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족자카르타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보로부두르사원

#2017년3월


여행자의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다. 씻으며 짐을 정돈하고, 빨래를 개고, 화장을 한다. 화장이라고 해봐야 썬크림에 팩트 바르는 정도로 티도 안나는 작업이지만 말이다. 사실 동일한 숙소에서 3일을 묵는 일정이라, 굳이 짐 정리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일을 대비하여 옷장 안에 모든 것을 넣고 자물쇠로 잠그는 길을 택했다. 바쁜 아침을 보내고 출근하듯 9시 정각에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족자카르타에 오는 사람들 모두가 한 번씩은 들른다는 보로부두르 사원 Borobudur Temple에 가보려 한다. 위치는 시티에서 2시간 30분 떨어진 곳으로 꽤 멀다. 투어를 신청해서 갈 수도 있지만 언제나처럼 그냥 두발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족자인들의 발이 되어주는 320원짜리 공영 버스>

족자카르타에는 우리가 들렀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트랜스 족자'라는 공영 버스가 있었다. 가격도 3500루피(320원)로 굉장히 저렴하다. 이 가격에 환승도 포함이니, 우리 같은 여행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통수단이다. 우리는 우선 숙소 근처의 말리오보로 정류장으로 간 뒤 안내원에게 보로부두르에 가려면 몇 번을 타야 하는지를 물었다. '3A를 타고 세 정거장 가서 2B로 갈아타세요.' 친절한 안내를 따라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트랜스 족자에 몸을 실었다. 1시간 반 정도를 달렸을까, 사원에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인 좀보 터미널에 도착했다.

<달릴 때 문도 안 닫는 쏘 쿨한 보로부두르행 버스>

내리자마자 역시나 기사들이 따라붙었다. 우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터미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미리 알아보고 온 허름한 버스 앞에 섰다. 버스 기사가 요금을 설명해주고, 우릴 차에 태웠다. 뜨거운 태양이 버스 창을 뚫고 그대로 내리쬤다. 이곳은 분명 우기라는데, 아직 한 번도 비를 만나지 못했다. 어딜 가나 우리가 지나가고 나면 그때야 비가 온다. 덕분에 더위는 극심하지만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버스는 한참을 달리며 다양한 손님들을 태웠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올라타는 방랑 뮤지션과 한가득 장을 봐가지고 집에 가시는 할머님들. 모두 한없이 정겹다.

<갑자기 시작 된 버스 안 작은 콘서트.>

모두가 내리고 버스에 관광객들만 몇몇 남을 때쯤 버스가 멈춰 섰다. 버스에서 내리자 자전거에 의자를 달아 영업하시는 베짝 기사님들이 사원이 여기서 넘나 멀다며 타고 가라고 손짓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구글님을 의지하여 걸어가면 됐기에, 정중히 노 땡스를 외치며 지나쳤다. 한 15분을 걸어가니 사원 입구가 나왔다. 외국인은 현지인과 다른 장소에서 입장권을 사야 하는데, 가격 차이도 장난이 아니다. 우리는 이곳 보로부두르 사원과 내일 가게 될남바난 힌두사원 입장권을 패키지로 구매했다. 두 개를 합한 가격은 42만 루피아(약 38,000원). 이곳의 물가를 생각하면 매우 비싼 편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러 떠나온 여행이니, 다른 부분에서 아끼기로 하고 기꺼이 비용을 지불했다. 입장을 하니 아주머니 한 분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리고 마치 암표를 팔듯 '여기 엄청 큰 사원이야. 가이드 있어야 더 재미있어. 내가 가이드해줄까?'라고 말했다. 어딜 가나 사전 지식 없는 구경은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흥정에 들어갔다. 아주머니는 처음에 10만 루피(약 9,000원)를 부르셨다. 하지만 우린 정말 돈이 없었기 때문에, 7만 루피(약 6,500원)를 불렀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물러서지 않고 8만 루피(약 7,500원)를 불렀다. 결과는 아주머니 승. 기분 좋은 흥정 한판을 끝내고, 고퀄의 안내를 기대하며 우리는 그녀를 따라나섰다.

<가이드 아주머니 추천 포인트 넘버 원 >

가이드 아주머니는 정말 전문적이셨다. 사진이 잘 나오는 그리고 기념이 될 만한 포인트에 다다르면 설명을 쭉 해주시고는, 포토그래퍼로 변신하셨다. 한 번 찍을 때 3가지 앵글로 찍는 것은 예삿일이다. 서야 하는 구역까지 일일이 지정해주시는 모습에 진정한 프로의 향기를 느꼈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미스테리>

사원으로 들어 서기 전,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역사관 같은 곳에 들어가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7세기까지 족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은 인도에서 이동해온 왕조들이 다스렸다. 이들이 만든 사일랜드라 왕조가 평지도 아닌 높은 동산 위에 어마어마한 보로부두르 사원을 건설한 것이고 이를 위해 매일 1천 명의 사람들이 화산에서 돌을 캐다 날라야 했다. 하지만 한 때 동남아시아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이 보로부두르 사원은 무엇 때문인지 12세기경 버려지게 되고, 이후 화산이 폭발하며 그 재에 묻혀 정말 아무도 모르는 역사의 흔적이 돼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인 한 명이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되고, 다시금 세상에 알려져 복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초반 복원 당시 주변 정글을 정리하고 그대로 개방 해버려서, 주변 마을 사람들이 돌을 가져다 자기 집 보수하는데 쓰거나, 불상 머리를 떼다가 외국인들한테 팔거나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보다 못한 유네스코에서 1973년, 27개국의 협조를 받아 본격 복원 사업에 착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때문에 504개의 불상 중 300개 이상이 머리가 없는 상태였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도박을 하면 불행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담은 벽화라 한다. 진짜로.>

사원은 총 150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으로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한다. 계단 형태의 건축물 중간중간에는 다양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는데, 부처의 일생이나 왜 불교인들이 채식주의자가 됐는지 등에 관한 다양한 교훈과 이야기가 가득하다. 여러 차례 발생한 화산과 지진으로 인해 현재는 지지대가 세워져 일부가 가려졌는데, 그곳에 그 유명한 카마수트라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쨍한 날씨 덕에 돌의 색감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가파른 계단을 쭉 올라가니, 네 개의 단으로 이루어진 구조 위에 종모양의 석탑들이 가득했다. 이것의 이름은 스투파. 1층에는 32개, 2층에는 24개, 3층에는 16개, 제일 위에는 가장 큰 것 1개로 총 72개이다. 이것은 인간의 총수명을 72세로 두고, 7번의 환생으로 총 504년의 생을 다 살고 나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이 사원에 있는 부처의 수도 504개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저 종모양 스투파 안에 하나 씩 불상이 모두 들어 있다는 것. 여전히 머리 없는 불상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아름답지만 무서운 활화산 무라삐. 자주 폭발한다고 함.>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듯한 스투파들 사이로 머라삐 화산이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그 옛날 사람들 눈에는 화산 폭발이 자연의 분노로 보였을 것이다. 때문에 그 결과물인 화산암으로 거대한 사원을 지어 믿음의 대상을 감히 덤빌 수 없는 두렵고 강한 존재로 만들어 나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생천 처음 불교라는 종교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춰보았고, 나름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루 종일 함께 다닌 가이드 아주머니의 설명이 아니었으면 재미없는 하루가 될 뻔했다.

<더운 것을 너무나 싫어 하며 젊어보인다는 말을 좋아하시는 가이드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먼저 내려가시고 우리는 조금 더 풍경을 감상했다. 그리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들어가자마자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씻어내고 전날 봐 두었던 로컬 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이름하야, 노량진.st 야외 포장마차.

<나시고랭은 사랑입니다♥>

여행자 거리 한쪽에 길게 늘어져있는 포장마차 행렬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어디가 맛있을까 기웃대다가 잘 모르겠어서 그냥 사람이 많이 앉아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스페셜 나시고랭, 나는 튀긴 새우를 시켰다. 먼저 나온 새우는 너무나 짜서 밥이 없으면 먹기 힘들었다. 하지만 맛은 좋았다. 다음으로 나온 스페셜 나시고랭! 기존 나시고랭과는 조금 다르게 매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기분 탓이었을지 모르지만 전에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독특한 소리가 났던 전통 악기 공연>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는 조용해지기는커녕 점점 활기로 가득해졌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그 혼잡스러운 거리를 걸었다. 낮의 열기는 어느덧 식어가고, 코끝을 간지럽히는 밤바람이 분다. 적당한 온도, 적당한 소음, 적당한 인파들 속에서 여행자 특유의 설렘을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른 것처럼 생각지도 모르게 고백이 흘러나온다. 오늘도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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