을 볼 수 있다. 굿. 하지만 이 좋은 환경을 맘 편히 즐길 수 없는 엄청난 복병이 숨어 있었으니 바로바로 물갈이 되시겠다.
일단 나는 뉴델리 마지막 날 팔다리에 원인불명의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그리고 아그라에 도착해 식사를 했는데 먼저 남편에게 복통과 설사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같은 음식들을 먹은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우리 둘은 콤보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도 타지마할을 보겠다고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금요일은 타지마할이 문을 닫으니 목요일인 오늘 꼭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타지마할에 가까워질수록 사기 냄새를 폴폴 풍기며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따라붙는다. 살짝 신경이 날카로워졌지만 모두 가볍게 무시해준 뒤 1000루피(약 18,000원)라는 어마어마한 입장료를 내고 타지마할에 들어갔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타지마할은 소문대로 굉장히 아름답고 엄청나게 사치스러웠다. 이게 무덤이라니. 전해오는 말로는 타지마할 뒤에 있는 자무나 강 건너편에 이것과 똑같이 생긴 건물을 검은색으로 하나 더 짓고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고. 하얀 타지마할은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해, 검은 타지마할은 왕 샤 자한 본인을 위한 것으로 말이다. 아마도 왕의 계획대로 두 개의 타지마할이 지어졌으면 입장료가 10,000루피는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전 세계에서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세기의 러브스토리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늘 하나 없는 타지마할은 뜨거운 태양 아래 그 화려함을 마음껏 뽐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매일 2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22년간 흘린 피와 땀이 있다. 왕비를 향한 애달픈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그저 아름답게 바라봐주기에는 참 씁쓸한 역사인 것이다. 당시 왕은 무굴 제국을 비롯한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의 건축가와 기술자들을 모두 불러 모았고, 터키, 티베트, 미얀마, 이집트, 중국 등지에서 각종 보석들을 수입했다. 그렇게 국고를 탈탈 털어 먹다가 결국 아들 아우랑제브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타지마할에서 2km 떨어진 아그라 요새에 갇혀 말년을 보낸 샤 자한. 타지마할은 그의 인생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인 동시에 오명인 셈인 것이다.
아그라에서의 이틀을 설사와 복통으로 지새운 뒤 사쿠라 호텔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자이푸르로 향했다. 자이푸르는 라자스탄이라는 주에 속해 있는데, 라자스탄은 버스 노선이 잘 구축되어 있어서 아주 편하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이 인도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버스요금이 다르다. 항상 여자는 남자보다 한 20% 정도 할인된 가격을 받는다. 왜냐고 물어도 그냥 그렇다고만 말한다.
인도의 버스는 구조가 특이하다. 마치 2층 침대를 연상케 하는 구조인데, 아래층은 의자고 위층은 침대다. 우리는 아래 앉았는데 낡아 보이는 것 치고는 좌석이 아주 편안했다.
하지만 나는 배가 너무 아팠다. 계속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간간히 통증이 왔다가 30초 지나면 사라지기를 반복하니 더 신경이 쓰였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차장 아저씨가 엄청난 꺽기 기술을 곁들이 인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그것도 다섯 곡이 연속으로ㅎ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아저씨 덕에 즐거운 마음으로 자이푸르까지 갈 수 있었다. 감사해요!
도착하자마자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검색해둔 'SDMH Hospital'이라는 대형 사립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토요일이라 내과 의사들이 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게 함정. 멘탈이 반쯤 나간 상태로 멍하니 서있었더니 직원들이 응급실로 가라며 안내를 해주었다. 다행히도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응급실 침대 하나에 앉았다. 레지던트 의사들이 와서 손가락에 바이탈기를 연결해주고 혈압을 쟀다. 음. 그냥 배아픈건데 너무 극진한 거 같아 조금 민망해졌다. 한국 같았으면 증상 말하고 배 몇 번 눌러보고 3분 만에 진료 끝이었을 텐데, 내가 신기했는지 5명의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날 보러 왔다. 그래서 난 몸에 두드러기가 난 경위와 하루에 설사를 몇 번 하는지를 여러 번 설명해야 했다. 조금 부담스러웠던 진료가 끝나고 수납을 한 뒤 약을 받으러 갔다. 진료비는 450루피(약 8,100원). 약은 간단하게 딱 네 번 먹을 양만 주었다. 하지만 효과가 킹왕짱 끝내줬다. 같은 증상인 남편과 반씩 나눠 각자 딱 두 번씩 먹으니 두드러기, 복통, 설사가 모두 가라 앉기 시작했다. 정말 천만 다행이었다.
한바탕 병환을 이겨내고 우리는 다시 여행자의 초심을 찾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녔다. 우선 인도하면 춤과 노래로 버무려진 발리우드 영화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규모가 크기로 유명한 '라즈 만디르 극장'을 찾아갔다.
단관 극장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당시 가장 흥행하고 있는 '하프 걸프렌드'라는 로맨스 영화를 보게 되었다. 주인공 여자는 엄청나게 예뻤고 그런 그녀가 스크린에 나타나면 남자 관객들은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키스신이나 베드신이 나오던 순간이 최고조였던 것 같다. 사실 우린 춤과 노래가 나오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벌떡 일어나 다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는 춤이 1도 나오지 않았다. 미친척 일어나 그들과 함께 춤을 출 마음의 준비까지 마치고 왔던 터라 남편과 나는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음엔 10분에 한 번씩 춤 추는 흥겨운 영화를 볼 수 있길!
이 여세를 몰아 다음날은 라자스탄 관광청에서 운영하는 일일 투어에 참여했다. 신청은 자이푸르역 내에 관광 안내소에서 하면 되고 가격은 1인당 350루피(6,300원)로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현지인 여행객 20명 정도와 함께 팀을 이루어 에어컨 없는 버스를 타고 도시 탐험를 시작했다. 시작은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첫 번째로 '락쉬미 나라얀 만디르 사원'을 구경한 뒤 내가 꼭 보고 싶었던 바람의 궁전 '하와 마할'을 보러 가는데 가이드가 '하와 마할입니다. 창문으로만 보고 지나갈게요.'라는 것이었다. 맙소사. 이게 뭐지. 심지어 내가 앉은 쪽에서는 건물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도 참을 수 있었다.
다음 코스는 과거 천문대로 쓰였던 '잔타르 만타르'. 여기는 사전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가이드 설명이 중요했는데, 이 사람 자꾸 힌디어로만 설명을 한다. 영어로 말해달라고 해도 그때뿐. 슬슬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역시 이번에도 참고 다음 장소인 시티 팰리스로 이동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는데 이번에는 1인당 500루피(9,000원)로 현지인들보다 5배나 더 비싸다. 인도는 이렇게 대놓고 여행자들에게 지나치게 돈을 요구하는 나라이다. 어느 관광지를 가나 외국인은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10배가 넘는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성 안은 볼 것이 많지 않았다. 유일하게 흥미 있었던 것이 거대한 은항아리. 옛날 자이푸르 왕이 영국 국왕 즉위식에 초대를 받았는데 힌두교 신자들은 갠지스 강물 외에 다른 물을 마시면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6개월간 인도를 떠나야 하는 먼 여행길에 오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영국에 잘 보이고 싶었던 왕은 무려 약 900L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은항아리 제작에 착수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커다란 은항아리들에는 갠지스 강물이 가득 담겼고, 왕의 영국 여행에 요긴하게 잘 쓰였다고 한다.
시티 팰리스를 나오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더 이상 이 무리를 따라다니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판단한 우리는 가이드에게 그냥 집에 가겠다고 말하고, 아까 못 보고 지나가버린 하와마할 쪽으로 걸어갔다. 하와마할은 바깥 출입이 제한되었던 과거 왕실 여성들이 도시를 볼 수 있도록 수백 개의 작은 창을 낸 궁전이다. 이 창들로 바람이 잘 들어 '바람의 궁전'이라고도 불린다. 핑크시티답게 건물 외벽은 붉은빛이 돌았다. 저 작은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여자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감히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조차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었던 것을 보니 출출함이 몰려왔다. 점심은 도미노 피자. 인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채식주의자이다. 그래서 피자에도 그 흔한 햄 하나 들어가지 않는다. 베지테리안 피자 또는 닭고기가 올라간 피자. 끝. 어딜가나 메뉴는 이렇다. 베지 메뉴 아니면 치킨 메뉴. 돼지나 소를 먹지 않고 앞으로 20일을 더 버틸 수 있을까. 동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정말 완벽한 육식 주의자인 것 같다.
밥을 먹고 인도 3대 맛집으로 유명한 '라씨 왈라' 가게도 찾아갔다. 우선은 맛만 볼 생각으로 작은 컵 하나만 주문했다. 세상에. 아무것도 안 들어간 플레인 라씨인데 뉴델리에서 먹은 것보다 100배는 맛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날도 식사 후 라씨를 먹으러 갔다. 맛있는 것을 먹을 생각에 신나 있는 순간 무언가가 툭하고 어깨 위로 떨어졌다. 비둘기 똥. 남편은 그 상황이 재미있는지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이고 아재요, 별게 다 기념이오.
한동안 맛있는 카레에 들떠 있었는데 배가 아프고 나니 한식이 절실해졌다. 하지만 자이푸르에서 한식을 파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그리고 카레는 더 이상 먹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파스타나 햄버거, 피자, 짜이로 사흘을 간간이 버티다 다음 도시인 조드푸르는 그냥 건너뛰고 우다이푸르에 가기로 결정을 해버렸다. 그곳에 가면 맛있는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다. 또 버스로 8시간을 가야 하는 먼 길이지만 그래도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는데! 김치찌개가 있는다는데! 가야지. 암 가야하고 말고. 몸과 마음의 힐링을 기대하며, 우다이푸르야 기다려. 우리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